수사기관의 IP추적, 위치추적은 위헌이다
이은우 ( 민변회원, 법무법인 지평 | ewlee@horizonlaw.com)
최근 수사기관에서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에게 고객의 인터넷 로그기록자료나 접속지의 추적자료로 삼기 위한 접속 IP 자료를 요구하는 일이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사에 핸드폰의 통화위치를 확인하는 자료의 제공을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2001. 12. 29. 개정되어 2002. 3. 29.부터 시행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과 그 시행령은 이러한 자료들을 통신사실확인자료라고 해서 법원의 영장도 필요없이 관할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요청만으로 빼내올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인을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 섬뜸한 일이다.
각국의 헌법은 통신의 자유와 비밀을 보장한다. 이에 따라 각국은 엄격한 요건하에서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만 통신의 비밀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신의 비밀이 보장이 안되는 통신의 자유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신의 비밀과 자유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공기가 없는 곳에서 사는 느낌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과연 통신의 비밀과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그렇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통신사실확인자료’ 이다.
원래 헌법에서 보호하는 통신의 비밀에는 통신의 내용 뿐만 아니라, 통신을 했는지 여부, 누구와 통신을 했는지, 회수, 시간, 장소 등 일체의 것이 포함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엄격한 요건 하에서 법원의 영장에 의해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침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2002. 3. 2. 부터 시행중인 우리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사실확인자료라고 해서 누구와 통신을 했는지, 언제 통신을 했는지, 통화회수는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한 자료는 법원의 개입없이 수사기관 마음대로 요청할 수 있도록,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정해놓았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통신의 비밀과 자유’라는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규정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정부가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는 대통령령이다. 대통령령인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은 영장주의가 배제되는 통신사실확인자료에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사용자가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한 사실에 관한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로그기록자료’, ‘정보통신망에 접속된 정보통신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발신기지국의 위치추적자료’,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사용자가 정보통신망에 접속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정보통신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접속지의 추적자료의 IP’를 끼워 넣고 있다. 형식적이라고 비판을 듣고 있는 법원의 허가마저도 거추장스러웠는지, 이런 자료들을 수사기관이 언제든지 마음대로 확인하고 다니겠다는 것이다.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의 로그기록자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 사람의 정보통신망 속에서의 생활기록인 것이다. 위치추적자료와 접속지의 추적자료 IP는 또 무엇인가, 그 사람의 이동경로이고 활동의 궤적인 것이다. 이들 정보가 있으면 한 개인의 모든 움직임과 모든 발언과 생각까지도 감시할 수 있다. 통신사실확인자료에 관한 통신비밀보호법과 통신비밀보호법시행령의 관련규정을 철폐하지 않는 한 정보통신시대에 통신의 비밀과 자유, 사생활의 비밀의 보장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2002-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