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윤리> 2001년 3월호
‘인터넷 실명제’는 ‘반사회적’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양과 교수)
1990년대 초반에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었을 때, 돈 많은 사람들은 무슨 난리라도 난 것처럼 아우성이었다. 자금순환이 경색될 거라는 둥, 그 결과 경기가 둔화되어 오히려 사회가 더욱 불평등해질 거라는 둥, 반대하는 사람들은 목소리만 큰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금융실명제에 대해 찬성했다. 이 사회를 좀더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사회를 좀더 살 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등의 대형사고들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이번에는 행정실명제가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서도 나는 금융실명제의 경우와 같은 이유에서 찬성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입법실명제며 사법실명제 등도 조속히 실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실명제는 강력한 처벌조항을 갖춘 법에 의해 엄정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명제는 사회를 좀더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기초이다. 실명제는 분명히 이 사회를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또 다시 실명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나는 대체로 실명제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실명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인터넷을 실명으로 이용하도록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른바 ‘인터넷 실명제’라는 것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거니와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반사회적’ 구상이라고 생각한다.
잘 알다시피 인터넷은 인류가 만들어낸 매체들 중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장 높게 실현할 수 있는 매체이다. 누구나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얘기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할 수 있다. 이른바 ‘인터넷 혁명’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터넷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러한 특성의 핵심에 ‘익명성’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익명성’을 없앤다는 것은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없애는 것이며, ‘인터넷 혁명’의 정치적 핵심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터넷 실명제’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익명성’이 유발하는 문제에 너무 신경을 쏟은 나머지 ‘익명성’이 인터넷의 본질적 특성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 실명제’의 적용 범위는 대단히 넓다. 홈페이지를 개설하거나,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심지어 게시판에 글을 쓰는 데까지 적용된다. 이미 정부 사이트, 언론사 사이트, 학교 사이트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이트들이 이러한 ‘인터넷 실명제’를 채택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사이트들이 ‘인터넷 실명제’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너무나 편의주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익명성’은 뉴미디어로서 인터넷의 사회적 핵심이다. 인터넷의 기술적 핵심인 ‘양방향성’은 ‘익명성’을 통해 비로소 사회적으로 만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익명성’의 통제는 인터넷 민주주의에 대한 통제라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인터넷 실명제’가 단순히 이용자의 정체를 분명히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용자를 거대한 감시의 눈길 속에 고스란히 내던져 놓는 결과를 빚어낸다. 따라서 그것은 이용자로 하여금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을 못하게 하는 참혹한 결과를 빚을 것이다. 요컨대 ‘인터넷 실명제’는 시민의 기본권인 ‘역감시권’을 억압하게 된다. 소설 {1984}나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볼 수 있는, 생각만 해도 기분나쁜 ‘감시사회’의 현실을 ‘인터넷 실명제’는 더욱 확고하게 구현해 줄 것이다. 공공기관의 ‘인터넷 실명제’는 이 점에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명확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실명제’가 주요한 의제로 떠오르는 데에는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사이버 홍등가, 사이버 암흑가, 폭탄 사이트, 자살 사이트, 징병제 반대 사이트 등의 이른바 ‘반사회’ 사이트들에 관한 잇따른 언론의 보도들을 보고 듣노라면, 인터넷이 새로운 문명의 동력이라기보다 무시무시한 괴물로 여겨지게 되고, 이 ‘반사회적’ 괴물을 어떻게든지 길들여야 할 필요성을 당연히 절감하게 된다. 이런 우려의 여론을 배경으로 해서 ‘인터넷 내용 등급제’와 함께 ‘인터넷 실명제’가 인터넷을 길들일 수 있는 쉽고도 확실한 방법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염두에 두자면, ‘인터넷 실명제’는 대단히 무서운 결과를 낳고야 말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결과는 감시하는 자를 역감시하고 비판할 일반 시민의 기본권이 송두리째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충주경찰서에서 일어났던 일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한 순경이 경찰서 홈페이지에서 서장의 잘못을 익명으로 비판했다. 서장은 IP추적을 통해 그 순경의 정체를 밝혀내고 ‘괘씸죄’를 적용해서 징계했다. ‘인터넷 실명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자는, 그야말로 ‘1984’적인 발상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장사 수단으로 삼는 일부 기업들은 ‘인터넷 실명제’를 크게 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의 이용방식을 통제하여 돈을 벌겠다는 발상은 일반 이용자를 우습게 여기는 처사들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착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인터넷 실명제’가 가져올 경제적 이익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실명을 확인해 주는 기관들만이 이 제도의 실행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거두게 될 것이다. 인터넷을 위생처리된 안전지대로 만든다면, 오히려 사람들은 인터넷 자체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 법이다.
인터넷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매체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을 누구나 부자유스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치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익명을 쓸 것인가, 실명을 쓸 것인가? 이것은 강요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그 선택 자체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익명게시판’을 흔히 ‘자유게시판’으로 부른다는 사실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익명게시판’을 없애는 것은 자유를 없애는 것에 비견될 수 있다. 이러한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근원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인터넷 실명제’는 ‘반사회적’이다. 나는 획일적인 ‘인터넷 실명제’ 구상에 반대한다.
200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