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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감시가 ‘남의 일’이라고?

By 2015/04/01 No Comments

삼성의 감시가 ‘남의 일’이라고?

[삼성, 감시당할 것인가 감시할 것인가]<3> 감시로 권력 유지? 얼룩진 ‘무노조 신화’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2015.03.31 11:33:28

‘삼성, 감시당할 것인가 감시할 것인가’ 지난 기사 보기 

 
 
1. 
 
‘사찰의 삼성’이었다. 그간 알려진 것만 해도 많은 사찰 파문의 가운데 삼성이 있었다. 대상도 전방위적이다. 최근에는 민원인에 대한 사찰이 큰 사회적 충격을 주었고, 경영진들끼리의 싸움에서도 사찰이 빠지지 않았다. 가장 두드러진 사건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사찰이었다. 개인정보를 뒤지고, 휴대폰을 복제하고, 미행하고, 납치까지. 삼성의 ‘무노조’ 신화는 사찰로 유지되는 것일까. 삼성의 권력은 감시로 유지되는 것일까.  
 
2.  
 
‘감시’는 단순한 ‘개인정보 침해’와 다른 것이다. 감시학자 데이빗 라이언은, 감시란 그 대상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감시는 특정한 사람들이나 인구 집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이들을 관리 혹은 통제하길 원하는 조직들이 개개인의 세세한 일상들에 주의를 집중하는 일상화된 방식들이라고 했다. ‘사찰’이라는 단어는 엿볼 사(伺), 살필 찰(察)로 쓰일 때는 "남의 행동을 몰래 엿보아 살핀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사할 사(査)를 쓸 때는 "사상적(思想的)인 동태를 조사하고 처리하던 경찰의 한 직분"에서 유래한 단어가 된다. 머릿속까지 들여다보고 권력에 순응시키려는 국가기능이 사찰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감시도 바로 이 사상 경찰이다. 
 
우리는 스토커에 대해 혐오한다. 내가 원치 않은 사람이 나를 엿보고 나를 아는 체 하는 것 말이다. 심지어 내 주의를 끌고 내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을 띨 때 스토킹은 혐오를 넘어 공포의 대상이 된다. 이런 스토킹을 경험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행동이 위축된다. 말을 고르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상이 파괴된다. 때로 인격이 파괴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거대한 스토킹에는 무감각하거나 알고도 넘어가곤 한다. 권력이 우리를 감시할 때 말이다. 학교가, 회사가, 그리고 국가가. 이런 공간의 공통점은 민주주의가 가장 필요한 곳이지만 오히려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규칙은 주어진다. 학칙이, 사규가, 법률이. 학칙의 제정과 시행에는 학생이 참여해야 하고 법률은 국민을 선출한 자들이 만들고 시행한다는 것이 근대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이념과 아직도 멀다는 걸 우리는 안다. 사실 권력이 일상적으로 발휘되는 것은 감시할 때이다. 주어진 규칙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감시하는 것으로, 권력은 그 정당성과 권위를 유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감시를 문제 삼기보다 수용한다. 우리가 감시를 문제 삼으면 그 권력이 행사되는 체제 전체를 시비삼는 모양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아니야. 규칙은 지켜야지. 규칙을 잘 지키면 감시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을 거야. 애써 떳떳하자. 아니, 오히려 감시는 객관적인 목격자야. 내가 규칙을 잘 지킨다는 사실을 인증해 줄거야.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의 감시를 모른 척 한다. 감시를 행하는 기술이 객관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때로 우리 주변의 거짓말과 폭력을 증거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권력의 감시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치는 것은 곤란하다. 권력이 민(民)을 위축시키는 상황은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투명하게 드러나야 할 것은 민 앞에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감시자들일수록 자신들을 철저하게 은폐한다. 감시는 은밀함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시로 유지되는 권력은 민주주의와 대척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민주주의를 포기하면 그것은 사라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감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요즘 유엔은 미국 정보기관 NSA의 전 세계 도청 사건이 터진 후 그 대책에 분주하다. 지난해 6월에는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디지털 시대 국가 감시 문제가 심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는 디지털 기기의 확산으로 국가가 인류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감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감시는 실시간으로, 일상적으로, 대규모로, 때로는 특정 대상만을 집중적으로 원하는대로 사찰할 수 있게 되었다. 권력자들이 "앉아서 생각까지 미행"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권의 안정을 위해, 시장에서의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3.  
 
삼성의 권력이 감시로 유지되는 상황을 보라.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큰 목소리로 문제 삼지 않는다. 삼성에 문제제기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대광고주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다. 밥상 앞에서 경제 민주화는 잠시 유보하자. 감시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결국 이런 발상과 떼어놓고 읽을 수 없다.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배적 지위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 자체가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를 보여준다.
 
감시받는 이들이 아직은 소수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어쩌다 삼성의 민원인이 되고 삼성의 노동자가 되고 삼성 경영진의 경쟁상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확신한다. 감시는 곧 당신의 일상으로 번져올 것이다. 
 
디지털 감시 기술이 확대되면서 감시 기술이 더욱 만능이 된 시대이다. 보험을 비롯한 금융은 ‘빅데이터’ 시대 개인정보 먹는 하마로 이미 등장하고 있다. 당신이 모르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건강식품을 구입하고, 마트에서 주류를 구입한 내역은 잊히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보험회사로 집적될 것이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진료 받은 기록들이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보험회사로 쓸려 들어갈 날도 멀지 않았다. 우리가 멈추지 않으면. 
 
기술은 브레이크 없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인터넷 전체를 들여다보는 시대에 감시를 제어할 수 없다면 그 권력이 우리에게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 지금, 삼성의 감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의 미래이며 나의 미래이다. 
 
4.  
 
삼성도 전국이 떠들썩한 감시의 피해자였던 적이 있다. 안기부는 불법 도청팀을 운영하며 속칭 ‘X파일’을 만들었다. 삼성 경영진을 도청하였고, 그 내용이 폭로되었다. 삼성이 검사들에게 떡값을 뿌리며 관리하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이 사건을 오히려 ‘불법 도청’의 피해 사건으로 규정하며 수습해 갔다. 삼성을 비판한 언론인이나 국회의원은 처벌받았다. 덕분에 그 사건 이후로 국가정보기관이 공식적으로는 휴대전화 감청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기관의 권한 오남용으로부터 통신비밀을 보호하자고 했다. 법이 휴대전화 감청을 못하게 막고 있거나 스마트폰 감청기술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더 큰 감시가 덮였다는 사실을 역사는 기록해야 할 것이다. 삼성이 검찰 조직도 감시하고 길들이며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사실 말이다. 국민의 통신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헌법 이념도 결국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추악한 감시자의 위치에서 내려와라, 삼성. 그 부끄러운 권력은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2015. 3. 31.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5154

201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