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소식지

[기고] 과거 정부 시절로 회귀하는 개인정보

By 2018/10/16 No Comments

문재인 정부의 개인정보 정책이 걱정스럽다. ‘4차 산업혁명’ 활성화를 명분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로 회귀할 기세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개인정보 활용·보호 사이에 절충점을 찾다’라는 제목의 기고(<매일경제> 10월11일치)를 했다. 지난 8월 말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 현장간담회의 내용을 소개한 것인데, 가명처리한 개인정보를 통계 작성, 연구, 공익적 기록 보존과 더불어 산업적으로도 이용하도록 허용하고 서로 다른 영역의 데이터와 데이터 간 결합도 가능해진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면서 “여기까지는 사회적 합의를 봤다”고 했다.

김부겸 장관이 잘못된 보고를 받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는 없었다. 아마도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주최한 해커톤에서의 합의를 말하는 것일 텐데,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오히려 합의된 것이 아니라 ‘합의에 실패’한 쟁점들이었다. 시민사회는 가명처리된 개인정보의 활용 범위를 ‘학술 연구 및 통계 목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산업계의 입장은 시장조사 등 기업의 영리 목적의 연구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보도자료를 보면 “연구의 범위에 관하여 이견이 있어 참석자 일부는 ‘학술연구’라는 표현을, 다른 일부는 ‘학술 및 연구’라는 표현을 지지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개인정보의 결합과 관련해서도 시민사회와 산업계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이 역시 보도자료에 명시되어 있다.

개인정보를 목적 외로 활용하는 것 자체가 정보주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인데, 학술 연구나 통계와 같은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기업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왜 정보주체의 권리를 희생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유럽 개인정보보호법(GDPR) 역시 ‘학술 연구’(scientific research)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전 사회적으로 주민등록번호로 엮여 있는, 열악한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유럽보다 활용 범위를 좁혀도 모자랄 판이 아닌가. 주민등록번호의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은 이미 몇년 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주민등록번호 체제 개편을 권고한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태도는 두가지 측면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개인정보 정책이 박근혜 정부 시절로 회귀했다는 점이다. 2016년 6월, 박근혜 정부는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을 통해 개인정보를 일부 비식별 처리하면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나아가 서로 다른 기업 간 개인정보를 결합하여 두 기업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현 정부의 정책은 비식별조치가 가명처리로 바뀌었을 뿐 기본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는 합의되지 않은 것을 합의되었다고 오도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참여를 정부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들러리로 격하시켰다. 이제 시민사회가 어떻게 정부를 믿고 정책 협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다국적 기업인 ‘아이엠에스(IMS)헬스’는 전국 약국과 병원에서 수집한 우리 국민 4500만명의, 가명처리된 개인정보 50억건을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 불법적으로 사들였다. 정부의 개인정보 정책은 이와 같은 개인정보의 수집 목적 외 활용과 매매를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김부겸 장관은 ‘데이터 고속도로의 안전은 정부가 담당’하겠다고 한다. 개인정보 활용의 전제는 신뢰인데, 우리나라 기업과 정부가 이러고도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오병일 ㅣ 정보인권연구소 연구위원

* 이 글은 2018년 10월 16일자 <한겨레신문> 에 기고한 글입니다.
☞ 원문 바로가기(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659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