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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잊혀질 권리』 서평글{/}[함께 읽는 정보인권] 인터넷에 뭔가를 올릴 땐 조심?!

By 2018/07/16 7월 17th, 2018 No Comments

글쓴이│박정하님*


마법의 지우개를 갖게 된다면 당신은?

만약 지금 마법지우개를 갖게 된다면 당신은 제일 먼저 무엇을 지우고 싶은가?
스트레스 받은 시간을 되새겨주는 눈밑의 다크서클, 아님 잡티와 기미?
헤어지면 죽을 것 같아 구차하게 매달렸던 기억?
게다가 그에게 아직도 보관되어 있을지 모를 민망한 문자…
어린 날의 유치한 영웅심이거나 한때의 객기로 저질렀던 일탈의 기록…
그땐 왜 그랬을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

영구히 썩지 않는 기억상자

이렇게 북북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기억을, 정작 나조차 잊을 지경으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다 끄집어내어 알아버린다면 당사자의 심경은 어떨까?
누구나 얼굴 화끈거릴 정도로 실수를 하고 살지만 다행히 언제 그랬냐 싶게 까맣게 잊고 살기에 우리는 새 출발을 할 수 있고 일상의 행복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다면?
나는 지웠다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은 시시때때로 영구히 썩지 않는 기억상자를 끄집어내어 수군거리고 조롱한다면? 조롱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 인생에서 중대한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망각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잊혀질 권리』(원제: DELETE- The Virtue of Forgetting in the Digital Age)는 디지털 기술이 만든 완벽한 기억의 세계, 대부분의 것이 기록되고 기억되는 세상에서 인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묻는 책이다. 신상털기, 정보유출 등 일상적인 인권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잊혀질 권리의 회복을 주창하는 책이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망각’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문제작이다.
저자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는 현재 옥스퍼드대학교 인터넷연구소 교수로 디지털 환경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록의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룬 이 책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돈 K. 프라이스상, 마셜 매클루언 상 등을 수상했다.

인터넷에 무언가를 올릴 때는 조심하시오!

이 책에 나오는 25살 싱글맘 스테이시 스나이더는 대학과정을 마치고 교사가 될 날만을 고대하고 있던 어느 날 교사가 될 수 없다는 청천벽력의 통보를 받는다. 이유는 그녀가 마이스페이스에 올려둔 사진 한 장 때문.해적모자를 쓰고 플라스틱컵에 술을 마시는 사진에 그녀는 ‘술취한 해적’이라는 캡션을 달아두었었다. 이를 본 누군가가 그녀가 교사로서의 직업윤리가 부족하다고 신고한 것. 스테이시는 이 사진을 인터넷에서 내려보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고 그녀는 대학을 상대로 소송했으나 패소했다.
(마이스페이스는 페이스북에 대적하는 사이트로 2008년 기준 1억1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마이스페이스 개인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개인페이지는 2009년 초 기준으로 1억7천만 개에 이름.)

페이스북에 ‘일이 따분해’ 라고 투덜거렸다가 실직한 여자도 있다!

이외에도 10여년 전 학교신문에 났던 기사를 보게 될까 두려워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변호사부터 페이스북에 “일이 따분해”라는 글을 올린 이유로 실직한 젊은 영국여성까지 별 생각없이 올린 개인정보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수십년 전의 불명예스런 기록들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들은 다양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어느나라보다 신상털기에 초특급인 나라이고 그로 인한 문제도 많이 발생되었다. 연습생 시절의 투덜거림 때문에 2pm에서 퇴출된 JYP의 박재범 같은 경우도 스테이시 스나이더와 비슷한 사례일 것이다.

스스로 올린 것이니 자업자득이라고?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자업자득이라는 표현을 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통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개인정보를 올리는 것에 스스로 신중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노출한 것이니 보호받을 수 없다라는 의견이다. 결국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마치 성추행 사건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한 피해자는 억울하게도 일정부분 도발했다는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이런 사례들도 결국은 스스로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해야 한다는 씁쓸한 교훈만을 던지는 것일까?

디지털 시대의 원형감옥, 당신은 자유로운가?

프레시디오모델로 감옥

이 책의 커버에는 커다란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디지털 시대의 원형감옥, 당신은 자유로운가?’
원형감옥, 즉 파놉티콘은 원래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라는 뜻을 가진 ‘opticon’의 합성어로,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설계한 감옥에서 온 말이다. 이 감옥은 중앙에 세워진 원형 감시탑에서 감시탑 바깥의 원 둘레를 따라 지어진 죄수들 방을 감시토록 설계되었다. 감시탑은 늘 어둡게 하고 죄수들 방은 밝게 해, 감시자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죄수들이 알 수 없도록 함으로써 죄수들은 자신들이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결국은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내 정보 여기 있어요~ 자발적인 정보제공자들

그런데 감시를 당하는 사람의 자발적 협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대사회는 사회학자 마크 포스터가 주장한 수퍼 파놉티콘에 대입해볼 수 있다. 현대 디지털 사회에서는 원형감옥 같은 건물도, 범죄학과 같은 과학도 필요 없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원하는 정보를 얻는다는 이 시스템 아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피감시자가 되어 개인의 신상부터 상품구매정보까지 모두를 자발적으로 알려준다. 자신의 소비성향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기업에 제공되고, 이 정보가 광고회사나 기타 정부기관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등의 생각보다는 편리함과 같이 눈앞에 보이는 이득만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지지난 여름에 한 일을 구글은 알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검색엔진들의 경우에도 개인정보를 사소한 부분까지 알고 있다고 한다. 어떤 개인이 구글에 접속하여 정신질환 문제를 검색하거나 선정적인 소설을 찾거나 불륜의 상대와의 데이트를 위해 모텔을 예약하거나 이런 것들을 검색한 후 그 개인은 잊어버려도 구글은 기억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범죄의 용의선상에 올랐을 때는 그의 통화기록뿐만이 아니라 그가 사건 즈음 무엇을 검색했는지도 중요한 수사대상이 된다.

참으로 잔인한 디지털 사회

요즘 네이버는 동아, 경향 등 옛날 신문을 PDF로 복원해 제공하고 있는데 연예인이나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옛날 스캔들이나 성형 전 얼굴 등이 나오고 다시 화제가 되는 걸 꽤 두려워 할 것 같다.
실제로 모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서의 경험이다. 어떤 연예인이 자신의 늦둥이와 함께 방송에 나왔다. 오랜 시간도 아니고 살짝 지나가는 화면에서다. 어떤 네티즌이 그의 첫애와 막내가 나이차가 많이 난다는 얘기를 꺼내자 어떤 민완탐정 같은 다른 네티즌이 그가 언제 불륜과 간통으로 이혼하고 재혼하여 늦둥이를 낳았는지를 순식간에 검색해 옛날 신문기사를 링크해주는 걸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모든 걸 기억하는 디지털 사회는 이런 면에서 참 잔인하다.

시간이 지나도 안 잊혀져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또 망각이야말로 인간을 위한 축복이라고들 얘기한다.
그래서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말 중에 제일 무책임하지 않은 말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살아갈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이었다. 여태까지는.
하지만 이건 머릿속에 있는 두뇌 하나에 의존해야만 하는 옛날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다. 원한다면 언제나 첨단 컴퓨터의 도움으로 또하나의 휴대용 두뇌를 가지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인 현대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제는 기억하려 애쓰기보다 망각의 미덕을 어떻게 되살려낼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이다.

망각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이 책은 기억이 아니라 망각이 기본이던 시절, 인간이 기억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온 역사를 간략하게 훑어준다. 그러면서 우리의 뇌가 수만 년의 진화를 통해 습득한 망각의 가치를 재평가하며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하면 이를 살려낼 수 있을지 대안을 제시한다.
디지털 시대에 망각의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이 좋을 것인지. 예를 들어 디지털 메모리의 부담을 덜어줄 정보 만료일을 지정해준다던지 정보만료일을 도입하게 된다면 기술적인 문제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료일이 모든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은 못 되리라는 것까지 통찰과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의 유산을 풍족하게 해온 기록의 미덕은 지키되 그 기록이 공적인 자산으로 쓸모가 있는 것인지, 별 쓸모는 없으면서 어떤 이에게 영구한 낙인이 됨으로써 사회적으로도 재앙이 될는지 이를 결정할 사회적인 합의가 중요할 듯하다. 이 책의 옮긴이인 한겨레 구본권 기자의 말을 빌자면 ‘문제의 인식이 해결책의 첫걸음’이다.

정보를 많이 가진 집단과 정보를 적게 가진 집단간에 존재하는 권력 격차를 크게 만들고, 심지어 정보를 적게 가진 집단으로 하여금 그들의 과거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 자체를 부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걸 한눈에 보면서 통제한다는 인식은 자기검열의 문화를 만들어내어 민주정부의 특징인 개방된 토론을 현재만이 아니라 먼 미래에까지도 제한한다.

『잊혀질 권리』 P.171

 

※ 이 글은 박정하 님의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 된 『잊혀질 권리』 서평글입니다.
* 글쓴이 박정하님은 전문코치(KPC)로 ‘더나은삶코칭’ 대표이자 사단법인 ‘한국코치협회’ 홍보위원으로도 활동중입니다

편집자주 : <함께 읽는 정보인권>은 정보인권 관련 외부 서평글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글의 내용이 진보넷의 입장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또 다양한 입장과 견해가 섞이며 조금씩 정보인권의 외연이 넓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