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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국정원, 전체 감청의 95% 집행… 통제장치는 미미

By 2017/11/30 4월 3rd, 2018 No Comments

편집자주 : 한때 인터넷에서는 무한하게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저절로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국가, 기업 등 권력자를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할수록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누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인터넷 도입 전후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검열과 감시의 역사, 그리고 시민의 저항 속에 변화해온 제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제보와 잘못된 정보는 이메일 della 골뱅이 jinbo.net 로 알려 주십시오.

◈ 통신감시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기춘 법무장관, 안기부 부산지부장, 부산시장, 부산지방검찰청장, 부산경찰서장, 부산교육감, 부산상공회의소장 등 주요 기관장들이 부산의 음식점인 ‘초원복국’에 모여,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길 것을 결의하였다. 대화 내용은 야당 정주영 후보측에 의해 도청되어 공개됐고 온 나라가 큰 충격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당선된 여당 후보 김영삼씨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였다. 1993년 12월 마침내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되어 그간 법률적 근거 없이 시행되던 도청이 제도적으로 규제되기 시작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의 목적은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제한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함”에 두고 있다(제1조).

2005년 7월 21일 안기부의 불법도청 테이프(일명 X-파일)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폭로되면서 한국 사회는 또 다시 큰 충격에 휩싸였다. 통신비밀보호법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정부 하에서 안기부(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개편)가 주요인사를 불법적으로 도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안기부 도청 전담조직 2차 미림팀은 1994년 6월부터 다음 대통령선거 직전인 1997년 11월까지 음식점 등에서 주요 인사 대화 내용을 도청하였다. 도청 피해자 가운데는 정치인이 273명으로 가장 많았고, 고위 공무원 84명, 언론계 인사 75명, 재계 57명, 법조계 27명, 학계 26명, 기타 104명 등이었다. 안기부는 전화국의 협조를 얻어 유선전화에 대해서도 법원 허가 없이 불법적으로 도청하였고 아날로그 휴대전화 역시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감청장비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도청했다.

야당의 정권 교체를 이루어낸 김대중 정부에서도 안기부의 불법 도청은 계속되었다. 1998년과 1999년 언론을 통해 “CDMA 휴대전화는 기술적으로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누차 확언하였던 김대중 정부는 이면에서 CDMA 휴대전화 감청 장비를 직접 개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정보원은 1996년 1월부터 디지털 휴대전화가 상용화되자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인 ‘R-2’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인 ‘카스’를 직접 개발해 도청에 활용했다. 국가정보원은 R-2에 정치·언론·경제·공직·시민사회단체·노동조합 간부 등 주요인사 1,800여 명의 휴대전화번호를 입력해 놓고 24시간 이들의 통화를 도청했다.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이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은 공식적으로 휴대전화 감청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통화내용에 대한 불법적인 도청 뿐 아니라 언론사 기자들을 사찰하기 위한 정보·수사기관의 통화내역 조회 남발도 계속 논란이 되었다. 2001년부터 통화내역 등 통신사실확인자료가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규율되기 시작하였다. 2005년부터는 정보·수사기관이 통신사업자에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요청을 할 때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였다.

유선전화, 이메일 등 통신 내용에 대한 실시간 ‘감청’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이 법원의 허가를 받은 후에 직접, 혹은 통신사업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집행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집행되는 감청의 95% 이상은 국가정보원에 의해 집행된다. 일반 범죄수사와 관련이 없는 비밀정보기관이 감청을 실시하는 것은 정치적인 반대자들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을 위축시킨다. 최근에는 인터넷 회선 전체를 감청하는 패킷감청 기법이 사용되면서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의 통신비밀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은 비밀정보기관의 감시 권한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감청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법원이 국가정보원의 청구를 기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부당한 요구를 제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1998년 울산지역 노동단체 관계자 1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던 ‘영남위원회 사건’에서는 법원이 감청 허가의 연장 결정을 하면서 원허가서에 없는 대화녹음이나 대상자, 대상전화가 연장 청구서에 추가 되었음에도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았던 점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2010년에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활동가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감청이 2개월씩 14차례나 연장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사건에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되었고 헌법재판소는 2011년 한정 위헌으로 결정하였다.

통신제한조치가 내려진 피의자나 피내사자는 자신이 감청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기본권 제한의 특성상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으므로 통신제한조치기간의 연장을 허가함에 있어 총 연장기간 또는 총 연장횟수의 제한이 없을 경우 수사와 전혀 관계없는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당할 우려도 심히 크기 때문에 기본권 제한의 법익균형성 요건도 갖추지 못하였다.

– 헌법재판소 2010. 12. 28. 2009헌가30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정보위원회 역시 실질적인 감독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7월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해킹 프로그램(RCS)을 수입·운용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으나 법원이나 국회 어느 쪽도 이 기술의 도입에 대하여 인지하거나 심사한 바가 없었다. 이후에도 국가정보원이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아 RCS에 대한 진실은 아직도 규명된 바 없다.

‘이탈리아 해킹팀’의 광고 이미지

한편, 이메일이나 메신저 대화 내용 등 실시간이 아니라 송수신이 완료되어 저장된 통신 내용에 대해 정보·수사기관이 취득하려면 형사소송법의 절차에 따라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집회 참가자에 대한 휴대전화 압수수색이 급증한 가운데, 당사자 및 상대방의 대화 내용에 대한 대량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당사자의 통지권과 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통화 상대방, 통화일시, 기지국 위치정보, 인터넷 IP주소 등 로그기록은 ‘통신사실확인자료’로서, 정보·수사기관이 제공받으려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경찰이 집회장소 주변 기지국에 대해 대량으로 자료를 제공받아 집회 참가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기지국수사’ 기법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 등은 대상자의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를 실시간으로 제공받기도 한다. 이런 수사기법들은 정보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데 이에 대한 법원의 통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성명,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주소, 인터넷 아이디 등 가입자 인적사항에 대한 ‘통신자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서면요청만으로 간단히 제공되기 때문에 아예 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제도에 대해 개선을 권고하였다. 2015년 11월 5일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통신자료, 기지국수사, 국가정보원의 감청에 대한 제도개선을 권고하였다(인권위 2014. 4. 9. 전기통신사업법 통신자료제공제도와 통신비밀보호법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제도 개선권고). 패킷감청, 메신저 압수수색, 기지국수사, 실시간 위치추적, 통신자료에 대해서는 각각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인권단체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하여 2016년 7월 현재 헌법재판소가 심사 중에 있다.

정부는 2007년부터 통신사업자로 하여금 정보·수사기관을 위한 감청설비를 의무적으로 구비하도록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에 따르면, 기업들에게 자기 통신망을 ‘감청 준비’ 상태로 장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싹슬이 감시 조치를 촉진하는 환경을 낳기 때문에” 특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감청설비 구비 의무가 “사실상 감청 자체가 예외적 허용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조성하면서 개인 사생활 및 프라이버시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