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PD 저널] 정부는 네가 인터넷에 가입한 내역을 알고 있다?!

By 2017/09/02 No Comments

행정안전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 8월 8일부터 e프라이버시 클린서비스를 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아이핀, 휴대전화를 통해 이용자들이 본인확인을 한 내역을 제공함으로써, 이용자들이 더 이상 가입이 필요없는 사이트에서 탈퇴하거나, 혹시 명의도용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요청하면 일괄적으로 회원탈퇴 처리를 대행하고 결과를 통보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수많은 개인정보 유출 때문에 혹여나 명의도용이 되지 않았을까 우려하던 이용자들에게 매우 인기라고 한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자. 이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은 정부가 내가 어느 사이트에 가입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이런 서비스가 무려 ‘e프라이버시’ 서비스라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이런 서비스를 ‘e프라이버시’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부관료들의 인식 수준을 드러낸다. 더구나 행정안전부는 개인정보 보호 주무부처가 아닌가.

▲ ⓒpixabay

지난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소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인터넷 상에서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사이트들이 이렇게 많을까? 명의도용을 걱정하기 이전에, 아예 처음부터 본인확인을 하지 않는다면, 명의도용을 당할 일도 없을텐데 말이다. 여전히 인터넷 실명제가 남아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한다. 우선,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한, 일반적인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 결정을 받았음에도, 인터넷 상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다른 법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거시기에 언론사 등을 대상으로 인터넷 상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공직선거법,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규제하기 위해 연령확인을 요구하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등이 그것이다. 둘째는 여전히 많은 인터넷 사이트들이 ‘자발적으로’ 본인확인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대다수 국내 온라인 쇼핑몰들은 가입시 본인확인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amazon.com)과는 대조적이다.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을 제한해야한다는 요구와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정부(행정자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상 본인확인 관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아이핀(I-PIN)과 본인확인기관 제도이다. 아이핀은 소위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을 제공한다는, 즉 어처구니없게도 이 역시 개인정보 보호의 명분으로 도입이 되었는데, 아이핀 역시 주민등록번호에 기반하고 있다. 정말 개인정보를 보호하고자 했다면, 아이핀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본인확인 자체를 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이 제한되고, 아이핀마저 불편해서 이용자의 외면을 받자, 정부는 휴대전화 사업자들을 본인확인기관으로 포함하였다. 주민등록번호 수집 제한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들이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통신사를 통해서도 여러번 주민등록번호 유출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 지난 8월 1일 취임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온라인상의 익명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개별법(공직선거법, 게임산업법 등)상의 인터넷 실명제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해야할 일이 있다. 바로 아이핀과 본인확인기관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명의도용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명의도용 여부를 확인해주겠다는 사기극은 이제 그만하자. 내가 어느 사이트에 가입했는지 파악하고, 필요없는 사이트를 탈퇴하는 일 따위는 이용자 스스로 책임질 일이다. 고작 그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정부가 내 인터넷 사이트 가입 내역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하겠는가?
오병일 정보인권연구소 이사

 이 글은 PD 저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