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20세기 저작권으로 전쟁을 계속할 것인가

By 2012/03/1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오병일

 

지난 1월 18일, 수천 개의 사이트가 온라인 파업에 들어갔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영문 사이트(http://en.wikipedia.org)는 서비스를 중지하고 소위 ‘블랙아웃(black-out)’에 돌입하였으며, 수많은 사이트들이 로고나 헤더에 ‘STOP CENSORHIP’이라는 검은 바를 달았다. 심지어 구글마저 검색창 아래에 ‘웹을 검열하지 말라고 의회에 말하세요!(Tell Congress: Please don’t censor the web!)’라는 문구를 달고 항의에 동참했다. 일명 ’미국 검열의 날(American Censorship day)’. 이 온라인 시위는 미국 하원과 상원에 각각 발의되어 있는 온라인해적행위방지법(SOPA)과 지적재산권보호법(PIPA)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이 법안은 미국 법무부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사이트도 차단할 수 있게 했으며, 결제 서비스나 광고 서비스를 거부하도록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인터넷 업체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이용자들은 이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터넷의 혁신을 가로막으며, 인터넷의 안정성을 해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항의 시위의 결과 법안의 표결은 연기되었고, 이제 이 법안의 통과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저작권 강화에 대한 항의 시위는 며칠 후 유럽으로 옮겨갔다. 지난 2월 11일, 유럽 각 국의 수십 개 지역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는 지난 1월 26일, 유럽연합이 위조방지무역협정(ACTA, 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에 서명한 것에 대한 저항 행동이었다. 현재 유럽의회의 비준절차를 남겨두고 있는데,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연합 일부 국가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에 반대하고 있다. ACTA는 지적재산권의 집행(enforcement)을 주 내용으로 하는 복수국가간 협정으로 유럽연합, 미국, 캐나다, 일본, 한국, 호주, 멕시코 등이 참여하고 있는데, 인터넷에서의 불법복제를 규제하기 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은 ACTA가 표현의 자유, 의약품 접근권, 문화와 지식에 대한 접근권에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해외 인터넷 기업들과 이용자들이 이와 같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과 이용자들은 상당히 평온하다. 사실 위 규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강력한 규제가 이미 국내에서는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내 저작권법은 이미 2006년 개정을 통해 문화관광부 장관이 온라인상의 불법복제물에 대해 삭제명령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 조항은 2009년 법 개정을 통해 소위 ‘저작권 삼진아웃제’로 확대되었다. 즉, 저작권을 3회 이상 반복적으로 침해한 이용자의 계정 및 게시판에 대해 최대 6개월 동안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문광부 장관에 부여한 것이다. 그나마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는 조항은 삭제되었다. 저작권 삼진아웃제는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사법적인 판단도 없이 이용자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제도로서 과도한 규제일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많은 논란으로 어떠한 국제협정에도 반영된 바 없고, 이를 제도화한 국가도 거의 없다. 지난 2011년 5월 30일 개최된 제17차 UN 인권이사회에서 발표된 보고서에서 특별보고관은 저작권 삼진아웃제에 대해 각별히 언급하면서, “인터넷 통신 차단여부의 통제가 중앙집권화”되고, 지적재산권 위반으로 “인터넷 접속을 차단시킨다는 제안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인터넷 기업에게 ‘필터링’을 의무화한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국내 저작권법은 제104조에서 웹하드, P2P 등 소위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 대해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저작권 규제는 2011년에 더욱 강화되었다. 기본적으로 인터넷 부가 서비스는 신고제임에도 불구하고, 2011년 통과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P2P, 웹하드 사업에 대해서만 등록제로 전환한 것이다. 또한 시행령에서는 최소 2인 이상의 모니터링 요원을 두도록 하고 있으며, 게시물 전송자를 식별·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와 로그기록의 2년 이상 보관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필터링 의무화와 관련하여, 지난 2011년 11월 24일, 유럽사법재판소는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다. 즉, 저작권 침해 방지를 이유로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로 하여금 필터링을 의무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벨기에의 저작권 위탁기관인 SARAM이 스칼렛이라는 ISP에 대해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인데, 저작권 보호를 이유로 ISP에게 필터링의 의무화하는 것은 기업의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동시에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것이 이유이다. 

이와 같은 국내 저작권 규제를 보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항의 행동이 거세게 일어나지 않은 것이 신기한 일이다. 국내에서 저작권은 모든 기본권에 우선하는 헌법과 같은 지위에 있다. 

 

저작권은 저작권자의 배타적 권리만을 보호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배타적 권리의 보호와 함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소유권과 달리 보호 기간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보호 기간 내에서도 권리자 허락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정이용’ 영역을 두고 있다. 그러나 거대 문화산업의 로비에 밀려 갈수록 배타적 권리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저작권의 균형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저작권 강화는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커뮤니케이션 권리 등 이용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용자가 저작권을 침해하는지 ISP에게 모니터링을 요구하고, 저작권 침해 ‘혐의’가 있으면 사법적인 판단도 없이 삭제, 차단할 것을 요구한다. 지난 2009년 6월, 딸 아이가 손담비의 ‘미쳤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저작권 침해 주장에 의해 게시글이 삭제된 사례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저작권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비영리적 인터넷 방송의 제작, 드라마 팬카페를 통한 소통 등 일상적인 표현과 소통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 저작권 강화에 일조한 국회의원의 홈페이지에 신문기사 ‘펌글’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이것은 무지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들이 무지했다면 이러한 자연스러운 행위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인터넷의 확산은 기존 저작권 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흔히 웹2.0 시대의 가치를 개방, 공유, 협업 등으로 설명하고는 한다. 그러나 배타적 권리인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개방, 공유, 협업에 역행한다. 20세기의 저작권 모델을 적용한다면,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혹은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콘텐츠 공유 서비스가 가능할까? 모든 강의를 인터넷으로 공개하고 전 세계 누구나 수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MIT의 강의 공개(Open Course Ware, OCW) 프로젝트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이제 이용자들은 문화상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창작자로 변화하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직접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올릴 뿐만 아니라,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음악과 영상을 편집하여 자신만의 작품으로 재창조하기도 한다. 로렌스 레식이 ‘단지 읽는 문화(Read-Only Culture)’에서 ‘읽고-쓰는 문화(Read-Write Culture)’로의 복귀라고 규정한 바와 같이, 이는 문화의 본래적인 의미로 회귀한 것이다. 진정한 문화적 소통이란 창작물의 개인적인 소비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비틀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지 않은가. 

 

저작권의 궁극적인 목적은 ‘문화의 발전’이다.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의 부여는 문화 발전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 환경에서 ‘지식에 대한 배타권’이 문화 발전에 진정 도움이 되는지 성찰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 이와 같은 성찰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비단 이명박 정부 하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산업으로서의 문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을 뿐, 인터넷 환경에서 창작, 혁신, 소통의 장애물로 기능하는 저작권의 문제는 조명받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저서 <Remix>에서 레식이 질문했듯이, 우리는 20세기의 저작권 모델에 기반하여 우리의 아이들과 전쟁을 치룰 것인가, 아니면 문화를 생산, 향유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것인가. 

 

* CIO 매거진(http://www.ciokorea.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