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액트온

코드 : 잉여剩餘

By 2010/08/02 10월 25th, 2016 No Comments
laron

인터넷 커뮤니티의 자조 섞인 농담부터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다루는 학술 영역까지 가로지르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잉여剩餘 ’라는 단어를 꼽을 것입니다.

잉여는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소여所與라는 말의 반대말처럼 느껴집니다. 소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 그래서 변형되고 가공되는 것이라면, 요즘 사용되는 잉여는 가공했으나 시장에서 실패한 것, 우리가 버려야 할 것으로 비추어집니다. 인간 문명의 발전이 잉여생산물을 통해 가능했다는 그 옛 잉여가 아닌, 더 이상 처리할 수 없고 사람들의 욕망도 자극하지 못하는 쓰레기로서의, 현대의 잉여.
잉여라는 말의 다양한 용법을 봅시다. “잉여질 했다”는 “뭔가 해야 하지만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놀았다”이고, 사회적으로 보기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가지고 싸우는 이들을 보고 “잉여배틀한다” 합니다. 여러 잉여의 용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사회에서 주체/주류놀이에 배제된 이들의 씁쓸함이 담겨 있습니다. 학술적 논의는 더 나아가 산업 예비군으로서의 잉여노동력이란 옛 개념을 구석에 몰며 “시민이 아닌 자”, “배제되어야 할 자”,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자”,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라는 개념을 위해 잉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잉여는 정상(?)으로의 복귀를 예비하는 유예기간이 아닌 낙인이자 적극적인 배제라는 것입니다.

저는 잉여일까요? 당신은 잉여입니까? 권력은, 자본은, 미디어는 늘 우리에게 이 질문을 강요함으로서 삶에 끊이지 않는 불안을 심어두려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 질문의 효과는 강력해서 거의 대부분의 우리는 ‘그리되어선 안 된다’하며 이 세계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역설적으로 아직도 잉여는 이 사회가 발전하게끔, 회전하게끔 하는 원동력입니다.

잉여는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현대사회의 소여所與입니다. 잉여의 시대, 우리의 모든 행위는 생산은 머지않아 잉여가 되어 쓰레기통에 쳐 박히고, 다시 새로운 생산과 새로운 욕망을 창출하라는 시대의 사명 속에 허우적댑니다. 이 버거운 순환에 대해 잠시 멈춰서 생각 해 봅시다. 우리 잉여짓 한번 해 봅시다.

 

 

2010-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