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끝난 지 벌써 한달이 넘었지만,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트위터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스마트폰의 확산과 결부되어 ‘검지세대’라는 말까지 나온다. 연합뉴스가 만들어낸 신조어인 ‘검지세대’란 ‘검지를 이용하여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20대 초반의 신세대’를 말한다. 가부장적인 리더십과 냉전구도 강요에 불만을 가진 이들 검지세대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신들과 소통하지 않는 집권 여당에 패배를 안겼다는 것이다.
트위터의 위력은 지방선거에 그치지 않는다. 한겨레신문조차 광고를 거부한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도 트위터에서의 입소문에 힘입은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가 하면, 훼미리마트의 최저임금 위반건수가 66건(위반율 73.3%)으로 가장 많았다는, 청년유니온의 ‘전국 편의점 아르바이트 실태조사(427개)’ 결과가 알려지자, 트위터를 통해 ‘훼미리마트 불매운동’이 급속히 확산되어 최저임금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처럼 스마트폰과 트위터의 확산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기존의 소통기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이들이 제법 있는 듯하다. 트위터는 과연 새로운 정치 소통의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트위터 열풍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수혈은 대부분 정치인들에게서 온다. 최근 박근혜의 트위터 계정 개설과 노회찬의 트위터 개통 1주년 소감 글은 트위터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물론 내가 보는 시사점은 언뜻 떠오르는 트위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는 조금 다르다.
노회찬, 7월 6일은 또 하나의 생일?
“7월 6일 이후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삶의 관계 속에서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 것은 트위터생활 6개월도 더 지나서였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자신이 트위터를 시작한 7월 6일을 또 하나의 생일이라고 인식한다. 트위터에 그렇게 의미부여할 수 있을까. 트위터 또한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에도, 온라인 의사소통기제로서 이메일, 메신저, 블로그 등이 출현하고 영향력을 확장했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활용되던 핸드폰에서부터 이메일, 메신저, 블로그, 페이스북 등의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이제는 스마트폰과 트위터 또한 인터넷을 통한 소통 수단으로 하나 추가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변화가 과거 산업혁명기에 등장했던 통신수단들이나, 과거 신문을 뛰어넘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충격만큼 우리 생활을 급격하게 바꾼 것은 아닐 것이다. 트위터 등장을 경계로 현재와 포스트(Post) 트위터 시대가 구분되지도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단지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고, 이에 대한 대중매체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까닭에 굉장한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선거와 관련해서도 문자서비스, 블로그, 유튜브 등 동영상 등이 새롭게 선을 보이고 활용되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증된 바가 없다. 물론 한국에서는 참여억제적인 선거법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노회찬은 이렇게 얘기한다. “분명한 사실은 트위터는 이제까지의 사회적 소통방식 중에서 가장 진화한 것이며, 따라서 더 진화한 다른 방식으로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가장 진화한 형태라 해서 트위터가 사회적 소통의 모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위터는 가장 진화한 사회적 소통방식이라기보다는 가장 최근에 나온 소통방식이라고 해야 타당하다고 본다. 트위터를 사용하는 게 아무리 쉽다고 해도 트위터 자체를 진부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접근 가능성마저 차단당한 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진화된 방식이라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트위터라는 공간이 개인 사이 소통을 넘어서 집단적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부각되면 될수록 거기에서 소외된 이들은 더욱 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트위터상의 소통은 적정한 수준에서 적정한 이들과 이루어지는 것일까. 노회찬 대표는 7월 13일 현재 63,078명의 팔로워를 보유하여 정치인 가운데 유시민 국민참여당 주권당원(72,801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팔로워 수를 가지고 있다. 물론 팔로잉 수를 보면 유시민 씨의 123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65,545명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팔로워보다 팔로잉 수가 더 많은 노 대표는 둘다 소중한 친구들이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자 자신을 따르는 분들보다 그분들 말을 듣고자 자신이 따르는 분들이 더 소중하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자신이 팔로잉한 이들과의 소통을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6만명이 넘는 사람들과 어떻게 다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설마 그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에 올린 글들을 다 읽고, 그 중에 일부를 선별하여 리플도 하고, 재전송(RT)도 하는 것일까. 자신의 팔로잉 수가 300명을 넘어가면 타임라인으로 올라오는 글들을 읽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6만명이 넘는 이들이 글을 쓴다면 하루내내 스마트폰을 켜고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타임라인을 확인한다고 해도 절대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트위터에서는 리스트(Lists)를 제공한다. 자신이 읽고 싶은 이들의 글만 선별(filtering)해서 읽을 수 있도록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글들을 용이하게 분류하고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리스트에서 제외된 이들과는 팔로잉을 하고 있을지언정 원천적으로 소통이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트위터는 소통의 도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소통이 많이 일어나게 하지도 않고, 소통이 원활하게 일어날 수도 없다.
트위터와 언론
물론 트위터로 상징되는 사회적 소통의 활성화는 언론을 대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트위터를 비롯한 다양한 소통수단의 발달은 지배권력 및 자본과의 유착을 무기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소수 거대언론사들의 독점적 지위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타워에서 화재가 났을 때 연합뉴스보다 1시간 이상 빨리 트위터에서 이 소식이 알려졌던 것처럼, 트위터는 주류 언론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하여 생생한 분위기를 신속하게 전달하는가 하면, 언론이 미처 취재하지 못한 것까지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정부 부처에 보도 유예 요청이 걸려 있는 사안이 트위터에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고, 주류 언론의 기사에 인용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트위터가 제기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검증되지 않은 무분별한 정보들이 쏟아져나온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체 자정작용을 통해 해결이 되고 있으며, 해외 언론에서도 트위터가 주류 언론의 한계를 보완해줄 것으로 보고 그 활용방안을 마련하고자 애쓰는 것도 트위터의 소셜뉴스로서의 역할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
우선 신속성, 속보기능이 언론의 전부는 아니며, 가끔씩 트위터가 기성 언론보다 더 신속하게 사건사고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화제가 되긴 하지만, 140자 이내의 단편적인 소식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독자들이 훨씬 많다. 몇 차례에 걸친 글을 통해 또는 관련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매체의 기사나 관련 글들을 링크하여 풍부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확인되는 트위터의 힘은 정보의 원천이라기보다는 연결통로로서의 역할에서 나오는, 간접적인 것이다.
트위터에서는 속보성 경쟁이 이루어진다. 관련기사 링크를 통해 행해지는 속보성 경쟁에서는 얼마나 풍부한 분석내용을 담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단편적인 것이라도, 설사 조중동에서 내놓는 것이라 할지라도 사실 그 자체를 신속하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링크된 글들이 숙독될 것인지도 의문스럽지만, 이러한 속보성 경쟁 속에서 다른 관련기사들에 비해 조금 늦게 인터넷 상에 올라오긴 했지만, 훨씬 풍부하고 분석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기사들은 주목되기 어렵게 된다.
더욱이 트위터를 통해 사회적 소통이 활성화된 것에는 기존 인터넷매체와 오프라인 언론사들의 역할도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트위터 개통 소식이 알려진 것, 그가 며칠 만에 2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확보했다는 것은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정보이다. 마찬가지로 노회찬 대표가 7월 6일을 또 하나의 생일이라고 말한 것도 나는 인터넷매체인 레디앙에 보도되었기에 알게 되었다. 물론 노 대표가 트위터에 올린 “[트위터 시작일] 트위터 시작일(2009년 07월 06일)로부터 364일 지났습니다http://twtbiz.net/user/hcroh”라는 글을 통해 알게 된 이들도 꽤 있을 테지만 레디앙보다는 적을 것이며, 노 대표가 이를 계기로 말하고자 했던 것까지 파악하는 사람을 비교한다면 그 차이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최근에는 트위터를 통해 속보를 접하고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자주 접하는 기사제목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기 때문에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는 누리꾼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하지만 단지 언론에서 제공하는 뉴스만이 트위터를 통해 유통되는 것은 아닐 터, 기사가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별하는 데에도 상당한 수고가 필요하다. 언론이 보여주는 대로 보지 않고 비슷비슷한 뉴스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설정하여 중요한 기사만을 직접 골라서 보는 데에도 누군가의 노력이 요구된다. 게다가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가는 기사들은 자신의 팔로워들의 관심을 끌고 자극성이 짙은 것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제목으로 승부를 걸고, 제목이 기사의 전부인 오프라인 주간신문들과 어떠한 차별성이 있을까.
트위터의 영향력
정보화의 영향력을 다룬 가설 중에 강화정치 모형이라는 게 있다. 정보화가 조직 내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와 관련하여 기존의 권력자, 상층부의 권력을 강화시키는데 기여한다는 가설이다.
트위터 또한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순수하게 트위터를 통해 스타로 거듭난, 이를테면 엄청난 수의 팔로워나 영향력 있는 재전송(retweet), 인용(mention), 글쓰기―블로그 글쓰기를 포스팅이라고 한다면, 트위터에 글을 남기는 것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명해진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드물게 존재하는 이들이 과잉 부각되었을 뿐이다.
트위터를 잘 활용한다고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트위터 외의 공간에서 이미 일정한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지고서 자신을 부각시키는 또다른 부가적인 수단으로 트위터를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당연히 트위터에 똑같은 글을 쓰고 똑같은 글을 재전송, 인용, 링크하는 경우에도 사람마다 행사하는 영향력은 동일하지 않다. 시민들이 노동자를 위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이를 알려나가기 위한 ‘노동자를 생각하는 캠페인’이라는 트위터모임http://bit.ly/bDGtOX(개설자 슈풍크 @poonk77)이 있다. 여기에서 펼친 여섯 번째 캠페인은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된 것으로, 최저임금 결정에 관심을 갖고 이 캠페인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공감대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음에 틀림없다. 특히 이 최저임금 캠페인에 참여한 트위터는 다른 캠페인들보다 상당히 많았는데, 그 이유는 노회찬 대표가 해당 글을 재전송(RT; Retweet)한 것에 다시 RT를 하여 참여했던 이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트위터모임에서 관련 글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노회찬 대표와 개설자를 제외하고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 RT @hcroh: 응원합니다 RT @poonk77: (노동자를 생각하는 캠페인) 내년엔 최저임금이 시급 5,180원으로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최저임금 결정되는 6월 29일까지 힘을 모아주세요. http://durl.kr/n847 #노생캠_”
이런 예들을 통해 트위터에서 행사되는 영향력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트위터에 관심을 갖게 되는 정치인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파악할 수 있다.
물론 트위터는 의제 설정(agenda setting) 수단으로는 유의미하다. 주류 언론이 트위터상의 움직임에 주목하기 쉽고, 이를 다루기 용이하기 때문에 쉽게 기사화ㆍ의제화될 수 있는 측면도 있겠지만, 갈수록 다음 아고라나 각 포털 사이트의 기사에 딸린 댓글과 함께 트위터상에 올려진 글들이 심심치 않게 인용되어 기사화되는 현상(인터넷 매체에서는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이 늘어나고 있는 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면에 주목하여 대중이 직접 의제 설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인지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시사IN 등의 인터넷매체들이 트위터에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다. 인터넷매체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는 하다.
그러나 트위터를 통한 의제 설정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의제설정을 위해 들이는 노력과 비용에 대비하여 트위터와 다른 수단을 비교할 경우 어느 쪽이 효과가 더 있었는지 등에 대한 분석이 요구되는 것이다.
트위터, 선거문화를 바꿨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상대적으로 트위터와 같은 인터넷매체를 잘 활용했다고 자임하는 친노세력들은 트위터 덕분에 투표율도 오르고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 일반인뿐만 아니라 소설가 이외수를 비롯한 유명인과 연예인들도 투표 ‘인증샷(증거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투표를 독려했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젊은 트위터 이용자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시시각각으로 투표캠페인을 벌인 대다가, 출구조사 결과가 트위터를 통해 먼저 흘러나오고 유통이 되면서 오후 들어 투표율의 급상승에도 기여하였다는 주장은 대중매체에서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트위터를 비롯한 SNS의 위력은 앞으로의 선거에서 더욱 커질 것이며, 스마트폰의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트위터 이용자도 늘어날 것이기에 그 만큼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위터를 접하지 못했거나 활용하지 않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분석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던 김철균 청와대 뉴미디어 홍보비서관의 언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위력 발휘는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트위터의 가입자 수가 제대로 파악도 안되지만 업계에서는 많아 봐야 40∼50만명으로 보며 그것도 수도권에 집중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강원도나 제주도와 같이 투표율이 높았던 곳과 트위터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트위터 이용자들끼리 투표에 많이 참여하자는 얘기는 했겠지만 그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한다.
이러한 견해는 6.3 지방선거에서 20대 젊은 층의 투표율이 27%로, 과거 선거에서의 20대 투표율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통계에 부합한다. 많이 잡아야 70만 명 정도에 불과한 트위터 이용자들이 아무리 재전송과 인용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트위터에 대해 소극적인 의견은 온오프라인 상에서 그리 표출되지 않으며, 결국 적극적인 트위터 활용론자들의 주장이 대세를 점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현실 정치와 엇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트위터에 뛰어든 것을 보고 보수세력들도 트위터를 비롯한 SNS의 유용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보수세력들은 트위터에서 뿐만 아니라, 아니 트위터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서 훨씬 다양한 대중들을 만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한다.
지배계급이 어떤 참신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정책수단이나 홍보수단을 채택하지 않거나 그에 소극적이라면 그것은 그보다 더 훌륭하고 효과적인 기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 유용성이 입증된다면 압도적인 행ㆍ재정력을 이용하여 다른 누구보다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던가 아니면 아예 어느 누구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거나 봉쇄할 것이다. 리처드 엘리스는 『직접참정제도, 민주주의의 허상인가? ―미국의 주민발안제도 현장』(2007, 아르케)에서 직접민주주의 기제들이 시민을 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좀 더 민주적인 정치과정이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직과 자금력을 지닌 특수이익집단이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활용하는 데 중심에 서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터넷 공간, 특히 트위터 또한 이런 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트위터 자체는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진보적인 성격을 속성으로 하지도 않는다. ‘반MB’가 트위터의 지배적인 정치적 코드임을 들어 트위터 공간에서는 진보적 정치성향을 가진 이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면서, ‘트위터만은 다르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것은 트위터 이용자들의 자기기만이다. 특히 유시민 씨와 같은 친노세력 또한 보수정치인이라고 보는 내 입장에서는, 트위터 또한 그런 보수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은 공간이며, 이들을 진보적 이미지로 상징조작하는 진보분칠(Redwash – Greenwash에서 착안한 조어이다)일 뿐이다.
트위터에서 정치 소통은 가능한가?
트위터는 단문만 달 수 있는 댓글 기능에다가 이전의 메신저 기능을 결합시켜 실시간으로 전송까지 가능하게 만든 도구라고 할 수 있다. 140자의 한정된 짧은 메시지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특성상 깊은 논의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트위터에서 논쟁이 붙는다 하더라도 차분하게 근거를 밝히고 논리를 펴기 곤란하기 때문에 이를 한꺼번에 뭉뚱그려 단순명쾌하게 설명하는 ‘주장과 선언, 결론’만이 오고갈 뿐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공유하기에는 부족한 매체이기 때문에 피상적인 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특히 정치적 현상에 대한 인상이나 소감을 털어놓을 수는 있겠지만, 그밖의 것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가진 경제학적 지식이나 인식을 공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트위터는 다른 지면이나 인터넷매체를 통해 논의를 하고 이에 추가되는 것들을 간략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보조적인 기제에 불과하다.
140자 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요약하고 핵심만을 표현하도록 만드는 트위터는, 스스로의 생각을 간결하게 정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그 이상의 심도 있는 논의 전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얼마 전에는 트윗토론회도 개최된 바 있다. 하지만 장문의 글쓰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여러 개의 글로 나누어 자신의 의견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데도 글을 주고 받으면서 차분한 토론이 가능할까. 트위터 상에서도 토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그 만큼의 인내심과 여유를 발휘해야 한다는 비용이 든다. 이를 감안하면 차라리 블로그나 카페 등의 매체에 글을 쓰거나 별도의 토론공간을 인터넷 상에 만드는 편이 낫다.
단문만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블로그보다 나을 것이 없고 상호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 중얼거림에 더 가깝기 때문에 메신저 대화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트위터가 확산되는 걸 보면 그 매력이 있는 건 한 듯하다. 갈수록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는 세태와도 맞아떨어지는 측면도 이에 한 몫 했을 것이다. 물론 트위터는 물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나 지금 이 글과 같이 기고하는 행위도 같은 맥락에 있기는 하다.
트위터 상의 정치 소통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트위터가 과연 이용자들의 지적 능력을 고양하고 정치적 역량을 배양시킬 수 있을 것인가 여부이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이 트위터 상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거침없이 표명할 수 있는 만큼 참여민주주의 제고에는 일정하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더욱이 이번 지방선거에 나타난 것처럼 트위터는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층들에게 선거를 하나의 놀이의 장으로 보도록 만들었고, 자신들의 참여와 관심으로 정치 지형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들로 인해 앞으로의 선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트위터를 개설한 것도 이런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장시간 동안 뛰어난 언변으로 토론에 임하거나 설득력 있는 문장력를 발휘하기보다는 툭툭 던지는 ‘단문’ 위주의 짧은 메시지를 통해 재미를 보았던 박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은 트위터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트위터는 누구나 부담 없이 일상의 평범한 풍경을 담아낼 수 있고, 정치인들이 직접 면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식시키기 때문에 정치와 시민들간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 느낌을 준다. 시민들과 정치인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할 수는 없지만,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짧게 끊어서 단속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트위터의 속성은 이성적 공간이라기보다는 감성적 공간임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는 주류 언론에 의해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는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냉소의 악순환을 끊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성의 정치를 강조해온 이들이 보수언론, 보수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이 꺼림칙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것은 바로 이성과 토론에 기반한 정치가 아니라 감성정치였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는 있을지언정 심도 깊은 토론을 하지 못하는 트위터의 속성상 트위터를 아무리 활발하게 사용한다 하여 이용자들의 정치적 역량이 제고될 리 만무하다.
일상의 정치는 참여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트위터만으로는 참여민주주의를 넘어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에 도달하기 어렵다. 이제는 더 많은 참여뿐만 아니라 더 깊고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2010-07-22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트위터도 일종의 트렌드가 아닐지..^^ 트렌드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은 저도 마찬가지지만 중독성이 있는듯합니다.
진보넷 활동가인 저도 요새 트위터를 ‘잘’ 해보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종종 진보넷 사이트에 들러주세요. 좋은 글 많이 올려둘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