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는 2월 17일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거행된 ‘민중의 스승 고 김진균교수 민주사회장’에서 발표한 백기완선생님의 조시입니다.

 

조시(弔詩)
(김진균 교수님 영전에)

 

백기완

 

참이 아니면 말을 않으시고
옳은 길이 아니면 가질 않으시고

 

한낮인데도 이렇게 캄캄한 밤을
딱딱 부싯돌처럼 지피시던
님이시여

 

마침내 봄은 오건만
그래도 오지 않는 세상의 봄을
온몸으로 틔우시더니
뭐이가 그리 바빠 먼저 가시나이까

 

지금 우리들의 눈엔
절망도 아니 보입니다
모두가 제 울타리만 넓히려고 꽝꽝
마치 가문 웅덩이의 피래미들처럼
서로 물어뜯고 서로 할퀴는 이 막판에

 

가슴까지 활짝 열어
모두를 내놓으시더니
뭐이가 그리 바빠 먼저 가시나이까

 

지금 우리들의 네 귀퉁이는
몽땅 끊겨 있습니다

 

악랄한 자본 축적이
역사 진보로 둔갑하고
거짓 경쟁에서 이기면
영웅도 되고 스승도 되고
문화 예술은 가진자의 도락이요
학문은 이긴자의 쓸모로 강요되는

 

이 허무의 한복판에 떡하니 나서
학문할 바, 창조할 바, 세계진보의
실체를 디리대던 선생이시여

 

밤을 찢어발기는 싸움은
한 점 이슬로 남는다더니
그냥 그렇게 한 점 이슬로 가시는 겁니까

 

하지만 우리들은 님을
땅에 묻질 못하겠습니다
이 시대의 이정표, 민중의
하제 희망으로 올려 세울지니
님이시여 정말 원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