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실시(强制實施)란,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특허 받은 발명을 타인이 실시할 수 있게 한 제도이다. 물론, 특허권자에 대한 보상이 있고, 특허권자의 권리가 소멸되거나 정지되지 않는다. ‘실시’란 특허발명의 이용, 즉 생산, 판매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특허법의 목적이 특허권자에 대한 보호와 함께 사회 공공의 이익을 천명하고 있기에, 강제실시는 특허제도의 필수적인 장치이다. WTO의 트립스 협정 제31조, 그리고 우리나라 특허법 제106조와 107조에서도 강제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특허법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 긴급사태나 기타 극도의 위기 상황, 혹은 공공의 비영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 강제실시를 발동할 수 있다.
강제실시는 특허권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발동되며, 특허권자가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특허 발명을 제3자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특허를 보호하지 않는 행위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강제실시가 발동되어도 특허는 유효하다. 특허법의 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특허의 ‘보호’란 특허권자의 허락이 없다면 아무도 그의 특허 발명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허권자는 다만 정부나 제3자의 사용을 막을 수 없을 뿐이며, 대신 특허권자는 ‘정당한’ 보상금을 받으므로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강제실시는 만성적인 의약품 부족 현상과 제약회사의 가격 폭리 정책에 대한 효과적인 억제 수단으로 평가 받는다. 실제로도 강제실시 요구가 빗발치는 대상이 바로 의약품이다. 미국의 경우 강제실시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로, 2001년 9‧11 사태 이후 탄저병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독일의 ‘바이엘’사가 공급하는 치료제인 ‘씨프로’에 대해 강제실시를 검토했다. 그 즉시 바이엘은 씨프로를 저렴한 가격에 미국에 공급할 것을 약속했다.
어떤 약을 생산할 수 있는 제약회사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면, 의약품을 저렴한 비용에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경우 약값은 협상을 통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만들도록 해서 저절로 내려가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설령 제약회사가 자율적으로 약값을 내린다 하더라도 어떤 약을 생산할 수 있는 제약회사가 하나뿐이라면, 의약품의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공급하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 약은 다양한 곳에서 생산되어야만 한 국가, 또는 국제적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다. 강제실시는 약값의 인하와 안정적 공급이라는 이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시키면서 의약품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형성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국내에서는 1961년 특허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의 강제실시 청구가 있었으나, 1978년의 강제실시를 제외하고 모두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이 중 2002년, 2008년에 각각 청구된 두 번의 강제실시는 모두 환자들이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2002년 1월 30일, 한 알에 약 25,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이 책정된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국내에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백혈병 환자들과 시민단체는 강제실시를 청구했다. 그러나 2003년 3월 4일 특허청은 “발명자에게 독점적 이익을 인정하여 일반 공중의 발명의식을 고취하고 기술개발과 산업발전을 촉진하고자 마련된 특허제도의 기본취지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린다.
2008년 12월 23일, 국내의 에이즈 환자단체는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에 대해 강제실시를 청구한다. 제약회사 로슈는 정부가 제시한 푸제온의 가격에 불만을 품고 식약청의 시판 허가가 내려진 이후 4년 넘게 국내에 푸제온을 공급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2009년 6월 19일 특허청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특히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판단하고 또 다시 기각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