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제도

지문날인, 목적별신분등록제, 전자주민증(전자주민카드), 주민등록번호

 


1962년 6월 시행된 주민등록법은 군사쿠데타 정권이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불순한 동기에 의해 제정한 이후 국민 전체의 개인정보를 국가의 수중에 장악하는 방법으로 이용되어왔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강화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애초부터 거주관계 및 인구의 동태를 파악하여 행정사무의 편리를 추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주민등록법은 이후 1997년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한다는 목적을 추가하였지만 법률의 전체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된 이러한 구절의 추가는 다만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목적조항의 내용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의 내용이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생활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역할 그대로 남아있음으로 인하여 목적조항과 개별 조항들의 체계가 심각한 구조적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는 기현상을 낳고 말았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주민등록법의 내용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초래되는 국민 개인정보의 과도한 유출과 침해는 정보화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게 되었으며, 현행 주민등록법의 체계로는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법이 제시되지 못하는 한계마저 노출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주민등록법은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한 단계라고 판단되며, 정보화사회에 있어서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이 작업은 더욱 절실한 과제라고 판단된다.

현행주민등록법의 문제점

1. 주민등록제도가 아닌 국민등록제도로서의 역할
현재의 주민등록법은 제1조 목적에서 “주민”의 생활편익과 이와 관련한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한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체계에 있어서는 주민이 아닌 국민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민등록법이 가지고 있는 여타의 문제점을 노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주민등록법 제2조는 사무의 관장을 지방정부에 맡기고 있으면서도 정작 주민등록에 관한 사무의 지도 감독은 행정자치부장관에게 맡기고 있다. 그 결과 주민행정업무의 최일선을 담당하고 있는 지방정부는 단지 말단의 기록과 수집에 역할이 한정된다. 지방정부가 대면적 관계를 통해 주민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경우와 대비할 때, 수집된 정보만으로 주민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중앙행정기관의 업무처리는 과도한 주민정보를 필연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중앙행정기관이 통괄하는 이러한 주민행정업무관계는 일괄적인 개인정보처리구조를 필요로 하게 됨으로 인해 인권을 침해하는 출생시 주민등록번호부여나 전 국민 지문날인, 또는 주민등록증 의무발급 등과 같은 불필요한 행정행위를 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결과적으로 법률의 직접 당사자를 “주민”이 아닌 “국민”으로 상정하게 되어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이념을 탈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는 행정의 자치와 참여의 자치라는 양대 요소가 결합될 때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대전제 하에서 볼 때, 중앙행정기관이 주민행정업무의 총 책임을 맡은 채 지방정부를 오퍼레이터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이러한 구조에서는 결코 올바른 의미의 지방자치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2. 과도한 개인정보의 수집
현행 주민등록법상에는 주민이 행정기관에 등록할 정보는 불과 10여 가지에 불과하다. 즉, 주소지 이전시 신고해야할 11가지의 항목(법 제10조)과 주민등록증에 수록할 내용(법 제17조의9 제2항) 만이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등록법 시행령에 근거한 각 별지서식의 양식에 의해 수집되고 있는 주민 개인정보는 물경 100여 가지가 넘는 실정이다.
당사자인 주민들은 별지서식의 양식을 확인하지 않는 한 자신의 개인정보가 얼마만큼 행정기관에 등록되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며, 이것은 또한 법률이 정하고 있는 정보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개인정보를 시행령의 명문 규정도 아닌 별지서식의 양식에 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일부 개인정보의 경우에는 법률의 위임범위를 명백히 초과한 채 정보의 수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전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을 수집하는 것만 보아도, 법률에는 분명 주민등록증에 수록할 사항으로 지문을 규정하면서 손가락 하나만의 지문을 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어디를 보아도 열손가락의 지문을 채취해야한다는 규정이 없고 다만 시행령상의 별지서식에만 열손가락 지문을 찍는 난이 마련되어있을 뿐이다. 이것은 법률의 규정에도 없이 주민의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는 행위로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며, 이 외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는 시행령상의 별지서식 양식을 볼 때 수 없이 찾을 수 있다.

3. 정보주체의 자기정보통제권 제한
현행 주민등록법은 정보주체인 주민으로 하여금 행정기관에 보유된 자신의 정보를 열람하고 이에 대한 정정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았거나 법률의 근거 없이 수집된 자신의 정보에 대해 삭제, 반환, 폐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주민등록표 등을 열람하고 발급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보주체의 자기정보통제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민원사무처리를 위해 둔 규정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민등록법의 태도는 오로지 주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만 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서 국가가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데 적용되는 기본적인 원칙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처사이다. 즉, 국가가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함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중의 하나인 본인의 참여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행 주민등록법에는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한 피해에 대해 책임당사자인 행정자치부 장관의 의문에 대해 전혀 언급하는 바가 없다. 주민등록번호의 유출로 인하여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호 관리해야할 책임을 가진 행정자치부장관은 법률상 전혀 책임질 내용이 없으며 피해당사자인 국민이 온전히 이 모든 피해를 자신이 치유하여야 할 것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주체의 자기정보통제권에 대한 침해이며 정보주체로 하여금 과도한 피해부담의 의무를 지게하는 것으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4. 인권침해적 정보의 수집행위
현행 주민등록법은 출생과 동시에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도록 하고 있으며, 만17세가 된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도록 하는 한편, 주민등록법 시행령의 별지서식 양식을 근거로 주민등록증 신규발급대상자 전원에게 열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일괄적으로 번호를 부여하고 이 번호로 국민을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발상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백보 양보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번호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번호의 체계를 달리하여 여타의 목적별 번호를 이용해서 행정업무를 처리할 방법은 무수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년월일, 성별, 최초주민등록신고지역, 당일 신고순위, 첵크 디지트가 그대로 확인되는 번호체계를 구성하여 국민에게 강제부여함으로써 번호만으로 일정한 개인정보를 그대로 노출시키도록 하는가 하면, 공공영역에서는 물론이려니와 민간영역에서조차 제한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국민들의 개인정보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는 이러한 제도운영은 항상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과잉금지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모든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을 강제적으로 채취하는 것은 국민의 민감한 신체정보를 법률의 근거규정에도 없이 수집하는 행위로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이미 헌법소원 및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을 통해 기본권침해의 문제가 공공연히 비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와 경찰청은 국민의 안녕질서를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지문날인제도의 폐지를 거부하고 있다. 반면 법무부는 2003년 인권침해를 이유로 외국인의 지문날인제도를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외국인의 인권은 침해되어서는 안 되나 내국인의 인권은 침해할 수 있다는 희한한 논리가 현행 주민등록법 구조에서 용인되고 있는 것이다.
전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신분증을 발급하는 것 역시 국민의 일상을 언제든지 통제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으로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본인의 신원확인을 위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한정적으로 발급하여도 무방한 주민등록증을 강제로 발급하겠다는 것 자체가 현행주민등록법이 어떠한 발상에서 출발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가 될 것이다. 현행 주민등록법은 만17세의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바로 이러한 강제주의가 주민등록증의 위변조를 극심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즉, 범법자들에게 만17세 이상의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주민등록증을 위변조하고자 하는 범의에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현행 주민등록법은 사법경찰관에게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할 의무를 정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주민등록증을 항시 소지하도록 하고 있으며(법 제17조의10), 각종 사회생활에 있어 주민등록증만을 공인된 신분증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주민등록증이 없이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