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네트워크가 등장 초기부터 국내외적인 사회운동 진영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공간과 시간에 관계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이었다. 특히, 신문․방송 등 기존의 대중 매체들이 일대다(一對多) 소통방식이었던 반면, 게시판 등 널리 쓰이는 컴퓨터 네트워크는 다대다(多對多) 소통방식으로서 기존의 어떠한 매체보다 ‘민주적 의사소통’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남한의 사회운동 진영은 초창기부터 사설 BBS를 이용한 독립네트워크의 구축을 시도해 왔다. 1988년부터 시작된 사설 BBS 운동은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의 <대자보 BBS>, 민중교회의 <평화만들기>, 사당의원의 <북소리 BBS>, 아리컴의 <노동해방통신> 등이 대표적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전신인 <참세상 BBS> 역시 노동운동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널리 이용할 수 있도록 할 목적으로 1994년에 설립된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와 같은 상업적 PC통신망이 대중화하면서 사설 BBS의 흐름은 쇠퇴하게 된다. 이는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대규모 PC 통신망이 더욱 많은 이용자들을 유인하게 되고,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참세상이용자한마당참세상 BBS 이용자 한마당. 왼쪽이 운영자인 김형준씨. 참세상 BBS는 항상 이용자들이 BBS 운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대신 상업통신망의 ‘진보 동호회’가 사회운동의 주요한 소통공간으로 부상하였다. 하이텔의 <바른통신을 위한 모임>, 천리안의 <희망터>와 <현대철학동호회>, 나우누리의 <찬우물>과 같은 진보 동호회는 ‘속보란’ 운영을 중심으로 사회운동 진영의 소통 역할을 담당했다. 사안별로 동호회 회원을 중심으로 한 집중적인 여론 개입이나 말머리 달기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노동자대회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에는 동호회 속보란을 중심으로 ‘현장중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1996년 연세대 학생 노수석이 시위 도중 숨지자 PC통신 대학 동호회들이 일제히 동호회 로고 화면을 회색으로 바꾸어 조문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여론 형성에 일정하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동호회 운동과 더불어 사회단체가 내부적인 소통용으로 상업통신망에 ‘폐쇄이용자그룹(CUG, Closed User Group)’을 개설하는 경우도 증가하였다. 이들은 CUG를 내부 소통용이나, PC 통신 이용자들에게 각 단체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이용하였다. 특히, 민주노총과 같이 전국적인 규모의 단체인 경우에는 기존에 팩스로 소통하던 것에서 PC 통신 게시판이나 메일을 통해 소통하는 체계로 변화하기도 하였다.

한편 사회운동 진영의 홈페이지 개설은 1990년대 중반 <정보연대 SING>에서 인터넷 웹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각 단체들이 본격적으로 홈페이지 개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초기에는 PC통신이나 인터넷과 같은 매체의 특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여 모처럼 홈페이지를 구축하고서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기준없이 삭제하여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쳐 컴퓨터 네트워크는 사회운동의 주요 매체로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커뮤니티나 홈페이지가 특정한 이슈를 여론화시키는 독자적인 매체 구실을 하기 시작했고 자생적 이슈 그룹이 늘었으며 그에 따라 온라인 시위 등 다양한 방식의 활동이 시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