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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깊은굴쥐 (@ghoulGee)
구체적인 방식과 양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자본은 항상 노동자의 노동 과정을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노동자가 주어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는 노동자의 상태와 행위, 작업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감시가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노동 과정에 대한 감시를 더욱 은밀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 입장에서 감시는 그 자체로 인간 자율성에 대한 제한이고 나아가 프라이버시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감시이고 어디서부터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없습니다. 이 역시 노사간의 이해가 부딪히고 협상하고 싸워야 하는 또 하나의 공간입니다. 이를 위해 노동감시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감시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되었습니다. 최초로 ‘노동자감시 대응 지침서’가 나온 것이 2004년입니다. 당시 여러 노동・정보인권 단체들은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을 구성하고 『노동자는 감시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라는 제목의 지침서를 발간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노동감시를 규율하는 법률은 물론이고 개인정보의 보호에 관한 일반법조차 없었습니다. 감시설비를 통해 수집되는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규율을 통해, 일정하게 노동감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된 것은 2011년에 이르러서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도 개인정보처리자와 정보주체의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므로, 권력 관계가 불평등한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술은 더욱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라 불리는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여 다양한 결정을 내립니다. 사물인터넷 등 인식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자와 노동과정의 미세한 움직임도 파악하여 데이터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04년 지침서가 발간된 이후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기술의 발전과 법제도의 변화를 반영하는 지침서의 개정은 없었습니다. 행정자치부와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인사・노무편)」이 있지만, 직장 내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설명만을 제공할 뿐 감시설비의 도입 원칙, 절차, 안전조치에 대한 내용은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노동감시나 감시설비를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법제 역시 아직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노동감시와 관련된 회사 내 관행은 2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장입니다. 현장에서 감시설비가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지 인식하고, 부당한 감시설비 활용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감시 대응 가이드』는 현장에서 도입된 감시설비에 문제가 있는지를 인식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제도적인 혹은 전략적인 방향을 제시하려는 의도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가이드는 책자와 온라인으로 제작되며 기술과 제도 변화에 따라 업데이트될 것입니다. 이 가이드가 현장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노동감시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