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보험회사의 어떤 ‘과학적 연구’ 도 사회적 민주적 공공성에 부합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는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목적 외 활용이 되어선 안된다.
일부 언론 보도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 등 민간보험회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공단 개인정보 활용 신청을 다시 했다고 알려졌다. 국민건강정보자료 제공 심의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빠르면 1월 중에 개인정보 제공 결정이 날 예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강보험공단)이 보유, 관리하고 있는 개인정보는 건강보험 보장과 납세를 위한 정보이며, 누적된 개인 의료정보와 가계 정보가 집적돼 있어 매우 민감성이 높은 정보이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의 활용 제공 범위를 판단할 때 개인 민감정보 활용 위험을 사회가 감수할 만큼 그 목적과 결과가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공공성’이 있는지 여부가 판단의 준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심의를 통해 ‘퇴짜’를 맞은 민간보험회사들이 집요하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려 달려드는 일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첫째 사적 소유와 사적 이윤이 목적인 민간보험회사의 그 어떤 연구도 사회적 민주적 공공성 목적에 부합할 수 없다.
작년 9월 건강보험공단은 민간보험회사의 개인정보 활용 신청을 반려한 바 있다. 공단 반려의 이유는 민간보험회사의 자료 이용 계획이 과학적 연구의 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보험회사들은 이러한 점을 보완해 자신들과 관계를 맺은 개인 교수들의 ‘과학적 연구’ 방식으로 그 형식적 타당성을 보완한 이용 계획을 제출했을 것을 미루어 짐작된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 관리하고 있는 국민건강 개인정보는 민감정보 중 민감정보이며 개인정보의 양과 질 측면에서 다른 개인정보와 차원이 다르다. 공단의 국민건강 개인정보를 정보 주체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제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정하고 있는 기준을 넘어 더 엄격하고 엄밀한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그 활용이 우리 사회 공공의 이해에 부합한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실제 외국 정부 및 공공기관들은 일반적인 개인정보와 달리 건강정보와 의료정보에 대해서는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활용하려 할 때 더 엄격한 제한조건을 두는 이유다.
건강정보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건강정보 유출이나 악용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정보 인권 침해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민간보험회사들이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공단 국민건강 개인정보를 활용해 개인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상존한다. 보험료 지급 거절 사유를 만들고, 건강 취약자의 보험료를 올리고, 공보험인 건강보험 보장성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시장을 확대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이는 정방향에서 공익을 위반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공공의 자산을 사적으로 편취하는 문제와 더불어 그 활용의 결과가 건강보장 악화와 불평등과 차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둘째 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 제공 심의에서 중시되어야 할 것은 국민들이 자신의 개인 건강정보를 공단에 위탁한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 ‘과학적 연구’ 의 결과의 공공성과 주체의 공공성 심사다.
공공성 판단 기준은 목적, 절차와 과정, 결과, 주체 모두에 걸쳐져 있다. ‘과학적 연구’라는 기준은 목적의 공공성만을 보장할 따름이다. 과학적 연구 목적이라 하더라도 절차와 과정, 결과, 주체의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공단 국민건강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 연구 결과의 공공성을 담보한 활용이라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충분히 납득 가능할 정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①연구 결과의 공개 가능성이다. 민간보험회사가 수행한 연구 결과가 사회적으로 공개 및 공유될 수 있는가? 연구자 및 일부 관계자에게 연구결과가 독점되는 것은 아닌가? 연구결과가 사회적으로 공유되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발전적 논의에 활용 가능한가? ②이익의 독점 방지와 관련된 것이다. 민간보험회사의 연구를 통해 얻는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이익이 공유되지 않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될 집단은 없는가? ③사회적 낙인과 차별 방지에 대한 것이다. 민간보험회사가 개인정보를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더 증가시킬 위험은 없는가? 나쁜 디자인의 알고리즘이 사회적, 윤리적 문제나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은 없는가?
이 문제와 함께 더욱 중요한 심의 평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연구 주체의 공공성이다. 과학적 연구 참여에 대한 개인의 동의는 연구 수행 기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누가 동의 없이 내 개인정보를 사용하는가도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과연 민간보험회사라는 주체가 사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마련된 공동의 자산을 활용할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주체인지 여부에 동의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는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조항의 취지는 해당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개인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라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공공성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용에 개인의 정보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
민간보험회사의 국민건강 개인정보 활용은 설사 그것이 형식적 목적의 공공성에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의 공공성, 주체의 공공성 기준을 통과하기 어렵다. 따라서 건강보험공단은 민간보험회사가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국민건강 개인정보를 활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도에 판을 깔아줘선 안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개인정보 제공 심의위원들은 사회적 공익을 지키는 원칙과 기준 하에 심의를 진행해야 하며 국민 개인정보 제공 심의인 만큼 관련 심의 내용에 대한 모든 논의가 공개돼야 한다.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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