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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는 정보인권] 거대한 해킹 (The Great Hack){/}디지털 정치의 ‘원자재’로 전락한 인간

By 2019/08/20 9월 2nd, 2019 No Comments

감독 : 카림 아메르(Karim Amer), 지한 누자임(Jehane Noujaim)
개봉 : 2019년 7월 / Netflix
장르 : 다큐멘터리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배급을 시작한 영화 <거대한 해킹>은 2016년 미국과 영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을 다룬다. 데이터 정보 분석업체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을 통해 이용자들의 정보를 수합해 그것을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 캠페인에 활용했던 사건이다.
사람들은 디지털로 연결된 세계에서 경험을 공유하며, 그래야 덜 외로워지는 것처럼 생각하게 됐다. 또한 그것은 매년 1조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한 산업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 기업 순위를 보면 인터넷이 얼마나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1위부터 10위까지 상위를 차지하는 기업 대부분이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 등 IT기업들이다.
영화는 데이비드 캐럴(David Carroll)에게서 시작된다. 그는 개개인의 모든 정보를 데이터화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은 ‘원자재’나 다름없다고 여긴다. 플랫폼은 우리의 교류내역·카드결제·검색기록·위치정보·좋아요 기록 등 모든 걸 수집한다. 이런 데이터는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말해주고, 기업들은 데이터화된 소비자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관심사가 무엇이고, 무엇을 경계하는지, 그 경계를 넘어서려면 뭐가 필요한지 등 모든 것을 말이다.

영화 거대한 해킹의 장면. 열차안의 남자가 보이고 화면은 일그러져있다.

최악의 시나리오

2016년 미국 대선, 데이비드는 데이터 기술 발전이 가져올 최악의 시나리오를 발견했다. 그는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어떻게 사람들에게 ‘공포’와 ‘혐오’를 주입했는지 답을 찾으려 했다. 그 핵심사건이 2016년 트럼프 선거운동 작전의 디지털 무기 ‘프로젝트 알라모’다. 당시 트럼프 캠프는 하루 100만 달러(원화 12억 원)를 페이스북 광고에 쏟아 부었다. 바로 이 프로젝트 알라모를 주도한 게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이하 ‘CA’)다. 선거운동 당시 CA는 타겟이 되는 유권자들의 데이터를 쥔 센터이자 두뇌였다.
스위스 수학자 폴 올리비에 드헤이 역시 CA를 1년 넘게 관찰했다. 그는 개인화된 메시지를 보내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단 점에 착안해 CA가 모든 유권자에 대해 5천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 추론했다. 문제는 그게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해야 보이지 않는 진실이 드러날 것인가? 폴은 <미국의 유권자 데이터가 영국에 위치한 CA의 본사 SCL에 의해 가공됐을 것>이란 가설을 세운다. 그리곤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데이터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건다. 데이터에 대한 개인의 권리가 왜 기본권인지 증명하는 게 이 소송의 목표였다. 데이터를 얻어내면 이를 준거 삼아 페이스북-트럼프-CA 등에 흩어진 점들을 잇고, 괴물과 같은 시스템 내부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영화 거대한 해킹의 장면. 남자가 지하철에서 캠브릿지 애널리티카에 대한 트윗을 확인한다

트럼프는 어떻게 역전승을 거두었나

CA는 정치인들에 데이터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한 선거 캠페인 컨설팅을 제공해 시장에서의 기회를 만들려 했다. 공화당이 경선에서 트럼프를 후보로 선출하자, CA는 자신들이 갖고 있던 데이터를 들고 트럼프 팀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수천만 미국인의 데이터는 어떻게 CA 손에 들어간 걸까? 페이스북을 통한 설문조사가 그 수단이었다. 1명당 4~5000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얻어낸 CA는 이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성격을 분류하고, 행동 양식을 예측한다. 행동 양식은 즉 투표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이런 기준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맞춤형 비디오 콘텐츠를 제작해 대량으로 유포하는 게 트럼프 캠프 디지털팀의 계획이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트럼프의 역전승이었다.
카메라는 다시 런던으로 시선을 돌린다. <가디언>의 탐사 전문기자 캐럴 캐드월러드(Carole Cadwalladr)는 브렉시트 캠페인가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하루 12시간 매달린 치열한 탐문 끝에 그녀는 CA와 브렉시트의 연결망을 그리고, 이것이 20년 간 브렉시트를 주장해온 나이절 페라지(Nigel Farage)와 연결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페라지는 트럼프 캠프 관계자들과 친구처럼 지냈고, 특히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한 스티브 배넌(Steve Bannon)과 친했다. 배넌은 CA의 부사장이었고, 트럼프 당선 후 한동안 백악관의 실세였다.
CA 창립 전 배넌은 미국 극우언론 브라이트바트(Breitbart)의 편집장이었다. 평소 그는 이렇게 말하고 다니곤 했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다면 먼저 부숴야 돼. 부숴야만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에 맞게 설계되니까.”
배넌은 선거라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무기가 필요했다. 그는 유권자 데이터를 모을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대학 코간 교수를 찾아간다. 코간은 ‘원클릭 성격테스트’ 페이스북 앱을 만들어주는데, 한때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방식의 앱이다. 클릭 몇 번으로 이용자들의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CA는 전국 유권자의 심리학적 프로파일을 구축했다. 물론 미국인들은 자기 데이터가 이런 식으로 수집되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떤 동의 없이 국가 전체의 심리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 거대한 해킹의 장면.

내부고발자들이 나타나다

캐럴은 CA에 근무했던 모든 이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내부고발자 크리스토퍼 와일리를 찾게 된다. CA에서 데이터과학자로 일했던 와일리에 따르면, CA는 단순한 데이터 알고리즘 회사가 아니었다. 정치인들에게 풀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파간다-기계였다. CA가 운용한 알고리즘은 AI를 활용해 페이스북에서 신상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 알고리즘을 구축하는데 조력한 와일리는 말한다. “진짜 이상한 거예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사람들이 거저 주는 거예요!”
트럼프 캠페인 첫 회의가 있었던 2015년 11월, 와일리는 선거운동 책임자들을 만났다. 캠프 관계자들은 대규모 인구조사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알아내려 했다. 그럼으로써 개인별 온라인 전략을 짜려는 것이었다. 목표는 자명했다. 고민하는 사람들, 투표장 가서 마음을 정하는 사람들에게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CA의 정치공학자 폴 힐더도 ‘데이터 남용’을 실토했다. 그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가 사람들을 설득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전국단위 조사를 통해 어떤 유권자가 브렉시트 사안에 왜 관심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거쳐 정책이나 소통방식을 조정했다.
일련의 폭로로 모든 게 기사화됐다. 데이비드는 CA가 수집한 데이터를 돌려받게 해달라는 소송을 시작한다. 어디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누구와 어떻게 가공했는지를 요구한 것이다. 빅데이터 마케팅의 골리앗 페이스북의 주가 역시 폭로 이후 크게 하락했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 1200억 달러가 날아갔다. 영국 정보위원회는 CA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고, 청문회가 개시됐다. 조사결과 페이스북은 최소 2년 전부터 이런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때 CA 사건의 가장 중대한 내부고발자 브리트니 카이저(Brittany Kaiser)가 등장한다. 오바마 캠프 페이스북 운영팀에서 정치 관련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이후 엠네스티에서 인권과 국제관계에 관한 활동을 했고, EU의회와 UN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인권운동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그것이 시간 낭비가 아닐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엄청 메인스트림에서 활동해놓고?) 그 즈음 만난 게 이후 CA의 CEO가 되는 알렉산더 닉스(Alexander Nix)였다. 카이저는 닉스를 따라 공화당 행사에 참석하기 시작한다. 보수인사들과 친분을 맺고, 사냥과 같은 사치스런 취미활동도 즐긴다.
그리고 2013년 CA가 창립되자 본격적 활동이 시작된다. CA에게 있어서 페이스북은 여론을 변화시키는 실험에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었다. 이용자의 콘텐츠 참여율이 높기 때문이다. CA는 페이스북에 가장 많은 돈을 쏟는데, 대부분은 ‘설득 가능자’라고 분류해둔 사람들에게 쓰인다. 특히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니아·플로리다 등 스윙-스테이트를 선거구로 세분하고, 선거구마다 22,000명의 설득가능자를 산출한다. 그러면 캠프 내의 크리에이티브팀이 개개인에 맞춘 컨텐츠를 만들어 설득가능자들이 반응하도록 한 것이다. 블로그나 동영상 등 여러 형식의 콘텐츠로 집중 공략했다. 원리는 단순한 셈이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플랫폼에 올리면, 이걸 앱으로 모아 분석하고, 타깃에 맞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부정직한 힐러리를 물리치자”는 슬로건으로 집약된 수많은 창작물들이 인터넷에 뿌려졌다.

조사가 계속되고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영국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다. 변명으로 일관하던 그는 페이스북의 악용을 막는데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페이스북이 20억에 달하는 사용자들에게 개인정보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며, 첨단기술 대기업들이 디지털 크렙토크라시로 진화했다는 언론의 비판이 뒤따랐다. 사용자 데이터가 핵심인 이 사건에서 사법관할권은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저커버그는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에도 출석한다.
그러던 중 카이저는 CA 데이터의 출처가 적힌 리스트를 발견한다. 그중 핵심은 3000만 명의 페이스북 유저 데이터를 갖고 있다고 적시한 부분이었다. 시점 역시 CA가 페이스북측에 데이터를 지웠다고 말한 이후였다. 그렇게 CA의 변명이 거짓말이란 게 밝혀졌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경악스러운 실체

CA는 데이터를 악용해 대중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일을 한다. 그것의 가장 극명한 사례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DO SO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은 젊은 세대의 정치적 냉소를 증가시켜 20대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걸 목적으로 했다. 그리곤 유튜브 영상을 만들거나 수상 저택 앞에 낙서를 하는 등 다양한 ‘미친짓’을 벌인다. 선거 시기가 되자 흑인 젊은층은 투표를 하지 않았고, 인도계 젊은 층은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투표를 했다. 결과적으로 선거는 CA에게 수주를 준 인도계 정당의 승리로 끝났다.
이와 같은 CA의 개입은 트리니나드 토바고만이 아니라, 말레이시아·리투아니아·루마니아·케냐·가나 등에서 이어졌고, 브렉시트 캠페인에서도 마찬가지다.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에게도 여론조사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처럼 세상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게 바로 데이터였다. 그 때문에 영국 정부는 데이터에 대한 타깃 도구를 수출규제 품목으로 삼고 있고, CA의 방법론 역시 무기로 간주될 수 있다.
CA의 본사 SCL은 민간 군사업체였다. 영국군·미육군 특수부대·나토군, 심지어 CIA와 국무부·국방부와도 일하며 심리전을 담당했다. 심리전은 적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를 통해 전투 없이 전쟁을 벌인다. 이를테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할 때 대중을 상대로 심리전 기술을 펼쳐 전세의 우위를 점하는 것인데, 이라크·동유럽에서도 이런 심리전을 수행했다.
그러던 SCL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면, 각국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정보를 무기로 신기술을 융합시켜, 투표율 높이거나 낮추는 등 속임수들을 쓴 것이다. 처음엔 작은 나라들에 사용했고, 그 다음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브렉시트를 이뤄낸 것이다.
다행히도 알렉산더 닉스의 부정적 행위들, 이를테면 뇌물과 미인계를 쓴 정황 등이 뉴스를 통해 드러난다. 닉스는 직무정지를 당하고, CA도 폐업 신청을 한다. 하지만 이는 당국의 수사를 막고 증거를 없애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조사 과정에서 그는 “적법하게 얻은 페이스북 데이터를 업무 제안차 리브닷EU에 보내기만 했다”고 변명했다.
페이스북도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다. <가디언>이 CA 기사를 내려했을 때 페이스북은 변호사를 통해 기사를 내지 말라고 협박했다. 영국 의회는 18개월에 걸친 조사를 진행하고, 페이스북에 가짜뉴스를 방지할 규정 요구했지만 선거법 위반을 적용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영화 거대한 해킹의 장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한다. 그러니 CA와 같은 기업은 다시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의 개인정보는 여전히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돌아다니며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
이제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비롯한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거라 믿는 사람은 없다. 오늘날 세계에는 권위주의와 극우포퓰리즘 정권들이 생기고 있고, 개인정보를 갈취하고 감시하는 풍조는 심해지고 있다. SNS는 극단주의자들이 증오와 공포의 정치를 활용하고,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공간이 됐다. 사회를 분할해 정복하고 있는 것이다. 즉, “플랫폼들은 무기화”됐다.
하지만 우리는 좀처럼 그런 프로파간다가 우리에게도 통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첨단기술 플랫폼이 민주주의와 개인의 삶을 침해하고, 우리는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불편한 사실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진실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벌여온 싸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한국 사회 역시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데이터권을 어떻게 사유 재산 개념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면서,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식시킬 것인가? 나아가 우리는 자본과 권력이 마음껏 통제하고자 하는 개인과 대중의 데이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거대한 해킹>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편집자주 : <함께 보는 정보인권>진보네트워크센터의 구성원들이 정보인권 관련 미디어 및 문화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때로는 평범한 작품도 정보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