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함께 보는 정보인권{/}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를 보고 왔습니다.

By 2019/06/17 7월 12th, 2019 No Comments

전시기간 : 2019.04.25 – 2019.07.06
전시장소 :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C(서울 강남구 언주로 827)
관람시간 : 월~토: 오전 10시-오후 7시, 종료 30분전 입장마감 / 일요일 휴관
전시 소개 : 24 hours, 7 days, 우리는 감시를 당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오늘날에는 감시를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감시 행위 그 자체가 삶의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 가운데 깊이 침투하여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감시surveilance’의 문제와 이를 둘러싼 현재 진행형의 이슈들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전시 제목은 일반적으로 컴퓨터나 스마트 폰 등의 기기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보안 문구에서 차용한 것인데, 이는 ‘더 나은 보안’,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감시 시스템을 강화해 나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차단될 수 없는 틈과 예측 불가능한 오류와 통제, 프라이버시 침해와 같이 ‘감시’가 지닌 양가적 측면을 담고 있다. (이어서…)

우리는 기술 기업에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또는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자발적으로 개인정보를 기록하고 바치며(신정균의 ‘스테가노그라피 튜토리얼, 2019’), 이런 우리의 정보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현실의 편향적 시선과 왜곡을 그대로 반영하고 그로부터 취사 선별하여 특정 인종과 성별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멍청하고 차별적인 혁신적 기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이은희의 ‘콘트라스트 오브 유, 2017’).

이러한 기술과 알고리즘에 대한 시선은 언메이크랩의 ‘스마트 바디, 2019’로 옮겨간다. 인터넷을 한창 달구었던 감정인식 프로그램의 다양한 밈meme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업은, 특정한 알고리즘에 불과한 지능형 기계 눈(computer vision)이 인식/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된 ‘행복’의 어처구니 없는 표정과 몸짓 그리고 조소가 담긴 선언을 통해 신기술로 가득할 미래의 모습은 ‘스마트’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와 같은 디스토피아일지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쉬빙의 ‘잠자리의 눈, 2017’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CCTV의 영상을 모아 하나의 서사로 조합해낸 작업이다. 서사 자체는 흔히 볼 수 있는 허황된 막장 드라마의 사랑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지탱하는 영상이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과 사고가 찍힌 CCTV 푸티지이기에 감시와 프라이버시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끔 한다. 푸티지 제작기를 통해 쉬빙은 말한다. ‘기존의 법들은 오늘날 감시 시스템의 급속한 발전에 앞서 제정되었기 때문에 그것의 복잡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감시란 무엇인가? 심지어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에도 그 정의는 바뀌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그 기술이 뒤처진 것이 되는 순간 그 의미와 생명력이 퇴색될 위험성이 크다. 현실의 감시 문화는 더 악독하고 복잡하게 은폐되어 있으며 이미 조지 오웰의 1984를 교본 삼아 발전하고 넘어선 지 오래이고, 또한 그 발전속도가 놀랄만치 빠르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기술과 권력의 통제 욕망은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 안에서 안개 속에 감춰진, 미스터리하고 두려운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마치 각종 기업들이 문제의 해결책처럼 내놓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 일반 시민들은 알 수 없게 ‘블랙박스’에 포장되어있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명제를 필두로 수많은 기술지상주의적 시각과 희망찬 미래에 대한 선언이 언론과 정부를 관통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필요한 것은 감시 시대의 허황됨을 명징하게 직시하여 이해하는 일이다. 일반 시민과 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도 이러한 기술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이해를 바탕을 꾸준한 작업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주 : <함께 보는 정보인권>진보네트워크센터의 구성원들이 정보인권 관련 미디어 및 문화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때로는 평범한 작품도 정보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