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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불온한 인터넷, 자유를 외치다

By 2016/01/31 4월 13th, 2018 No Comments

[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편집자주 : 한때 인터넷에서는 무한하게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저절로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국가, 기업 등 권력자를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할수록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누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인터넷 도입 전후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검열과 감시의 역사, 그리고 시민의 저항 속에 변화해온 제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제보와 잘못된 정보는 이메일 della 골뱅이 jinbo.net 로 알려 주십시오.

1999년 6월 15일 오후 2시 21분. 나우누리 이용자 ‘이의제기’가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 제목은 “어설프다, 김대중!”. 몹시 ‘불온하게도’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마구 불러젖힌 이 게시물은 곧 논란을 불러왔다. 그리고 나중에 헌법재판소 “주요 결정 10선”에 꼽히게 된 어떤 소송의 주인공이 된다.

문제의 게시판은 3대 PC통신 중 하나였던 나우누리의 찬우물 동호회 게시판이었다. 찬우물 속보란은 사회운동에 대한 소식이 광범위하게 공유되던 공간이었고 이 글에 대한 조회수는 칠백 몇 회를 헤아렸다. 그러나 게시물이 올라가고 채 1주일이 지나지 않은 6월 21일, 정보통신부가 나우누리에 공문을 보냈다. 게시물을 삭제하고 게시자의 아이디를 사용중지하라는 명령이었다. 찬우물과 또다른 동호회에서 총 5개의 게시물이 삭제되고 각 아이디는 1개월간 사용을 중지당했다. 삭제된 게시물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항공대, 연세대, 경북대, 한총련 등 학생운동단체들이 서해교전에 대해 발표한 입장이라는 점이었다.

1998년 최초로 정권을 교체하고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표방하며 대북화해협력정책을 추진했으나 1999년 들어 발생한 서해교전으로 대북 긴장이 다시 높아지던 때였다. 구조조정, 조폐공사 파업 유도, 옷로비 등의 사건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어설프다, 김대중!”은 항공대 학생운동단체인 학생행동연대가 서해교전에 대해 정부를 비판한 성명이었다. 이들은 서해교전이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정권 차원의 ‘북풍’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권하루소식>에 따르면 정보통신부 명령은 경찰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불온통신의 단속’ 법에 따랐다고 했다. 이 게시물의 어떤 대목이 불온했을까. 서해교전에 대한 입장이 정부와 다르다는 것? 하지만 일부 언론과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오던 참이었다. 정말로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는 이유로 삭제되었을까? 통 알수가 없다. ‘권력자 맘’이라는 것. 그것이 ‘불온통신의 단속’ 법의 핵심 문제였다.

◈ 불온통신의 단속

불온(不穩).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한다. 민주주의 원리는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대한 비판까지 수용한다. 그게 설혹 노령의 대통령에게 무례하게 호통치는 글이라도 말이다. ‘불온’에 대한 처벌은 민주 국가의 헌법과 조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는 ‘불온’을 처벌해 왔다. 불온한 것이 통신공간일 때, ‘불온한 통신’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이 있었다.

구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는 “불온통신의 단속”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 정보통신부장관이 명령하면 전기통신사업자가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을 차단하도록 하였고 이 규정을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했다. 본래 이 조항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훨씬 전, 1983년에 제정되었다.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시절이었다. 1988년 경부터 컴퓨터 통신이 대중화하자 국가는 통신 게시물을 삭제할 때 종종 이 조항을 적용했다. 민주화 이후로도 오랫동안.

디지털 공간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완전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참여자가 비교적 소수여서 ‘네티켓’으로 불리기도 했던 자정적인 규칙이 잘 작동하던 때였다. 20년 전 PC통신 가입자수는 300만 명이 채 안되었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수가 1천9백만 명에 달하는 2014년에 비하면 매우 소박한 인구 규모였다. 무엇보다 이 공간에는 ‘행위’가 없었다. 오로지 ‘발언’만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가상 공간에 ‘표현의 자유 시장’이 개장한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희귀한 경험이 시작되었다. 시민들은 열렬히 참여했다. 87년 민주화, 그리고 문민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억눌렸던 정치적 표현 욕구가 폭발하였다.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 전, 시민들에게 키보드가 주어졌다.

검열은 빠르게 찾아왔다. 영화나 대중가요 음반에 ‘공연윤리위원회’ 표 사전 검열이 아직도 존재하였던 때였다. 디지털 공간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낭만이었다. 하지만 검열 역시 기대와 다른 이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이들은 전문적인 영화인이나 음악인, 정치인이 아닌 일반시민들이었다. 통신공간을 검열하겠다는 것은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갑남을녀들,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검열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곧 소동이 일었다.

가장 먼저 노크한 것은 국가보안법이었다. 1993년 경부터 PC통신 동호회 게시판에 공산당선언이나 김일성신년사를 게시한 누리꾼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유죄판결을 받는 일들이 발생했다. 이들은 해당 게시물을 서적이나 언론에서 옮겨 게재하였다고 항변하였으나 공권력은 디지털 공론장에 ‘인쇄물’ 만큼의 자유를 보장할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은 예로부터 공안당국의 입맛대로 적용되는 만능칼이었다.

선거법도 무딘 칼이 되었다. 특히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시기 즈음에는 널리 확산된 디지털 공간에서 후보자와 정책에 대한 토론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친구들보다 훨씬 더 확대된 청중을 갖게 된 시민 논객들의 발언력은, 제도 언론 만큼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선거법은 정당·후보자에 대한 시민들의 전자적 발언들을 모조리 ‘선거운동’으로 취급하였다.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인터넷 선거운동 금지가 위헌이라고 결정할 때까지, 많은 시민들이 ‘사전선거운동’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만만한 명분은 ‘음란물’이었다. ‘뉴미디어’에 대해 잘 모르는 기성세대의 공포감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보도들이 일간지와 TV방송에서 연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부모 단체 회원은 토론회에 나와 자녀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모뎀을 전부 부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검열 기구와 법제도도 정비되었다. 현재 인터넷 검열자로 비판받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전신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1995년 법정화하였다.

특히 1996년에 발생한 한총련 CUG 폐쇄 사건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CUG(Closed User Group)는 유료로 운영되던 폐쇄이용자그룹이었다. 운영하려면 규모별로 10만원에서 6백만원대까지 초기구축비용과 한달 30만원 가량의 사용료를 부담해야 했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회원 전용으로 운영되는 특성이 있어서 이용자들은 CUG에서 높은 수준의 ‘통신비밀’이 보장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런데 1996년 8월 30일 나우누리에 소재했던 한총련 CUG가 경찰에 의해 통째로 폐쇄된 것이다. 같은 해 연세대 점거농성 이후 한총련에 대한 이적성 수사가 본격화되고 지도부가 수배중인 상황에서, PC통신망이 ‘한총련 지휘부’ 구실을 한다고 언론에서 한바탕 난리가 난 직후 벌어진 사건이다. 서울경찰청은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와 CUG를 압수수색한 후 폐쇄해 버렸다. 경찰이 증거 수집을 넘어 CUG 공간 자체를 폐쇄한 사건은 많은 이용자들의 반발을 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전화기를 가지고 범죄를 저질렀다 하여 전화선자체를 끊어버리거나 전화가 있던 방을 폐쇄하지는 않는다. CUG 공간은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나 여러 사람들이 만나고 의견을 교환하고 정보를 얻는, 일종의 방같은 것이다.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전화선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한총련 CUG에 올라온 글이 문제인 것이며 그것을 게재한 개인이 문제인 것이지 CUG라는 공동의 공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시 예를 들면, 만약 여의도 광장이 이적성 있는 집회 장소로 자주 사용된다 하면 그곳을 폐쇄할 것인가?<1996 정보통신검열백서>”

당시 경찰은 정보통신부 등 관계 당국에 요청하면 폐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불온통신의 단속’ 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공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공간을 일방적으로 폐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목을 끌었다. 배재대 김종서 교수는 “수사기관의 전용통신방 폐쇄는 민주사회의 기본틀인 토론문화를 파괴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업도 놀랐다. 8월 31일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우콤 관계자는 “CUG는 돈을 받고 임대한 전용공간으로 모든 운영 권한이 한총련에 있다”며 “이의 임의 폐쇄는 새로운 법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