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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칼럼] 해커, 크래커 그리고 사이버펑크 – 안철수

By 2000/05/0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http://user.interpia98.net/~dlqudgus/main.htm에서 퍼왔습니다.

해커, 크래커 그리고 사이버펑크

안철수(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소장)

컴퓨터는 어느 틈 엔가 우리의 생활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어디를 가나 컴퓨터를 쉽게 볼 수 있으며, TV나 신문에서도 컴퓨터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컴퓨터 보급 초창기 때만 해도 컴퓨터로 작업하는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사람들을 더 이상 신기하게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그러나 컴퓨터가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그 역기능도 점점 커지고 있으며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정보사회의 문제아로 불려지는 해커와 사이버펑크의 정의 및 부정적인 행동 양식, 이들을 만드는 사회 환경, 대응 방안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해커와 사이버펑크

해커(hacker)란 1950년대 말에 MIT에서 만들어진 은어로, 한군데 집중해서 파고드는 행위를 뜻하는 말인 ‘hack’이란 단어에서 만든 말이다.

즉, 해커란 작업 과정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즐거움 이외에는 어떠한 건설적인 목표도 갖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초기에 해커들은 철도 모형이나 전화 시스템들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그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컴퓨터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뒤로 해커란 컴퓨터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뛰어난 실력을 갖춘 컴퓨터 광을 뜻하게 된 것이다.

해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흔히 부정적인 면을 떠올린다.

컴퓨터 실력은 뛰어나지만 도덕성이 결여되고 사회성이 부족한 괴짜나 컴퓨터 범죄를 저지르거나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드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컴퓨터 통신을 통해 청와대를 사칭했다가 붙잡힌 사람을 언론에서 해커라고 표현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어떤 사회라도 한 구석에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해커들도 나쁜 사람들만 모여 있는 집단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나쁜 길로 들어선 사람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해커들이 순수하게 컴퓨터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으며, 그들은 전세계적으로 컴퓨터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해커들 중에는 회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소속 부서나 회사의 전산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놓기도 하고, 동료 회사원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쉽게 해결해 줌으로써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를 하기도 한다. 또한 해커들 중에서는 아마추어의 경지를 벗어나서 유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도 프로그래머로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해커들에게는 자신들이 어떤 용도로 프로그램을 만드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로지 그 프로그램에서 코드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다만 자신이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얻는 즐거움과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는 것에 긍지를 느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해커들은 집중력의 면에서는 거의 입신(?)의 경지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복잡한 작업을 끝내기 위해서 며칠 밤을 세워 가면서 작업을 하는 일도 종종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제 시간에 자고, 먹고, 학교에 가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괴짜로 낙인찍히고 따돌림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해커 본인들은 당연히 그런 것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해커들은 천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킹에서 해박한 컴퓨터 지식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차지하는 부분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단순 노동적이며 끈기를 요하는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해킹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파헤치고 푸는 것이기 때문에 창조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다.

천재들은 해킹에 쉽게 싫증을 내기 마련이며,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게 마련이다. 이에 반해 해커들은 조금은 편집광 적인 성격을 갖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며칠 밤을 새고 파고드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나쁜 짓을 일삼는 해커가 가끔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해커와 구별하기 위해 따로 대커(dacker) 또는 크래커(cracker)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하는 해커는 기사 거리가 되지 않지만, 어쩌다 한번씩 터지더라도 나쁜 일을 하는 해커는 매스컴을 타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은 매스컴을 통해서 나쁜 짓만 하고 다니는 해커들에 대해서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해커라는 말과 함께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말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사이버펑크란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펑크(punk)가 합쳐진 말로, 컴퓨터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일반 관습이나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기존 사회제도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획일성이나 진부함에 대한 그들의 비판 정신은 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펑크 족도 원래의 정신은 사라져 가고 그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던 퇴폐성이나 선정성만을 흉내내는 사람이 늘어갔듯이, 사이버펑크도 원래의 정신보다는 표현 수단이었던 컴퓨터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최근에는 컴퓨터 관련 신 기술을 도락처럼 즐기는 사람들을 사이버펑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해커와 사이버펑크와의 차이는 해커는 컴퓨터의 기술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파고드는 사람이지만, 사이버펑크는 컴퓨터 신 기술을 이용하는 측면에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해커들의 부정적인 행동 양식

해커들에 대한 통계를 보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남자로 자연과학 계통을 전공하거나 전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나와 있다.

또한 이들은 성격상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부류는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학교 성적도 좋으며 친구들도 많은 사람이다. 그들은 장난 삼아 또는 친구에게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해킹을 시도한다. 두 번째 부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으로 학교 성적도 그리 좋지 않고 친구들에게도 따돌림받은 채 컴퓨터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해킹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만끽하고 자신의 열등감이나 피해 의식을 보상받으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해커들은 컴퓨터를 일할 때의 필요한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그에 탐닉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행동 양식을 보일 수 있다. 첫째, 컴퓨터 오락, 컴퓨터 통신이나 컴퓨터 자체에 대한 해킹에 지나치게 탐닉함으로써 정상적인 사회 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컴퓨터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메마른 사람이 되기 쉽고,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교 공부를 등한히 함으로써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님이나 선생님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더욱 컴퓨터에만 몰두하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것이다.

둘째, 컴퓨터 오락이나 통신을 통해서 쉽게 폭력물이나 음란물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서 외국의 음란물들을 아무런 규제 없이 가져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러한 것들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셋째, 청소년의 경우에는 사회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컴퓨터 통신을 통해 대중 앞에 노출되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여러 가지 실수들을 범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에 본의 아니게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표현해서 문제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넷째, 컴퓨터 통신을 사용하면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금지된 일을 해볼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컴퓨터 통신상에서는 자신의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음은 물론이며 자신의 신분도 위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서 퍼트리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참고로, 1988년에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컴퓨터 바이러스의 숫자는 92년 17종, 93년 34종, 94년 86종으로 해마다 2배 이상씩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 들어서는 2일에 1종의 비율로 발견되고 있다. 또한 94년부터는 국내 해커에 의해서 제작된 한국산 바이러스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또한 한국산 바이러스의 수준도 93년까지는 1세대에 불과했으나, 94년 초반에 2세대, 94년 중반에 3세대를 거쳐서 94년 후반에는 4세대까지 만들어져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게 되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해커를 만드는 사회 환경

컴퓨터가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우리가 왜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점점 없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컴퓨터를 배우거나 사용하기 전에 누구나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인간의 정신 노동중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인간처럼 창조적인 일은 하지 못한다. 또한 컴퓨터가 사람보다 효율이 떨어질 경우도 있다. 대개 한 번 하고 끝낼 일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직접 하는 편이 훨씬 빠르며, 아주 간단한 작업의 경우에도 컴퓨터에게 맡길 필요가 없다. 따라서 단순 반복적인 작업은 컴퓨터에게 시키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시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일을 하는데 쓰는 것이 올바르게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컴퓨터 관련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 전문가들조차도 새로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나오면 무조건 새것으로 교체해 버리곤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 한 번쯤은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수행해야 할 일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것이지, 컴퓨터 자체를 사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새로운 기능들이 일을 완수하는 데 얼마나 필요한 것들인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것으로 바꿀 때는 추가적인 비용이 필요하고, 사용법을 새로 익히는데 시간이 필요하며, 익숙해지기까지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즉, 새로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나왔을 때는 무조건 따라만 갈 것이 아니라, 얻을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잘 살펴본 뒤에 지혜롭게 선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컴퓨터 교육을 시킬 때도 컴퓨터에 대한 기술을 가르치기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유와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는 윤리 교육은 등한히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컴퓨터에 대한 전문 지식은 가지게 되지만 올바른 도덕관이나 가치관은 가지지 않은 해커가 되는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컴퓨터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며, 다른 사람의 귀중한 자료를 파괴하는 것을 단순한 장난 정도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언론에서 해커에 대해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만 보도하는 것도 문제이다.

해킹은 생산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며,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밖에 남는 것이 없다. 우리에게 혜택을 주기보다는 악용될 소지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해커들을 천재나 정보화 시대의 영웅처럼 보도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요즘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접함으로써 누구나 해커가 될 가능성이 많은 때이다. 따라서 기술이나 재주가 많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하더라도 눈을 감아 주고, 오히려 천재 인양 일반에 부각되어 버린다면 이를 모델로 한 더 많은 범죄자가 생겨날 것이 우려된다.

그 밖에도 해킹 기법이나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책이 버젓이 출판되어 청소년들을 해커가 되도록 부추기고 있다. 그러한 책들을 펴낸 사람들은 한술 더 떠서 일반 사용자들이 스스로 해킹에 대처할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책을 냈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책을 내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해킹 방지나 컴퓨터 바이러스 퇴치에는 전혀 공헌하지 않고, 일시적인 돈벌이만을 목적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독자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책을 쓰는 사람도 생기고 펴내는 출판사도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책을 없애는 길은 제도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기 전에는 사용자 수준에서 불매 운동을 벌이는 방법밖에 없다.

대응 방안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 방지를 위해서는 정부, 언론, 교육기관, 가정이 합심해서 이를 위한 협조 체계를 갖추어야만 한다. 첫째, 정규 교육 과정에서 정보화 윤리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컴퓨터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 이후 학교 정규 교육에서도 그것을 수용하려고 애를 써 왔다. 그러나 우리는 컴퓨터의 보급과 사용법 교육에만 너무 집착해 온 경향이 있다. 사람이 컴퓨터를 다루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지에는 전혀 유의하지 않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기술만 중시해 온 것도 사실이다. 곧 컴퓨터에 대한 기술만 있을 뿐, 컴퓨터에 대한 가치관이나 철학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국민학교 때부터 컴퓨터 윤리 시간을 따로 두거나 컴퓨터 교과서에 컴퓨터 윤리 교육부터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살아 나갈 사람들이며, 이들에게는 정보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게 하는 정보화 윤리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국민학교에서 강력하게 정보화 윤리 교육을 실시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환경 보호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국민학생들이 집에 와서 부모를 가르친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컴퓨터에 대해서도 윤리 의식이 뿌리 깊이 박히게 되어 적어도 장난으로 해킹을 하거나 컴퓨터 바이러스 만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전문 지식은 양날을 가진 칼과 같아서 좋게 쓸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악용할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의학 지식은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쓰일 수도 있지만, 고아를 유괴하여 장기를 떼어 파는 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모든 전문 지식을 배울 때는 지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측면도 같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의학에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에도 윤리 강령과 윤리 교육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들은 컴퓨터 통신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에 본의 아니게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못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표현해서 문제를 발생시키는 등의 여러 가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 편지 쓰기 시간을 가지거나, 통신을 하면서 실수하기 쉬운 점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알려주고 건전한 활용 방법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엄격한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컴퓨터로 하는 범죄를 장난으로 생각하거나 수사하는 사람 자신이 컴퓨터 범죄에 대해 무지하여 그냥 지나쳐 버리는 수가 많았다.

물론 이제까지 컴퓨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감옥에 보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은행에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몰래 돈을 빼내거나 아파트 추첨을 조작한 사람들은 감옥에 갔다. 그러나 연전에 해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람은 오히려 대기업에 특채되었다.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면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말하자면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대기업 사람들에게 그의 컴퓨터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었다.

미국에서도 신문에 날 정도의 큰 일을 저지른 해커들은 예외 없이 대기업에 특채되었다. 물론 그 사람들의 능력을 좋게 이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다 보니 해커들 사이에서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대형 사건을 일으켜야 하고, 또한 반드시 발각이 되어 잡혀야 한다"는 농담까지 오가게 되었다. 현명한 해결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컴퓨터 바이러스의 제작자들의 경우에도 그가 만든 컴퓨터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배포한 증거가 없다면 별다른 제재 조치를 가할 수 없게 되어 있으며, 해킹 기법이나 컴퓨터 바이러스 제작법에 대한 책을 쓰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공개하거나 범죄를 교사하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져야 할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해킹이 폭탄보다 더 큰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언론에서는 해커들을 선도해 나가야 한다.

기술이나 재주가 많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하더라도 눈을 감아 주고, 오히려 천재나 정보화 사회의 영웅처럼 보도한다면 이를 모델로 한 더 많은 범죄자가 생겨날 것이다.

언론에서는 더 이상 해커를 동물원의 희귀한 동물로 취급하고 흥미 위주로만 다루어서는 안될 것이다.

해커들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며, 장차 우리 나라를 이끌고 나갈 일꾼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언론에서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런 일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또한 언론에서는 해커들이 보다 발전적이며 창조적인 일에 종사할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이들을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이다.

넷째, 부모들도 자녀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현재 부모들 중에는 컴퓨터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컴퓨터 사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거나, 공부에 방해가 될 경우에는 금지해 버리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사용을 금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TV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현재 TV 자체가 유해한지 무해한지에 대해서 논쟁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TV는 가정에서 정보와 오락을 제공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완전히 자리잡고 있다. TV를 너무 과도하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당히 보게 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공동의 화젯거리를 얻을 수 있으며 적절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TV 자체의 유해성, 무해성보다는, TV를 보는 사람이 그것을 얼마나 지혜롭게 사용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컴퓨터도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보다는 컴퓨터의 비생산적인 측면에 너무 빠지고 절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의 성향이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컴퓨터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보다는, 너무 몰두하는 것을 막고 이를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모가 말리기만 한다면 친구 집을 이용하거나 한밤중에 몰래 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컴퓨터를 못하게 되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당할 수도 있다.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컴퓨터를 청소년의 방으로부터 거실로 옮기는 일이다.

가족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컴퓨터를 옮겨 놓고 같이 사용하게 되면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 가족들이 모두 컴퓨터를 활용함으로써 공동 관심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컴퓨터를 이용해서 즐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생산적인 일이나 다른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부모들은 청소년들에 비해서 컴퓨터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을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부모들도 그에 대한 공부를 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나라 부모들의 교육열로 봐서는 그런 수고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알맞은 오락 프로그램을 직접 골라 줄 수도 있을 것이며, 단순하게 오락만을 즐기기보다는 그것으로 영어 공부를 하거나 프로그래밍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부모 자식간에 2 인용 오락을 같이하거나 공동 관심사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더욱 소중한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컴퓨터에만 너무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는 컴퓨터 이외에도 세상에는 재미있고 가치가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아이들도 많다. 컴퓨터만 있으면 친구가 없어도 즐겁게 놀 수 있으며 시키는 데로 움직여 주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다른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시야를 넓히고 컴퓨터는 세상의 많은 것들 중 하나라는 깨달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정부, 언론, 교육기관, 가정이 합심해서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 방지를 위한 공조 체제를 갖추고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 공동으로 노력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더욱 풍요로운 정보화 사회를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0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