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유출입장주민등록번호주민등록제도프라이버시

땜방식 처방은 이제 그만, 안전행정부는 주민번호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에 나서야{/}주민번호 대책에 대한 진보네트워크센터 논평

By 2014/02/0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주민번호 대책에 대한 진보네트워크센터 논평]
 
땜방식 처방은 이제 그만, 안전행정부는 주민번호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에 나서야
 
 

어제(2/4) 연합뉴스에 따르면, 안전행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민등록번호 제도 개편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민번호에 대한 대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이후 대책을 마련하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주민번호의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우리 단체는 안전행정부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민번호 제도의 개편 방향을 검토하기로 한 것에 대해 환영한다. 동시에 이번 개편이 ‘눈가리고 아웅’ 식의 땜방식 처방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주민번호 제도의 개편은 주민번호를 민간과 공공영역에서 두루 사용함으로써 만능식별번호로 만든 것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주민번호 개편이 전자주민증 도입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기사에서 거론되는 대책들을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먼저 거론되고 있는 ‘주민등록증 발행번호로 대체’하는 방안은 유출된 주민번호의 존속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만일 지난 2010년과 같이 전자주민증과 연계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전자주민증은 전자칩을 통해 통합신분증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망을 통해 칩 안의 개인정보 유통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보호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주민번호의 사용을 제한하려는 방침이라면 전자주민증이라는 또 다른 수단으로 주민번호를 유통시킬 것이 아니라 주민등록증의 어디에도 아예 주민등록번호를 수록하지 않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주민번호 민간사용 제한하고, 재발급 가능한 무작위 일련번호로 대체해야한다

 

주민번호에 대한 개편은 주민번호를 발행번호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번호 자체를 새로운 체계로 개편하는 것이다. 새로운 주민번호는 그 이용과 보관을 제한하고 각 영역별 목적별로 별도의 식별자를 사용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민번호 13자리 중에 생년월일과 성별을 남겨두고, 나머지 지역번호 등은 변경하겠다는 대책도 한계가 명확하다. 주민번호에 생년월일과 성별 등 개인정보 자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현행 주민번호의 인권침해 문제 중 하나가 아닌가. 게다가 유출된 주민번호에 이미 생년월일, 성별이 포함되어 있다. 그 뿐 아니라 출생지 지역번호를 지금과 다르게 부여하는 방식이라면, 재부여된 지역번호를 재조합하여 출생지를 특정할 수 있다. 주민번호는 재발급이 가능한 무작위 일련번호로 대체되어야 한다. 

 

정부가 민간영역의 주민번호 사용을 전면 금지할 것을 촉구한다

 

오늘날 주민번호의 위기를 초래한 것은 이 번호가 공공과 민간 할 것 없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는 만능 번호였다는 데 있다. 쓸모가 많으니 조직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다른 사람의 주민번호를 노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안전행정부가 민간영역에서의 주민번호 사용을 제한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행스럽다. 올해 8월부터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라 주민번호의 수집은 법에 근거한 경우 등 현재보다 제한될 상황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미 예외가 많이 있고 많은 예외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망법에서 정보통신망에 대한 주민번호 수집은 금지되었지만, 신용정보기관과 이동통신사의 주민번호 수집은 예외적으로 허용되어 왔다. 개정 개인정보보호법도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재산의 이익을 위하여 명백히 필요하다거나 안전행정부령으로 정하는 경우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금융기관들도 주민번호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주민번호 법정주의도, 민간영역의 주민번호 사용 금지도 주요 대형 업종에 대한 예외와 특혜로 귀결될 뿐이다. 정부가 민간영역의 주민번호 사용을 전면 금지할 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전국민 주민번호가 이미 전세계 인터넷에 유출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늘 상기해야 한다.

 

주민번호 변경을 허용하라

 

거듭된 개인정부 대량 유출사고에도 불구하고, 안전행정부는 유출된 주민번호 변경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안전행정부가 거의 전 국민의 주민번호가 유출된 현실을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주민번호 개편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우선 유출된 주민번호에 대한 변경 요청부터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이미 유출된 주민번호의 경우, 향후에 명의도용이나 재산적 피해 등을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민번호 변경은 법적 근거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가하고 향후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혼란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난 2012년 세종시는 주민들이 낸 ‘주민등록번호 부여 처분 취소 및 변경 부여 청구’를 받아들였으며, 당시 행정안전부도 세종시의 행정심판 결과를 수용, 소급 적용을 허용키로 했다. 뒷자리가 ‘444 혹은 4444’로 시작되는 세종시내 신생아들의 주민등록번호가 무더기로 바뀌게 된 것으로 법적 근거와는 무관하다. 발음이 ‘죽을 사(死)’자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기피하는 숫자(4)가 중복됐다며 일부 신생아의 부모가 민원을 낸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세종시의 주민등록번호 변경 조치는 국민을 위한 진정한 행정이었다. 주민번호 유출로 인해 국민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주민등록번호가 4444로 연속될 경우 발생할 피해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주민번호 변경을 허용하여야 한다. 

 

또 정부는 2008년 주민등록부와 가족관계등록부 상의 생년월일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였다. 당시 정부는 주민등록부를 정정해야 하는 국민들의 편의를 위하여 10여종의 관계공부 정정도 일괄 대행처리하였다. 운전면허증, 등기부등본, 금융자료, 학적부, 농지원부, 사업자등록증, 의료보험자료, 건축물대장, 토지대장, 자동차등록부, 지방세자료 등이다. 이미 매년 18만여명이 주민번호를 변경하거나 개명을 하면서 자력으로 관계 공부를 정리하고 있으나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만약 정부가 주도가 되어 위와 같은 선례에 따라 관계 공부 수정을 일괄 대행처리하는 등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주민번호 변경을 추진한다면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주민번호 개편에 대해 벌써부터 사회적 혼란과 비용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헌법소원까지 제기된  도로명주소 사업을 4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최고 2800억의 예산이 더 될 수 있다고 한다.  반면에 유출된 주민번호 변경은 국민들의 요구도 높고, 실질적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이다. 또한, 주민번호 법정주의를 통해 주민번호의 이용을 실질적으로 줄여 나간다면, 주민번호 개편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전 국민의 주민번호가 유출된 현재의 상황이야말로,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초래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보사회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면, 주민번호 문제의 해결없이 한국의 정보화는 더 이상 진척될 수 없을 것이다. 

 

2014년 2월 5일

 

진보네트워크센터

 

 

201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