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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 개선 발언, 고무적이지만 위험하기도

By 2014/01/2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성명]
 

박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 개선 발언, 고무적이지만 위험하기도 

 

– 만능 식별번호는 이제 그만!

– 주민등록번호 사용은 주민 서비스 목적에만 한정하라!

– 주민등록번호를 개인정보가 없는 임의번호로 변경하라!

–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에게 주민등록번호 변경 허용하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전후하여 정부가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2009년 이후 금융사. 기업, 공공기관을 통해서 1억 9283만 건의 개인정보유출이 발생했음에도 해킹이나 개인의 일탈 등으로 취급하고 유야무야 정보유출 사태를 처리했던 정부가 태도 변화를 보인 것은 환영할 일이다. 특히 주민등록번호 제도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온 정보인권단체로서 대통령이 주민등록번호 개선을 언급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이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다른 식별수단을 도입하려는 시도라면 단호히 거부한다.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의 대안은 유출된 주민등록번호와 또다시 연계되는 대체수단을 도입하겠다는 과거의 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 중에 하나로 2006년에 도입된 아이핀은 아이핀 발급업체인 본인확인기관이 매개된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민등록번호와 큰 차이가 없다. 본인확인기관 역시 ‘국가의 늘어난 팔’이라고 볼 수 있다면 국가 주도의 일률적 주민등록번호 부여와 집중 관리의 구도는 여전히 크게 달리지지 않는다. 이동통신사를 통한 휴대폰 본인 인증도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아이핀과 맥락이 다르지 않다. 아이핀, 휴대폰 번호 등 또다른 식별번호가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뿐이라면 이번에는 전국민 아이핀, 전국민 휴대폰번호 유출 사태를 불러올 뿐이다. 정부의 대안은 이미 전 세계에 뿌려진 주민등록번호 문제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근원적 원인은 그대로 둔 채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의 ‘대증요법’에 그칠 뿐이다.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만능 식별번호로서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중단하고, 이미 유출된 주민등록번호 피해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행 주민등록번호는 그리고 정부가 내놓았던 대체수단들은 모두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상호 연결하는 ‘연결자(node)’로서 기능한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만능열쇠(master key)’이다. 독일은 개인식별번호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영역에만 별도의 법적 근거를 통해 고유한 업무 수행을 위한 각종 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과거 동독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주민등록번호가 사용되었지만, “개인을 감시하려는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독일 통일 과정에서 모두 폐지되었다. 완벽한 보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능열쇠 역할을 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일반적 개인식별번호가 존재하는 이상 내외부의 유출시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만능 식별번호도 더 이상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 개인식별번호 체계를 폐지하고 복지, 의료, 연금 등의 목적에 따른 번호체계로 대체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 사용 역시 주민 서비스라는 고유 목적에만 한정해야 한다. 국가가 시민에게 번호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 다만, 시민들에게 의료, 육아, 연금 등의 제도를 효율적으로 지원하고자 예외적이고 제한적인 범위에서 시민의 권익향상을 위해서만 목적별 번호제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옥션 유출 사고가 있었던 2008년 이미 한국 정부에 주민번호를 공공서비스를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수집이용하도록 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또한 정부는 주민등록번호 그 자체의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각 나서야 한다. 우선, 현행 주민등록번호를 생년월일, 성별, 출생지 등의 개인정보가 없는 임의번호로 변경해야 한다. 또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에게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즉각 허용해야 한다.
 
다시는 국민 대다수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2014년 1월 28일
진보네트워크센터
 

201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