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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스-비짓은 테러를 잡는가, 세계시민을 감시하는가

By 2004/05/21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장여경

지난 1월 5일부터 미국은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지문과 얼굴을 검사하는 ‘유에스-비짓(US-VISIT)’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 조치로 한국 등 비자 비면제국가 국민들이 미국에 입국하려면 양손 검지 지문을 날인하고 사진을 촬영해야 한다. 이 지문과 디지털 화상 정보는 유에스-비짓 시스템의 테러리스트·범죄자 데이터베이스와 대조된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인이 미국비자를 발급받으려면 오는 8월부터 비자에 지문을 찍어야 한다.

미국은 생체정보를 검사하고 생체비자를 발급하는 데서 더 나아가 각국 정부에 아예 생체정보가 담긴 여권 발급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생체정보 검사에서 제외되는 비자 면제국가 외국인들도 오는 10월부터는 미국 입국시 생체정보가 포함된 여권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5월에 생체여권의 기준을 발표하면 전세계에서 생체여권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미 국토안보부는 이런 조치로 매년 수백만 명에 이르는 미국 방문자들을 추적하여 대테러전에 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안팎의 여러 전문가들은 이런 조치들이 테러를 방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테러범에 대한 정보가 원본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사진과 지문 대조 작업이 소용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이 데이터베이스 가운데 테러와 직접 관련 있는 사람은 11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위축된 프라이버시

프라이버시단체들은 이 시스템이 테러방지의 효과보다 프라이버시 침해가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에스-비짓에는 20개 이상의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가 통합되어 있는데 미국 유학생들을 잠재적 테러범으로 간주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거나(SEVIS 시스템) 이제는 합법적인 시민권을 획득한 외국인에 대해서도 감시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각 개인별 정보 수집의 범위에는 제한이 없다. 성명, 생년월일, 성별, 여권번호, 비자발급일자, 체제지 주소 등 미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정보를 포함한다. 비자 발급과 입국 검사 당시 채취한 지문과 화상정보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전자프라이버시정보센터는 이 정보들이 유에스-비짓의 구축과 운영 목적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비판한다.

유에스-비짓은 프라이버시영향평가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절차상의 정당성도 의심받고 있다. 미 전자정부법은 연방정부가 구축하는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는 구축 이전에 프라이버시권 침해 여부를 평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조셉 리버만 상원의원은 국토안보부가 유에스-비짓의 생체인식기술에 대해 충분히 평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토안보부는 유에스-비짓이 가동하기 직전에야 프라이버시 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했는데 프라이버시 담당자를 두었으니 충분하다고 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담당자의 역할이 모호하다. 입국자들이 지문날인을 안했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절당하거나, 자신의 정보에 대한 열람·정정·삭제를 요구할 때 어떻게 응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테러방지에서 다른 용도로 확산

이처럼 미국과 관련국들은 ‘대테러’라는 명분으로 생체정보를 포함한 대규모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마구잡이로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들은 새롭다기 보다는 과거 정부가 도입하려다 실패했던 정책들이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재추진되거나 대테러활동 이외의 영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띄고 있다. 미국은 지문 등 생체정보가 내장된 전자주민카드를 이 기회에 추진하려고 시도하다가 많은 논란을 빚었고 테러방지용으로 도입된 미국과 독일 공항의 화상인식 기술은 이제 유적지나 해변가로도 확산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이런 추세가 자국민 뿐 아니라 다른나라 국민들에게까지 감시를 확산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국가가 나서 국민과 다른나라 국민의 생체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개인의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인권을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해당 개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지난 2월 5일 미대사관 앞에서 유에스-비짓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지문날인반대연대의 윤현식씨는 이런 시도가 “자국 국민의 안전과 테러 방지라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인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하였다. 물론 프라이버시단체들의 우려대로 유에스-비짓과 유사한 시스템이 거리 곳곳에서 경찰에 의해 사용된다면 그것은 다른 나라 사람만 감시하는데 사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뷰] 인권운동사랑방 이주영 활동가

"생체정보는 국민을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Q.각국 정부의 대테러활동이 인권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가?
A.국가 정보기관들 사이에 네트워크망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국경을 넘어 글로벌한 감시망이 확대되고 있다. 한번 용의자로 찍히면 어느 나라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국에서는 평화운동가도 위험인물로 치부되고 있는 상황이다.

Q.생체정보와 인권은 어떤 관계인가?
A.생체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정보다. 일반적으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는 사고 발생시 특정인물에 혐의를 두고 자의적인 체포를 가능하게 하는데, 생체정보는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Q.국가가 생체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 인권단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잘못됐다. 국가에 의한 개인정보 수집과 축적은 국가기관 및 정보기구 권력을 강화시킨다. 국민의 시시콜콜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하려는 순간부터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잠재적 범죄자로 보기 때문에, 수집 당하는 사람에겐 국가의 정당성이 흔들리는 문제다.

Q.한국에서도 생체여권을 도입하려는 조짐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A.한국은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제도가 너무나 미비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국가에 의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축적은 아주 구체적인 목적 하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제도적 장치가 한국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200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