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누가 인터넷을 통제할 것인가

By 2013/04/2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오병일

* 인권오름 기고글 

 

[오병일의 인권이야기] 누가 인터넷을 통제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통신정책 문제는 주로 통신요금 인하와 같은 소비자의 문제, 혹은 미디어 기업간의 이해관계 문제로 인식됩니다. 망 중립성 문제도 그렇습니다. 국내에서 망 중립성 이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지난 2012년 6월, 통신사들이 카카오톡의 무선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인 보이스톡을 차단하면서 부터였습니다. 특정한 요금제 이하에서 보이스톡 성능이 저하되도록 한 것이지요. 물론 통신사들은 그 이전부터 다음(DAUM)의 ‘마이피플’이나 네이버의 ‘라인’과 같은 mVoIP을 차단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2011년, 진보넷과 경실련은 KT와 SKT를 방통위, 공정위, 인권위에 진정한 바 있습니다. mVoIP 차단과 관련해서도, 예를 들어 35,000원, 45,000원 요금제를 쓰는 이용자들도 mVoIP을 쓸 수 있게 해 달라, mVoIP 이용을 통해 통신비를 절감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비자의 권익 문제로 인식되거나 통신사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 사이의 대립 문제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통신사들의 mVoIP 서비스 차단은 훨씬 더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통신사들이 mVoIP 서비스를 자의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면, 다른 인터넷 서비스나 콘텐츠 역시 자의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KT는 지난 2012년 2월,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서비스를 5일 동안 차단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스마트TV 트래픽을 차단한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서비스만을 차단한 것이지요. 또한, KT는 P2P 트래픽을 차단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통신사들이 어떤 인터넷 트래픽은 더 빠르게 전송해주고, 어떤 트래픽은 차단하는 식으로 자의적으로 통제해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것이 망중립성의 문제입니다. 

통신사가 관여하지 말라는 망 중립성 원칙

간단히 얘기해서 망 중립성은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트래픽이 어떤 내용인지, 어떤 유형인지(동영상인지, P2P인지, 텍스트인지), 누가 전송하는지(삼성 스마트TV인지, LG 스마트TV인지), 어떤 단말을 이용하는지(PC로 이용하는지,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지) 상관없이 동등하게 트래픽을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인터넷망을 가지고 있는 통신사는 ‘도관’의 역할만 하라는 거죠. 마치 전기 콘센트에 세탁기를 꽂을지, TV를 꽂을지, 어떤 업체의 컴퓨터를 이용할지, 어떤 성능의 냉장고를 제작할지 전력회사가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애초에 인터넷은 이렇게 설계되었습니다. 이를 인터넷의 단대단(end-to-end) 원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인터넷의 빠른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아이폰 도입 전후의 우리나라 무선인터넷 이용환경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이폰 도입 전에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통신사의 관문을 거쳐야 했습니다. 핸드폰으로 통신사가 설정한 관문에 접속하면 통신사가 제공하는 메뉴들이 나옵니다. 이용자들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제한된 콘텐츠를 이용해야했고, 콘텐츠 제공자들은 메뉴의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통신사들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와이파이가 가능한 핸드폰도 공급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통신사를 통해서 핸드폰을 구입하니까요. 무선인터넷 이용요금도 비쌌기 때문에 별로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폰 도입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굳이 통신사의 관문을 통하지 않고도 3G나 와이파이를 이용해 인터넷에 바로 접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플리케이션 제작 업체들도 통신사의 허락을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앱’을 만들어 앱스토어를 통해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앱들이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중앙에서 어떤 앱들은 되고, 어떤 앱들은 안된다고 통제했다면 인터넷의 다양한 혁신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망중립성은 열린 인터넷의 핵심

인터넷은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네트워크들은 수많은 사적인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분들도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인터넷에 연결된 다른 네트워크와 연결한다면, 전체 인터넷의 일부가 됩니다. 기간망도 과거에 국영기업이 운영하던 것에서 민영화되는 추세입니다. 한국 역시 KT, SKT, LGU+ 등 3개 사업자가 유선 및 무선망을 과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망이 사유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적인 요인 중의 하나가 TCP/IP라는 개방된 표준규약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CP/IP 규약은 누가 독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TCP/IP 규약만 준수한다면 누구나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콘텐츠 수준에서 인터넷의 개방성을 위해 중요한 원칙이 망 중립성입니다. 망을 소유하고 있는 통신사업자가 자신의 망을 통해서 전달되는 트래픽을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누구나 통신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일종의 ‘사적 검열’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윤 때문에 망을 통제하려는 통신사들

그렇다면, 통신사들은 왜 망을 통제하려고 할까요? 통신사 역시 사기업이기 때문에, 이는 물론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통신가입자가 포화상태에 가까워지면서 통신사들은 콘텐츠 영역에도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mVoIP 서비스가 1차적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통신사들의 전통적인 수익원인 전화 서비스 수익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자신에게 돈을 더 많이 주는 사업자의 트래픽은 우선적으로 전송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업자의 트래픽은 늦게 전송되도록 할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 통신사들이 자신의 계열사가 하고 있는 동영상 서비스는 빠르게 전송해주고, 경쟁사업자의 동영상 서비스는 지연되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소비자(이용자)들은 당연히 계열사의 서비스를 선호할 수밖에 없겠지요. 

위 사진:망 중립성 이용자포럼 홈페이지(www.nnforum.kr)


망 중립성은 정보인권의 문제

그래서 망 중립성 이슈는 공정경쟁의 문제이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익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인터넷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영리적 목적이든, 비영리적 목적이든, 인터넷에 연결된 이용자는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나 콘텐츠를 다른 이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지요. 만일 통신사가 자의적으로 트래픽을 통제할 수 있다면, 정부의 압력으로 혹은 정부에 협조하여 정치적 목적의 검열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최근 통신사들이 저작권 단체와 협력하여 저작권 침해가 의심되는 이용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발송하고, 반복적으로 저작권 침해가 이루어질 경우 이용자의 인터넷 품질을 저하시키는 계획을 시행했다고 합니다. 저작권 문제는 차치하고, 저작권을 명목으로 이용자의 인터넷 이용을 통제하는 것은 사적 검열이고 망 중립성 침해입니다. 

망 중립성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와도 연결됩니다. 통신사들이 트래픽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선 트래픽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해야 하거든요. 이용자들이 mVoIP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P2P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야 선별적인 차단이 가능하겠죠. 사실 최근 망 중립성 논란이 일고 있는 배경에는 이와 같이 트래픽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정부만 ‘패킷감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신사들의 트래픽 통제는 패킷감청을 수반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인터넷은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업무보고에서 모든 요금제에서 mVoIP를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망 중립성 논란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발표는 단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mVoIP 서비스의 이용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며, 이는 이용자의 통신비 절검 차원에서 나온 것일 뿐입니다. 언제든지 P2P나 스마트TV 등 다른 영역에서 망 중립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2013-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