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기자회견] 2016년까지 로슈의 인질이 될 것인가?

By 2009/09/14 10월 25th, 2016 No Comments
홍지은
[기자회견문] 2016년까지 로슈의 인질이 될 것인가?
– 정부는 당장 타미플루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발동하라!

신종플루 대유행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해 정부를 비롯하여 각계각층이 부심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신종플루의 치명성은 높지 않으나 감염성이 강하여 그 피해가 개인과 사회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끼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방과 치료대책이 명확히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05년 조류독감 유행이후 선진국들은 로슈가 만든 ‘제로섬게임’에 기꺼이 참여하여 ‘타미플루 사재기’를 했지만,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최빈국 및 저개발국은 여기에서 배제되어 왔다. 선진국들이 타미플루를 충분히 확보해놓았다 하더라도 신종플루는 지역감염이 발생하는 대유행의 상황에서는 사회적 격리가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일국적 차원에서의 예방과 치료는 한계가 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는 다행히 이 바이러스의 독성이 더 강해지거나 위험한 형태로 변종되지는 않고 있지만, 대량 감염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경고하고 있고, 이미 우리는 짧은 시간동안 사스, 조류독감, 돼지독감 등의 전 세계적 전염병을 경험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이뤄져야 한다.

선진국들이 ‘제로섬게임’을 벌이고, 타미플루 확보의 불평등이 발생한 이유는 로슈사가 타미플루에 대한 독점판매권을 가지고 있어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전 세계인구의 20%만큼을 빠른 시간내에 부담 가능한 가격으로 공급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05년에 로슈는 생산역량의 문제와 국제사회의 비난을 달래기 위해 원료의 생산처를 늘리고 ‘판데믹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다른 생산업체들에게 라이센싱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 역시 로슈의 특허독점하에서 통제되는 생산이기 때문에 생산량과 시기는 로슈의 결정하에 달렸다. 로슈가 전 세계가 필요한 양을 생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정확한 정보는 없다. 로슈는 자신의 생산역량을 ‘상업적으로 민감한’ 정보라고 하면서 심지어 세계보건기구에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신종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자체보다 로슈가 전 세계 인구 중 누구의 생명을 연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로슈의 독점으로 인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조건과 능력을 애초부터 봉쇄당한다는 점이 더 근본적인 문제이다. 사회역사학자인 Mike Davis의 말대로 “전 세계는 지금 로슈의 지적재산권에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예방을 위한 백신은 11월이 되어야 접종이 가능하며, 확보량마저 충분하지 않아 우선순위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집단면역의 생성은 연내에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대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복건복지가족부와 질병관리본부, 조달청이 9월 3일과 4일에 조승수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8월 24일 기준으로 현재 195만명분(타미플루 161만명, 리렌자 34만명)의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하고 있고 11월까지 1차로 283만명분을 입고하여 연내에 약 480만명분(타미플루 294만명분, 리렌자 185만명분)을 확보하고, 2차로 500만명분 추가확보를 위한 예비비를 확보하여 인구의 21% 분량을 확보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현재 비축량이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량에 훨씬 못 미치고, 시기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추가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에 대해 9월 6일에 질병관리본부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언론에 밝혔다. 300만명분이 9월내로 입고될 예정이고, 2차추가분량인 500만명분도 연말까지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중이라는 것이다. 수급시기와 량이 몇 일단위로 발표할 때마다 달라지는 상황은 현재의 비축량과 8월 24일까지의 수급계획에 따라 입고될 양으로는 9~11월을 보내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고, 현재의 항바이러스제 공급방식이 불확실한 전염병상황을 대처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항바이러스제의 필요량은 신종플루가 얼마나 유행을 할지, 각국의 사회, 경제, 문화적 조건과 보건의료인프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피해가 정확히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몇백만명분’ 혹은 ‘천만명분’이라는 숫자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대체할 수 없다. 복지부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고 ‘위급시’에 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항바이러스제 수급대책에는 세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예측불가능한 상항에서 연내 항바이러스제 확보량이 충분하다고 아무도 단정할 수 없고, 단시간내에 대량의 타미플루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예측불가능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는데도 정부가 로슈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점, 셋째 2005년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대처능력을 갖출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강제실시를 통한 직접 생산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는 국제적으로 인정될 만한 비상사태에 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입장이다. 즉 한국도 ‘타미플루 사재기’에 동참할 수 있는데 국가위신 떨어지게 강제실시를 하느냐는 것이다. 국내제약회사들은 2005년도에 이미 식약청에 타미플루 복제약의 시제품을 제출한 바 있다. 2005년 당시에 적어도 ‘강제실시가 발동되면 출시한다’는 조건하에 생산준비 및 허가과정이라도 밟았으면 지금 1250억원이라는 거액을 예비비에서 추가확보할 필요도, 몇백만명분을 몇월까지 비축했네 확보했네 등의 숫자놀음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닥치면 한다는 정부의 대책이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근거도 없이 공포에 휩쓸리지 말라고 하고 있다. 현재 국내의 몇몇 제약회사는 인도와 중국회사로부터 원료공급계약을 하였고, 식품의약품안전청에 허가관련 자료심사를 받고 있는 곳도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질의에 답변을 한 이들 제약회사들만 타미플루 복제약을 생산하더라도 매달 최소 약 400만명분을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들 제약회사는 ‘강제실시 발동여부’와 ‘허가과정의 단축’에 따라 생산시기와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하였다. 특허청은 정부가 106조를 통한 강제실시 신청시에 1주일이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준비를 갖추었다고 하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청장도 8월 20일 당정협의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신속심사 규정을 적용해) 시판허가 신청 후 15일 만에 허가를 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제실시를 결정과정과 의약품허가과정을 동시에 진행하면 9월말~10월에 복제약을 출시할 수 있는 상황이다. WHO의 권고량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확보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필요량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생산량과 생산시기, 가격을 조절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생산시설이나 기술이 없는 나라에 수출이나 기부를 할 수도 있다.

복지부는 특허법 106조를 들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시에’ 정부가 강제실시를 발동할 수 있다며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TRIPs 협정 제31조 는 국가 긴급사태를 위한 강제실시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때의 ‘긴급상황’의 해석에 대해서는 ‘TRIPs 협정과 공중의 건강에 대한 각료선언문(도하선언)’을 참고할 수 있다. 도하선언은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a) 회원국은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권리를 가지고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으며, (b)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인 국가의 비상사태나 극도의 위기상황이 HIV/AIDS, 결핵, 말라리아와 같은 유행병에 적용된다고 하였다. 도하선언 5(c)절에서 ‘공중의 건강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국가 긴급사태나 기타 극도의 위기 상황’을 의미한다고 선언한 것은, 어느 회원국이 국가 긴급사태를 선포한 경우 이를 둘러싼 분쟁에서 국가 긴급 사태의 규명 자체를 둘러싼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고, ‘각 회원국(Each Member)’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국가 긴급사태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회원국의 개입 없이 각 회원국의 주권적 재량에 따라 독자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도 특허법 106조에 따라 타미플루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발동하는 것은 합법이며 주권적 재량이다.

복지부가 강제실시를 할 수 있는 조건으로 말하는 ‘위급시’란 대체 어떤 상황인가? 로슈로부터 타미플루를 사올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때는 이미 늦다. 그리고 도대체 왜 그렇게 해야하는가? 타미플루 사재기에 동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량만큼 비축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강제실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로슈가 만든 ‘제로섬게임’에 빠져든 한국정부의 오판이다. 법적인 면에서나 현실적 생산가능성 면에서 지금 강제실시가 가능하고, 로슈를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 강제실시를 통한 국내생산이 불확실한 전염병에 대처하는데 훨씬 안정적이고 탄력적인데 왜 복지부는 ‘위급시’를 기다리라고 하는가? 강제실시를 통한 국내생산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모두 갖추어졌다. 정부의 의지만이 결여되어 있을 뿐이다. 정부는 바로 지금 타미플루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발동해야 한다.

2009.9.7

이윤을 넘어서는 의약품 공동행동, 진보신당 신종플루비상대책특별위원회,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2008-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