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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날인 거부 청소년 여권 발급받아

By 2008/03/3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장여경

지문날인 거부 청소년 여권 발급받아

외교통상부, "여권법상 주민등록증으로만 본인 확인하지 않아도 돼"

 

최인희 기자 flyhigh@jinbo.net / 2008년03월28일 13시16분

 

최근 주민등록증 없이 여권을 발급받은 사례가 전해져 지문날인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경남 김해시에 거주하는 청소년 민 모 씨는 여권 갱신을 두고 지난 달 김해시청과 실랑이를 벌였다. 지문날인 거부자로써 주민등록증 대신 구 여권과 청소년증을 본인 확인서류로 제출했으나 김해시청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민 씨는 "감시받기 싫고 내 신체는 내가 통제하겠다"는 신념으로 지문날인을 거부해 왔으나, 김해시청 여권과는 민 씨의 설명에도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와라"고만 종용했다. 민 씨가 제출한 청소년증이 다름아닌 김해시청에서 발급해 준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주민등록증’만을 요구한 것.

 

진보네트워크센터에 이같은 사정을 알리고 외교통상부에 직접 질의를 구한 끝에 민 씨는 27일 김해시청으로부터 새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외교통상부는 지난 18일 "여권법상 주민등록증으로만 본인을 확인하여야 한다는 조항은 없으므로 민원인의 구 여권, 학생증 등을 통해 본인을 확인하고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더불어 "헌법재판소 판례(2083.07.24, 2002헌마508)에도 주민등록증 외에도 여권, 운전면허증, 자격증, 학생증 등도 신분증명서로 인정되어 투표를 할 수 있다는 판례가 있으므로 동 판례를 원용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도 밝혔다. 지문이 날인된 주민등록증 외에도 공공과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신분증이 인정될 수 있음을 인정해 준 것.

 

"지문날인은 인권침해… 생애 첫 지문날인 거부 청소년 여전히 많아"

 

지난해 3월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문날인 거부자인 전 울산노동뉴스 기자인 김성민 씨가 울산시청에서 여권발급에 성공했던 것. 김성민 씨는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울산시청으로부터 여권 발급을 거부당하자 울산노동뉴스 독자와 네티즌의 신원 보장 댓글 서명을 받아 시청에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당시 울산시청이 외교통상부에 이 건을 문의한 결과, 외교통상부는 "신청인과 여권 명의인이 동일인임을 확인하는 방법은 주민등록전산망 사진과 신분증의 대조가 가장 확실하고 보편적인 방법이나, 문의한 경우와 같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거주지 읍,면,동장의 신원확인서 등으로 보충될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라고 답변했다. 이에 울산시청에서도 "여권발급에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면서 김성민 씨에게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김성민 씨에 이어 청소년 지문날인거부자인 민 씨가 또다시 여권발급에 성공하자 관련 단체들은 "작지만 큰 승리"라며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이번 사례를 통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문날인 거부자들에게 대체 신분증 활용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2005년에 헌법재판소에서 지문날인 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한 이후 지문날인 반대운동이 많이 위축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지문날인 거부자들이 계속해서 진보네트워크센터로 상담을 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장여경 활동가는 "특히 생애 최초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 때의 청소년들이 지문날인을 하지 않고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은 문의를 한다"면서 "지문날인은 여전히 인권침해이고, 지문날인 거부자들의 끈질긴 저항이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민 씨와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감시받기 싫어서요. 내 신체는 내가 통제할 겁니다. 주민등록번호로 나를 식별하겠다는 것도 열받는데 제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니고, 지문까지 데이터로 입력되긴 싫어요.

지문날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정부와 경찰에서 말하는 범죄예방, 범인검거를 외치는데 헛소리 같아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손가락 지문을 찍고 주민등록번호가 있다면 범죄율은 세계 최저여야 해요. 그렇지만 성폭력과 연쇄살인사건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지문을 안 찍는 나라들에 비해 검거율이 높은 편도 아니잖아요"

 

지문날인 거부자로서 생활 속에서 겪는 불편함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은행에서 통장 만들 때, 노동부 국비지원 교육, 자동차학원에 등록하는 것도 청소년증은 제외되니까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었어요. 특히 여권발급을 받기 전까지 가족들이 남들이 다 하는 걸 왜 안하냐고 말할 때요. 앞으로 취직할 때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는 곳이 없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김해시청에서 여권발급을 거절당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죠. 앞으로 힘들겠구나 싶었고. 대체 신분증으로도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 같아 발급을 못 받겠구나 하는 걱정도 했어요"

 

지문날인 거부자로서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으신데, 바라는 점은 무엇입니까?

 

"첫째, 지역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있었으면 해요. 혼자 하는 투쟁은 너무 힘들어요. 제가 수도권 출신이 아니라 그런지 혼자만 시청에 가서 공무원들이랑 논쟁하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서울에 올라가 진보네트워크센터의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부족했던 것 같아요.

 

둘째, 지문날인 거부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있었으면 해요. 저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에도 가곤 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아요. 지문날인에 관한 영화를 보여주거나 경험을 공유하는 교육이 자주 있었으면 하네요.

 

셋째, 개인정보 유출 및 악용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제 정보만 해도 국내에서 얼마나 도용되었는지 확인하고 싶구요, 외국, 특히 중국에서 한국 사람들 주민번호를 통해 유출된 개인정보가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줬으면 해요.

 

넷째는 지문날인과 영구불변의 주민번호가 폐지됐으면 좋겠어요. 주민등록증에서 지문날인이 완전히 사라져야 하고요, 주민번호도 생일, 성별, 지역번호같이 내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없어지고 일본, 미국처럼 무작위 번호로 했으면 해요. 또 내가 원한다면 바꿀 수도 있으면 좋겠어요.

 

또 불필요한 정보수집이 없어졌으면 좋겠네요. 그런 광범위한 수집을 데이터베이스화 한다는 것은 마치 돈을 다 보이게 길거리에 놓고 ‘줍지는 마라’고 하는 것 같거든요"

 

마지막으로 다른 지문날인 거부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초기에 하신 분들일수록 고생이 많은 것 같아요. 그 분들도 혼자서 하지 않고 뭉쳤기 때문에 힘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한국에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사람이 수천, 수만이 된다고 들었는데 실감이 나지를 않아요. 함께 경험을 공유하고 지원하는 단체가 생겼으면 합니다"

2008-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