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개인정보보호법

[기고] 경찰 감시가 안전 사회를 보장할까

By 2017/11/13 No Comments

2014년 세월호 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집회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서울 종로 거리 CCTV가 세월호 집회를 감시하다가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 앞 CCTV는 농성 중인 세월호 가족을 감시했고, 경복궁 CCTV는 세월호 리본을 단 관람객을 감시했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전국의 수많은 CCTV가 경찰 CCTV나 다름 없는 것이다.

CCTV는 인간을 대신하여 관찰하고 기록하는 도구이다. 때로는 아무도 없었던 현장에서 소리없는 증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특히 CCTV 의 가장 큰 기능은 범죄 예방과 수사로 알려져 있다. CCTV가 범죄 수사와 예방을 위한 장치라면 범죄 수사와 예방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인 경찰이 국내 모든 CCTV를 소관한다 한들, 그것이 문제가 될까? 경찰이 막강한 치안권을 갖는 것이야말로 안전한 국가를 위한 최선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차원에서 경찰에 CCTV 모니터링을 청하기도 하고, 경찰이 파견되어 있는 지방자치단체 CCTV 통합관제에 자기 지역을 추가해 달라는 민원도 줄을 잇는다. 최근에는 성범죄로부터 보호한다며 지적장애인 여성 주택에 CCTV를 설치하고 경찰이 이를 모니터링하는 사업도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수요는 끔찍한 범죄 소식이 알려졌을 때 급격히 늘어난다.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2002년 처음으로 강남구에 경찰 방범용 CCTV가 도입된 이래로 범죄 발생율이 CCTV로 인해 유의미하게 감소하였다거나 검거율이 과거보다 증가하였다는 근거는 충분치 않다. 사실 많은 CCTV가 객관적 증거 행정에 기반해서가 아니라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을 이유로 설치되고 있다.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시민들의 공포가 감시 정책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지방정부도, 경찰도, 중앙정부도 공포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살피고 이를 해소하는 정책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비난 여론에 편승하여 공포를 확대시키고, 이를 근거로 감시 장비를 도입하는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감시가 점점 더 안전한 사회를 보장한다는 듯이. 범죄를 발생시키는 사회 구조를 개편하기보다 CCTV를 설치하는 것이 비용상 더 저렴하기는 하다.

결국 이렇게 위탁된 감시 권력을 기반으로 경찰은 세월호 집회를 감시했고,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의 휴대전화를 뒤질 수 있었다. 이것이 일부 경찰의 일탈이었을까? 불법 집회를 막아야 하는 경찰로서는 세월호 집회를 감시하기 위해 자신들의 감시 권한 사용에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경찰의 감시 권한을 제한하는 법률도 없다. 이것은 세월호 집회에서만의 일이 아니고, CCTV 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 경찰의 첨단감시기술 도입과 이용에는 대개 구체적인 법률적 근거가 없다. 이 시스템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는 경찰 자체 규칙에 달려 있고, 일부 법률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그 사용 한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 말인즉슨, 어떤 첨단감시시스템을 도입할 때에도 국민들이 토론하고 국회에서 합의할 기회가 없었다는 말이다. CCTV를 비롯한 수많은 경찰 시스템이 전혀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있지 않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민주국가에서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경찰은 국민들 앞에 공개하거나 토론하는 과정 없이 전국 모든 경찰 CCTV에서 차량 번호판을 자동으로 인식해 수집해 두었다가 추적에 사용한다. 물론 아무런 범죄 혐의가 없는 일반 국민의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한다. 언제 어디서 어느 차량이 범죄에 이용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이고, 그 규모가 일일 2천 4백만 건이나 된다. 앞으로는 페이스북에, 트위터에, SNS에 올라온 국민들의 게시물을 평소 갈무리하여 범죄를 예측하는 데 쓰겠다고 한다. 명분은 얼마든지 있다. 경찰은 극단적인 범죄 사례를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행정자치부와 경찰은 영상정보보호법 제정안도 예고한 상태이다. 법안에 따르면 불법 논란이 일고 있는 경찰 파견 CCTV 통합관제센터도, 새로 등장할 경찰 바디캠이나 경찰 드론도, 별다른 제한 없이 재량껏 운영할 수 있다. 이 법 제정에 반대하였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권고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분명 문재인 대통령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겠노라 공약했었는데.

바우만이라는 학자는 우리 사회를 ‘개인안전 국가’라 칭했다. 개인안전 국가는 국민의 복지를 책임지고 진정으로 안전한 국가로 가길 포기하고, 국민들 사이 만연한 공포에 기생하여 감시를 확대한다. 감시 국가에서는 인간적 유대가 줄어들며 낯선 이들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횡행한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자본으로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행동 능력에 대한 낙관적 자신감도. 역사적으로 볼 때 복지국가는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던 사회계층에 자신감을 부여하는 수단이었다. 복지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자신감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라 전체의 공동재산으로 부여했다. 반면 ‘개인안전 국가’는 자신감과 신뢰의 두 숙적, 공포와 불확실성을 자본으로 한다.
–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공포>

개헌이 이루어 진다면 앞으로 우리 헌법에는 ‘안전권’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분명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가 포기했던 우리 국민의 권리이고, 이 권리가 새로운 헌법에 명시되는 것은 촛불 민심이 이루어 낸 성과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좀더 치열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안전권이 치안을 위해 국민의 정보인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경찰 권력이 국민이 위임하거나 수용하는 한도를 넘어설 때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경찰의 권한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미래가 우리에게 닥칠 것이다. 감시 권력이 압도적인 국가에서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도 어디론가 사라질 수 있다. CCTV를, 치안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역시 이런 문제의식 위에 새로이 설정되어야 할 시점이다.

*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연구위원)

* 안전사회 시민네트워크(안전넷) 안전칼럼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