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TRIPs)의약품특허자료실

[특허/칼럼] 의약품과 특허의 문제-재산권은 인권에 우선할수 없다!

By 2001/09/1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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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과 특허의 문제- 재산권은 인권에 우선할 수 없다!

정혜주(민중의료연합 공공의약팀)

건강권과 재산권에 대한 토론

지난 6월 20일, 스위스의 제네바에서는 역사적인 토론이 있었다. 원래는
2005-2006년으로 되어 있는 TRIPs(무역관련지적재산권) 협정에 대한 각 회원국의
이행정도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TRIPs Council에서,
건강권과지적재산권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진 것이다.

3달에 한번씩 열리기로 되어 있는 TRIPs Council의 4월 회의에서 아프리카 회원국의
전원발의를 통해 다음 회의에서 최빈국(最貧國) 민중들의 건강권과 이를 침해하는
지적재산권에 대해 논의하자는 결정이 이루어졌고, 6월 20일 하루 종일 47개국
대표들의 연설과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논의에서 지적재산의 권리가 민중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대해 ‘미국만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동의했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지구적 재앙

스와질랜드라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나라의 전체 인구는 고작 90만명, 이들 중
25%는 AIDS/HIV 감염자이다. 이 나라는 지금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중인 것이다.
짐바브웨에서 작년에는 AIDS환자들의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해 하라레시(市) 공동묘지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24시간으로 연장했고, 올해는 드디어 시체를 묻을 곳이 모자라는
상황에 처하여 ‘다음 가족을 그 위에 묻을 수 있도록 먼저 묻는 사람을 충분히 깊게
묻어 달라’는 시의회의 요구가 있었다.

AIDS는 처음에는 게이남성, 성노동자, 마약주사자 등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다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바이러스의 해일로 돌변, 경제활동인구를
‘몰살’하고, 그 나라를 고아와 노인만으로 이뤄진 나라로 만들어버린다.

죽음은 남반구에, 약물은 북반구에

문제는 20년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AIDS약물(항레트로바이러스제)들을 이
사하라 남부 지역의 AIDS환자들은 복용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거대 제약회사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항레트로바이러스제들을 1년 동안 복용하는 데
드는 비용만도 이 최빈국들 평균 1인당 GNP의 10배이다. AIDS에 의해 생기는 합병증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합치면 이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한다.

AIDS약물의 유무는 예방의 가능성까지 결정한다. 약이 없어서 어차피 죽어야한다면
사람들은 차라리 모르고 죽는 편을 택한다. AIDS검사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AIDS에 의한 사망의 세계적 분포는 다음과 같다.: 전체 사망자 300만명 중
240만명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거주, 북미 지역 사망자는 2만명인데 대부분 유색인종
등 사회적·경제적 소수자.

특허에 의한 살인

약물이 이렇게 비싼 이유는 특허 때문이다. 특허는 독점시장을 형성해줌으로써
제약회사가 마음대로 가격을 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북미·유럽·일본시장을 합친
것이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전체 아프리카가 1.5%밖에 차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약산업의 우선순위는 이미 정해져 있다.: 북반구에 대해서는 높은 가격을,
나머지에게는 죽음을.

그리고 이 특허체제에 기반하여 상위 50위까지의 제약회사가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90%를 독식하는 엄청난 독점이 형성돼 있다. 그리고 그 독점이윤은? 특허기간이 ‘하루’
연장될 때마다 평균 3억원 이상의 이윤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2001년 상반기, 인도의 일반약 회사인 Cipla는 거대제약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 연간 1만5천달러가 필요한 AIDS약물을 l/43인 350달러에 제공하겠다고
함으로써 약물의 ‘진짜’가격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열어 제꼈다.

‘생명가격’은 흥정되는 것이 아니다

의약품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접근가능해야 한다. 9월 19일에 있을 TRIPs Council에서는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한 토론이 다시 한번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작성될 초안은 11월 카타르의 각료회의에서 채택될 예정이다.

특허법은 각국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하며, 필수의약품에 대한 특허를
보장할지 말지도 각국의 상황에 맞게 결정되어야 한다. TRIPs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장하고 있는 강제실시(특허권자의 승인 없이 정부 등의 승인으로 특허권의 사용을
허용하는 것) 등의 안전장치를 각국이 발동하는 데 있어서 미국이나 WTO의 압력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TRIPs 협정 전체는 재산의 권리가 아니라 건강과 생존과
인간의 권리를 중심으로 읽혀지고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연대투쟁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거진 글리벡 문제는, 백혈병 중 가장 치료가 힘든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약물이, 특허에 의해
어떻게 독점되고 어떻게 접근이 방해받을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들은 한 달에 600만원씩 빚을 내어 글리벡을 사먹으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고, 무능한 보건복지부는 아무런 효과적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여전히 한 알에 25,000원이 고수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TRIPs Council에 대한 싸움은 아프리카만의, 혹은 AIDS 환자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세계의 가장 가난하고 배제되는
사람들과의 연대투쟁임과 동시에 의료와 약물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한 싸움의 첫 시작인 것이다.

2001-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