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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거버넌스/칼럼] ICANN 참관기 : 인터넷 거버넌스와 네트의 민주주의

By 2001/04/0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ICANN 참관기 : 인터넷 거버넌스와 네트의 민주주의

이원재 (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정보팀장 )

최근 들어 인터넷은 물론이고 TV 및 라디오 광고 그리고 옥외 광고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com’(닷컴)이다. 물론 닷컴의 위력은 대단하다. 21세기가 사이버 세상이라는 모토아래 각종 사이버쇼핑몰은 기본이고, 구멍가게의 간판까지 닷컴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닷컴이 무엇이길래… 닷컴이라는 두 글자에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위력만큼이나 복잡한 권력관계가 숨어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선점하라.

인터넷을 통해 다른 컴퓨터와 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에 접속된 각각의 컴퓨터에 대한 주소가 필요한데, 이 인터넷 주소는 숫자로 표현된 주소(IP)와 문자로 표현된 주소(도메인네임)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실제로 컴퓨터가 인식하는 주소는 ‘123.234.56.7’과 같은 IP주소이며, 이를 우리가 쉽게 기억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www.internetforum.co.kr’과 같은 도메인 네임이다. 즉 사람으로 치면 IP주소는 주민등록번호이고, 도메인 네임은 이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메인 네임은 크게 전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gTLD’(generic Top Level Domain)와 ‘.kr’과 같이 국가별로 운영되는‘ccTLD’(country code Top Level Domain)로 구분된다. 따라서 닷컴은 ‘.net’, ‘.org’ 등과 함께 gTLD에 포함된 7개의 도메인 중 하나이며, 초기부터 상업용 도메인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인터넷의 상업적 이용이 허용된 1991년부터 닷컴을 둘러싼 전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한국을 비롯한 비선진국 국가들은 최근에야 이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여기서 도메인 네임이 중요하고 위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글자나 이미지가 아니라 사이버스페이스로 진입하기 위한 유일한 입구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SF 영화에서 등장하는 4차원 인터페이스가 개발되지 않는 한) 도메인 네임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며, 아무리 많은 정보와 상품이 있어서 도메인 네임이 없이는 인터넷과 사이버스페이스에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메인 네임은 현실 공간의 상표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현실 공간에서는 아마존목욕탕, 아마존서점, 아마존빵집 등의 무수히 많은 상점과 기업이 공존할 수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오직 한 기업만이‘amazon.com’을 전세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명상표의 인터넷 도메인 네임에 대한 선점을 통해 폭리를 취하는 일명‘사이버스쿼팅’(cybersguatting)이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와 현실 공간의 상표와 동일한 인터넷 도메인 네임을 획득하기 위한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코하마 ICANN 총회와 인터넷 거버넌스

지난 7월 13일부터 5일간의 일정으로 일본 요코하마에서 진행된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Assigned Numbers and Names) 총회’는 도메인 네임을 비롯하여 사이버스페이스를 둘러 싼 ‘땅 따먹기’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고 중요한지를 확인시켜준 행사였다. ICANN은 국제적으로 인터넷 관련 제반 문제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부기구인데, 이번 총회에는 40여개국 500여명의 인터넷 관련자들이참가하여 크게 다섯 개의 의제를 다루었다. 이중 이번 총회에서의 핵심적인 이슈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새로운 gTLD의 생성과 관련된 의제들과 ICANN의 민주주의적 운영을 위한 ‘At Large Membership and Election’(일반회원 제도와 선거)의 정착이었다. 즉 앞의 이슈는 닷컴을 선점한 기업들의 독점과관련하여 ‘.shop’,‘.web’등과 같은 더욱 다양한 도메인네임을 생성하자는 논의였고, 뒤의 이슈는 인터넷 거버넌스(Governance)와 관련하여 ICANN에 대한 일반 이용자들의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적인 운영을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새로운 도메인 네임 생성의 경우는 이번 총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른 첨예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미국과 서구 중심의 초국적 기업들은 이미 선점한 도메인의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도메인 네임 생성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반면에 기업의 경제적 독점에 반대하는 선진국의 비영리기구들(NGO)은 새로운 도메인 네임의 광범위한 생성을 통해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평등한 기회제공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한국과 같은 비선진국 국가의 기업들은 아직도 도메인 네임과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문제의식의 결여로 구체적인 주장과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며, 비선진국에 속한 비영리기구들 경우 역시 ‘자본에 대한 반대’(도메인의 무한 확장을 통한 독점 해체)와 ‘자국의 경제 및 정보화 수준’(당장 새로운 도메인 네임을 생성할 경우 이 역시 선진국 기업들에 의해 선점될 여지가 높기 때문)이라는 중첩된 현실 속에서 명확한 입장과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관계 속에서 결정된 사항은 닷컴의 사례에서와 같이 향후 인터넷과 사이버스페이스를 둘러 싼 세계 경제와 시민사회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고, 따라서 각각의 이해주체들은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총회기간 내내 총성 없는 전쟁을 치열하게 진행하였다.

미국 중심주의와 인터넷 거버넌스

문제는 현재의 인터넷 거버넌스에 있어 ICANN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고, 아직까지 ICANN 내외부적으로 미국과 서구 중심의 권력체계, 민족주의 및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고있다는 점이다.
먼저 현재 ICANN의 정책 결정단위 및 운영방식만 보더라도 대부분이 영어권 중심의 서구 선진국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상당 부분이 이들 국가의 경제적 이득과 권력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따라서 현재의 ICANN을 둘러 싼 권력의 불균형은 앞으로의 인터넷 거버넌스에 있어서도 다양한 문제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즉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의 초국적 기업 및 일반 사용자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국제 인터넷 정책이 입안, 실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은 과거 산업사회의 서구중심주의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있어서도 제3세계 국가 및 시민사회의 배제와 소외가 또 다시 답습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더욱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가들의 ‘힘의 논리’는 인터넷의 민주주의적 가능성을 고사하고 신자유주의적 구조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즉 정보화 자체가 기술을 중심으로 현실 사회의 발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미국식 정보주의의 배후에는 현실의 지배력을 존속시키고, 나아가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현재의 구조화된 세계체제와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지배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보화라는 것이 어느 한 순간 부여되거나 단시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의 연속선상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인터넷과 그 하부구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제 사회의 갈등은 가히 정보화 경쟁인 동시에 인터넷 거버넌스의 주도권과 관련된 힘겨루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출발선이 다른 이 게임에서 비선진국 국가와 그 시민들이 또 다시 피해자가 될 확률은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은 이번 총회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ICANN의 정책결정권을 가진 이사위원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서구중심주의적 가치관과 민주주의적 운영방식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현실의 논리에 입각하여 인터넷의 기술적 가능성이나 대안성보다는 상업주의적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모든 회의가 철저하게 영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준비되고 진행되었으며, 비영어권 및 비선진국 의 참가들을 위한 배려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더욱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근거로 한 수평적 참여만이 강조 되었을 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터넷 거버넌스의 진보적 운영에는 너무나 명확한 한계를 드러내었다. 한편 이를 견제하기 위한 몇몇 비영어권 및 비선진국 국가들의 개입 방식 역시 아직까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라는 현실 사회의 한계를 그대로 네트에 투영시키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단적으로 ‘At Large Membership’만 보더라도 지난 2월 모집을 시작한 이후 요코하마 총회가 있기 전까지 미국 중심의 북미가 60%, 유럽이 20% 등 전체의 80%를 서구 선진국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 밖의 모든 나라들은 단지 전체의 20%만을 구성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요코하마 총회를 전후로 일본, 중국 등이 국가가 주도하는 멤버쉽 드라이브를 진행하면서 현재 ICANN의 ‘At Large Membership’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조만간 진행될 선거에 자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한 인원동원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ICANN에 존재하는 서구중심주의는 일정 정도 견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터넷 거버넌스의 민주주주의적 운영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실험단계에 있는 인터넷 거버넌스에 국가중심의 인원동원과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개입할 경우,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 온 국가과 민족에 기반한 지역적·문화적 갈등만을 재생산하거나 오히려 증폭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국가 단위의 사고에 기반한 일반 시민 및 사용자에 대한 소외와 배제의 논리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디지털패러다임의 등장과 함께 가장 유행하는 담론은 ‘현실 Vs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이분법적 이원론이다. 각종 기업 광고에 등장하는 것처럼 마치 사이버스페이스가 현실과는 괴리된 그래서 너무나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치부되거나 기대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의 배경에는 정보에 대한 기술결정론적 낙관주의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현실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은근 슬쩍 감추어 버린다. 즉 기술적 가능성과 환상은 구분되어야 하며, 사이버스페이스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의 맥락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의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을 둘러싼 가장 첨예한 자본주의 시장인 동시에 권력 쟁탈전의 핵심적인 공간이다. ICANN과 인터넷 거버넌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직까지 출발선 상에 있는 ICANN과 인터넷 거버넌스는 기술에 기반한 무한한 가능성과 현실의 모순 관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ICANN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나 비관주의가 아니라 “열려진 가능성에 얼마나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의 힘의 원리에 의해 소외되는 개발도상국 혹은 비선진국들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도록 인터넷 일반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인터넷 거버넌스의 진보성과 네트의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민주주의적 의사결정구조가 ICANN 및 한국 인터넷 운영에서도 실현될 수 있도록 각 집단의 조화를 통한 수평적이고 탈위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번 총회의 경험 및 각종 시민단체들간의 회의를 기반으로 인터넷 관련 국제기구 및 국제 동향의 흐름을 항시적으로 파악하고, 진보적인 정보운동단체들과의 긴밀한 연대관계를 형성하여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과 대다수 인터넷 시민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모색해야 한다. ■

200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