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정보공유

[접근권/칼럼] 정보화시대의 공부방논쟁

By 2001/04/0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화시대의 공부방 논쟁

이혜연 (도서관운동연구회)

몇 해 전 우연한 기회에 일본 공공도서관을 견학한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연결되는 도서관의 지리적 접근용이성, 음악CD·비디오테이프·향토자료 등 자료의 다양성과 풍부함,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시설·설비와 대면낭독실, 어린이를 위한 편안하고 아늑한 인테리어와 프로그램 등. 참, 우리나라와 다르구나!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더니. 지하철에서 연결된 로비에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마치 백화점 안내데스크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실내에는 몸을 마구 흔들어 대며 헤드폰을 낀 청소년들이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로비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노숙자들이었다. 심한 냄새를 풍기면서 로비에 마련된 편안한 소파에 잠을 청하고 있는 장면. 상상을 한번 해보시길. 이런 훌륭함에 연신 감탄하면서도 한 가지의 표지판은 친숙함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습은 하지 마세요’라는 표지. 자료열람실 열람석의 둥근 테이블 위에 놓인 안내문이었다.

내 기억에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정규수업이 끝난 후 자율학습을 하던 곳이다. 넓은 공간에 들어찬 8인용 책상, 칸막이로 구획을 해 놓은 책상에서 10시까지 공부를 해야 했다. 아마 그 공간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독서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표지는 ‘도서관’으로 되어 있었고, 사실 넓은 공간의 옆에는 조그만 도서관이 있었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지만, 도서관 담당 교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결코 자율이 아닌 자율학습을 해야만 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너무나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도서관이 아닌 독서실에서 모진 암기공부를 했던 나는, 대학 이후 자습을 위해서 도서관을 이용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다른 이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 그 이유 중 소소한 것을 들면 암기식 공부방법에 질렸다는 것이 하나다. 어떻게 보면 대학 시절 스스로 어려운 공부방법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과목별 기출문제를 서로 돌려보며, 이해보다는 암기를 하면 더 좋은 학점을 얻어서 세인이 말하는 더 좋은 생활을 향유했을지도 모른다. 건방진 소리가 될지 모르지만, 기성세대의 학문에 대한 반감이 나에게는 있었다. 배운 그대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에 자료탐색을 중심으로 하는 학습방법을 선호했다. 그렇다 보니, 자료열람을 하는 도서관의 이용은 했지만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어와 상식 공부를 밤새워 하는 학창시절 경험은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이유도 개인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인데, 협소한 공간에서 갑갑함을 느끼는 것 보다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옆 사람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자리를 잡기 위해 아침 일찍 집에서 나가야 하는 고생, 왔다갔다 걸리는 시간 등등.

개인적인 취향은 위에서 말한 대로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을 ‘공부방’으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일반화되어 있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대학을 설립하겠다, 공공도서관의 ‘공부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사이버 안방자료실을 구축하겠다 등의 정보화정책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과연 ‘공부방’현상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정보화사회라고 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부방’에 관한 논쟁은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의문거리이다. 입시중심의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고 하면서, 왜 공부방법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제기는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가정이 아닌 외부의 공간을 공부방으로 선호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교육권·학습권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공부방을 사회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하나의 자원으로 여긴다면 그 주된 역할은 어떤 식으로 누가 주된 역할을 해야하는지. 또, 자료·정보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영역의 하나인 도서관에서 ‘공부방’현상을 발전지체의 원인 중 중요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면, 해결책은 어떻게 강구해야 하는지 등.

지금까지 ‘공부방’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을 구체화시켜 합리적인 토론을 해보아야 하리라. 나는 우선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인와 정치인, 행정관료들에게 도서관의 역할을 ‘공부방’으로 오인하지 말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도서관은 위에서 말한대로 시민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그리고 우리가 전수받은 문화유산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지역의 다양한 문화활동·지식정보를 축적해 이용시키기 위한 우리의 공공자원으로 기본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비록 서구적 개념의 이식이긴 해도, 사회교육자원으로서 공공도서관의 역할수행은 매우 필요한 공적 자원인 것이다. 책 읽는 사회, 창의력이 풍부한 사회, 민주적인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기본적 공공 자원이 되는 것이 공공도서관의 서비스들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적어도 ‘독서실’과 ‘도서관’은 구분해서 명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도서관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관료들과 공무원들에게 ‘도서관’의 기본 기능에 충실하라고 말하고 싶다. 예산·인력·자료의 부족을 탓하지 말고, 현재의 여건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도서관’의 활동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모범의 창출과 확대가 무엇보다 지금 시급한 과제가 된다는 것을 담당자들은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무원칙하게 민원을 줄이기 위한 도서관운영을 하기보다는 소신 있는 전문경영을 해나가길 바란다. 또한, 도서관정책을 입안하는 측도 막연히 ‘공부방’현상을 해소하겠다면서 인쇄매체 중심에서 전자매체로 변화을 시도하고 인터넷기자재를 도입해 ‘안방자료실’을 만들면 ‘공부방’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정책을 내놓는 무책임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대중이 전자매체를 선호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자매체만으로 ‘공부방’현상이 과연 해결될 문제인가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부방법과 장소의 연관성을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과거에는 가정에 공부할 환경이 되지 않아 외부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환경이 되는 경우도 가정보다 외부 시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대중심리를 이용해 집중하기 쉽다거나 또래집단과의 교류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더러는 집에서는 TV를 보거나 놀기만 하고 공부가 안되기 때문이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공부방’ 역할이 도서관에서만 해결해야 하는 역할은 아니다. 지역에 있는 유휴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부방’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는 다양한 공공시설을 고려해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도서관이라는 멋진 공간을 좌석 대여로 사용한다는 것은 기본 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 예산 낭비라고도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보존서고도 하나 두지 못하는 공공도서관의 현실, 자료실 서가와 서가 사이의 협소함 등 열람좌석을 제공하는데 치중하다보니 현재 우리 나라의 공공도서관은 기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도서관전문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는 시민들의 인식변화가 있어야 한다. 나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여 ‘공부방’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시민정신이 확산되길 바란다.

200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