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정보화] ‘닷컴 노조의 깃발’ 외… /이광석

By 2000/12/0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디지털사회] 닷컴 노조의 깃발

미국 노동자의 3할 이상이 임시직·계약직 등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 있다. 특히 정보산업 분야에서 늘어난 불완전 고용 인구가 노동조건을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임시직이 증가할수록 전체 노동자들의 결속과 노조 설립의 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미국의 노동운동계는 수세적 입장에서 임시직의 증가를 반대해왔다.
노동계의 생각이 바뀐 것은 올들어서다. 임시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닷컴기업들의 대량 해고 경향 등 점차 심해지는 고용 불안으로 인해 이들의 문제를 묵인할 수 없다는 상황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서점인 아마존의 임시직 노동자 중심의 노조 설립 움직임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아마존은 지난해 가을을 시작으로 올 1월에는 150명의 정규직 노동자를 1시간의 해고 통보 이후 잔인하게 내쫓는 해고 조처를 단행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임시직이나 계약직으로 대체하려는 구조조정의 서곡이었다. 9월에는 저임금 노동력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인도의 한 벤처기업과 계약을 맺고, 앞으로 고객 서비스 부문의 약 80% 정도를 이곳에서 조달하기로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렇게 올초에만 260여명을 해고했고, 사전통보 없이 바로 전출시키거나 상근직을 임시직으로 하향 이동시켜 고용 불안감을 높였다. 설상가상으로 고객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는 임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저임금 구조, 장시간 노동, 해고 위협, 그리고 닷컴의 최대 특전으로 여겨졌던 스톡옵션의 가치하락도 노동조건 문제를 악화시켰다.

임시직 노동자들 중심의 강한 노조 설립 의지는 이제 아마존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유했던 임시직 노동자들의 비밀 `노비문서’를 직원들에게 공개해 유명해진 워싱턴주 기술노동자연대(WashTech)가 이들 노동자의 협력단체로 버티고 있다. 10월 중순께 고작 4명의 아마존 노동자들이 피자가게에 앉아 시작한 모임이 급성장해 노조를 인정받기 위한 집단 서명으로 발전했다. `첨단’ `닷컴’ 등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노조 설립을 무산시키려는 아마존의 공작도 거세졌다. 경영진의 노조반대 문건 배포와 사이트 개설, 경고성 전자우편 전송, 집중교육 등 노동법 위반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아마존의 노조 결성 움직임은 열세에 놓인 닷컴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세력화와 관련한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아마존이 닷컴의 상징처럼 구가되던 무노조 신화를 깨고 있다는 점에서, 화려한 신경제의 거죽이 색바랜 구경제에 비해 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음을 정확히 일깨우고 있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leeks@mail.utexas.edu

[@디지털사회] ‘원격노동’ 노동자결속 해칠수도…

편집시각 2000년11월09일18시25분 KST

원격노동(telework)은 흔히 디지털 미래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항상 거론되는 주제다. 원격노동은 보통 재택근무와 원격 사무실 근무 모두를 지칭한다. 이 `유연한 노동’의 흐름은 컴퓨터간 네트워킹 기술의 발전과 자유 계약직의 성장이 근간이 됐다. 무엇보다도 원격노동은 작업장을 벗어나 노동자 자신이 근무 시간을 관리하는 자유로운 노동 형태로 각광받았다. 반면 일부에서는 원격노동이 사무실과 일상의 경계를 흐려 궁극적으로 노동을 공장에서 사회로 연장하는 새로운 도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때마침 국제원격노동협회(ITAC)가 원격노동의 추세를 담은 연례 보고서를 발표해 주의를 끌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미국내 정규 원격노동자가 1650만명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2004년에는 3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원격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20시간이고 노동자들은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주목할 점은 원격노동센터로 불리는 원격 사무실 근무의 증가다. 센터는 교통 정체로 인한 근무의욕 감퇴와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 대응해 고용자들이 새롭게 고안한 자구책이다. 사원들의 집을 중심으로 원격 근무지를 마련해놓고, 관리자들을 파견해 통제력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노동 자율성을 보장하는 근무 방식이다. 재택근무에 비해 센터가 곱절의 노동 생산성 향상을 기록한 것을 보면, 작업장의 재배치를 통해 노동 통제와 자율의 묘를 잘 살렸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한편 계약직 노동자나 자영업자의 원격노동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불안정한 원격 노동의 구성비 증가는 잠재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을 흔드는 악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체적으로 보고서는 원격노동이 고용자에게 생산성 증가를 가져다주고 노동자에게는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견해다. 보고서는 협회의 성격에 어울리게 미국 기업들의 원격노동 확대를 위해 기획됐다. 원격노동이 노동자와 사용자 양쪽에 가져다주는 상호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프랜시스 후쿠야마라면, 보고서 말미에 그의 책제목이기도 한 노사간 `신뢰’의 윤리를 덧붙였을 것이다. 그에게 원격노동은 바로 노사간 신뢰로 나아가는 노동 윤리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쿠야마나 보고서가 볼 수 없는 부분은 원격노동이 만들어내는 노동자간 신뢰의 고리다. 원격노동이 장차 노동자를 작업장으로부터 해방시켜 노사 간의 신뢰를 쌓을 수는 있어도, 노동자 간의 신뢰와 결속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불신의 윤리를 낳는다는 사실을 이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leeks@mail.utexas.edu

[@디지털사회] 정보 세계화에 감춰진 칼

편집시각 2000년10월19일20시19분
올 상반기 미국에서 비소설 분야 히트작은 단연 <넥서스와 올리브나무>였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이 책은, 최근 미 상원의원들의 필독서 중 하나로 꼽힌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글로벌화(범지구화)가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며, 이를 선도·지휘하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팡파르를 울려대고 있다. 프리드먼의 오류는 저개발국들이 글로벌 시장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을 민주화로 착각한 데 있다.
프리드먼의 이런 오류는,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 정보격차 해법을 일종의 `글로벌 민주화’로 선전하는 방식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정보격차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는 지난 7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주요8개국(G8)의 정상 모임에서 이뤄졌다. 당시 중요한 논제 중 하나는 전세계 정보격차의 해소였다. 이를 이어받아, 이번주 미국 시애틀에서는 세계자원기구(WRI) 주최로 전세계 300여명의 닷컴기업 경영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세계 디지털격차 해소를 위한 대규모 행사가 치러졌다.

이 대회의 백미는 5분 정도 되는 주최 쪽의 선전광고였다. 주최 쪽은 전세계 정보 격차의 심각성을 알리는 문안을 준비했다. 세계 인구의 80%가 전화를 전혀 접하지 못했으며, 인터넷에 접속하는 인구는 전체의 2%도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 문안은 전세계 디지털 현실의 암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회의 이런 민주주의적 덧칠은 자원기구 의장인 윌리엄 럭컬스하우스의 논평을 통해 쉽게 벗겨졌다. 그는 이 대회가 글로벌 닷컴기업들이 무시했던 정보 빈국들을 신경제의 잠재적 시장으로 부각시키고 새로운 사업 기회로 삼는 모임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더불어 그는 거대 닷컴기업들이 능동적으로 디지털 경제의 혜택을 정보 빈국들에 나눠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과거 선진국에 의한 제3세계의 경제 종속과 환경 파괴를 불렀던 개혁 확산론을 수정해, 제3세계 신발전론을 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정황을 곰곰이 따져보면, 오히려 현재 정보격차 해결을 위한 선진국들의 논의는 전자상거래 시대에 걸맞는 제3세계의 종속적 발전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대 닷컴기업들이 정보격차의 해소라는 대외적 명분을 가지고 새로운 디지털 시장 논리를 범지구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다는 추측이 나올 법하다. 특히 이번 대회의 성격이 정보격차의 해소를 글로벌 단일 시장에 동참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증이 간다. 이는 프리드먼과 럭컬스하우스 모두 외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leeks@mail.utexas.edu

200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