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김지현
진보넷에는 시민단체에서 여러방면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회원분들이 많은데요. 이번 달 인터뷰 주인공은 최근 말 많고 탈 많은 영화진흥위원회의 횡포에 피해를 입게 된 미디액트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김지현 회원님입니다. 상암동에 위치한 미디액트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인터뷰를 가장한 그녀와의 즐거운 수다! 지금부터 김지현 회원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촛불시위와 온라인 광장 아고라. 다시 미디어
다시금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무수히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직접민주주의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하고 있다. 쪽팔리고 빈약한 언술로 차마 숟가락 하나 더 얹을 생각은 없지만, 좀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고루하고 식상하지만 다시금 중언부언하는 것에 대해 양해 부탁드린다.
1.
2002년 효순․미선이 미군장갑차에 의한 사망 사건 당시에도 촛불시위를 주도한 것은 여중생들이었다. 그들은 당시에도 카페나 싸이월드에 사진을 퍼 나르며, 매일 저녁 광화문을 촛불로 밝혔다. 당시 온라인 광장의 중심은 오마이뉴스 등의 인터넷언론이었다. 2004년 노무현 탄핵반대 시위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소고기협상 반대 촛불시위도 중․고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에서부터 시작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더욱 의외의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펄럭이는 다음 아고라 깃발이다.
무너진 키치(Kitch)의 왕국
쿤데라 : ‘Kitsch’라는 말은 19세기 독일에서 생긴 말입니다. 그 의미가 점차로 변해 와서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어떤 유(類)의 미적 스타일, 싸구려 예술을 뜻할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것 훨씬 이상이지요. 그건 어떤 세계관에 뒷받침된 미학, 거의 철학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건 인식이 제외된 아름다움이고 사물을 아름답게 만들고 남에게 환심을 사려는 의지이며 총체적인 순응주의입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망각 : 밀란 쿤데라 & 앙트완 드 고드마르 인터뷰>, 김화영 옮김, 계간 문학동네 12호, 1997
1. 촛불 : 2007 vs 2008
2007년 4월 2일.
미디어를 가지고 놀자, 괴물과 함께 자라자
괴물출현
번쩍 번쩍 여기저기서 눈을 떴다. 그리고 눈동자에 순간을 담는다. 그 모습은 마치 천 개의 눈동자가 달린 생물 같다. 앞에도 뒤에도 위에도 눈들이 달려서 깜빡깜빡 거린다. 그리고 어떤 눈은 본체에서 뻗어 나와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촉수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보고 다닌다. 언제부터인지 매일 밤 시내에는 괴물이 출현한다. 그 괴물의 몸은 수십만 개의 빛을 내는 아름다운 땡땡이 무늬의 표면을 가지고 있다.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건 액체라고 하는 게 좋을 모습이고 눈이 천 개가 넘게 박혀 있어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어디가 입인지 알 수 없다. 수천 개의 소리가 여기저기 구멍에서 쉴새 없이 흘러나오는데 그건 때로는 성난 고양이 소리 같기도 하고 노래 소리 같기도 하며 비명 같기도 하다.
정보통신운동의 역사와 공공성의 과제
1. 통신의 시작- 통신망의 발전과 PC통신의 등장
남한에서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론의 장은 82년 데이콤의 설립과 함께 시작된 PC통신 서비스에서부터 출발한다. 중화학공업중심이었던 한국경제 구조가 국가주도로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비스 산업의 근간은 바로 통신망의 건설이었다. 생각보다 일찍이 국가와 자본은 통신 산업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고속도로건설처럼 통신망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한다.
이런 육성책의 일환으로 당시 체신국으로 통합되어 있던 통신기능을 한통과 데이콤으로 전문화시킨다. 이는 각 사업자들에게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줌으로서 이루어졌는데, 이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통신망구축의 교과서적인 방식이었다. - 오늘날 KT의 시장지배자적 지위의 근원이기도 하다. - 그 중 데이콤은 통신서비스 중 데이터통신 서비스 영역을 전문화시킨 것이다. 이후 데이터통신 서비스는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급속도록 자리를 잡으며, 천리안 그리고 하이텔 서비스가 80년대 말-90년대 초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정보통신기술과 국가권력의 재구성
1. 들어가며
한참 냉전이 극단을 치닫고 있던 시기 미국은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터넷 기술에 주목하였다. 비록 인터넷은 미국의 냉전 전략의 도구로 시작되었지만 엘고어가 정보고속도로의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순간 자본의 세계화의 첨병으로서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 오늘날 인터넷을 위시한 정보통신 기술은 자본의 도구뿐만 아니라 우리 노동과 일상에까지 깊이 파고들었으며 정치권력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