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대중 정부는 전자정부를 ‘성공한 사업’이라고 자평했다. 김대중 정부가 전자정부를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거의 모든 사업에서 시스템들이 계획기간 내에 개발되어 정상적인 가동을 했고 목표로 했던 서비스도 대부분 제공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전자정부특별위원회 발간 {전자정부백서}) 특히 평가는 ‘계획기간’ 내에 완수되었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2003년 내내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 전자정부 사업 중 하나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정보인권 침해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2월에는 주민등록시스템과 운전면허시스템이 차례로 중단돼 국민을 불안케 했다. 사고의 원인은 조작미숙이나 장비에 따른 문제라고 하지만 전자정부가 안전한 것인지, 행여 우리에게 재앙이 되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자정부 시스템의 상당수가 국민의 개인정보, 그것도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정부는 민주주의를 생각하는가
전자정부는 주로 행정업무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전자정부 사업 역시 국민에게 최고수준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활동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며, 행정의 생산성·투명성을 극대화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전자정부백서에서는 이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하였다.
그러나 전자정부에서 기술적이고 양적인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다. 김대중 정부의 전자정부 사업에는 ‘행정의 민주성’이 목표 중 하나로 언급되어 있지만 선언적인 의미에 그쳤다. 전자정부 백서에도 ‘국민의 정부가 수행한 전자정부사업은 … 민주성의 구현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행정의 민주성, 그리고 인권의 원칙이야말로 전자정부의 우선적인 원칙이 되어야 한다.
전자정부구현을위한행정업무등의전자화촉진에관한법률(이하 ‘전자정부법’)은 행정기관은 업무처리과정 전반을 전자적 처리에 적합하도록 혁신해야 하고(제7조) 행정기관의 업무는 되도록 전자화해야 하며(제8조) 행정기관은 자신이 수집·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다른 기관과 공동 이용해야 하고 다른 행정기관과 동일한 내용의 정보를 따로 수집해서는 안된다(제11조)고 명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자정부란 모든 행정업무를 문서 대신 자동화된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민원인의 불편 해소를 위해 행정정보를 공동이용하겠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왜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해야 하는가? 정보의 디지털화는 기존의 개인정보 수집과는 다른 차원의 위험성을 갖고 있다. 예컨대 기존에는 사회보장과 관련한 개인 정보를 사회보장 수급자 대장이라는 종이문서에 수록했다면, 이것이 디지털화해서 집적될 경우 유출되고 오용될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다. NEIS에서도 결국 민감한 보건 정보는 입력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시스템에는 이와 유사한 문제점이 없는 것인가.
무엇보다 업무처리의 전산화는 자동화된 판단을 유도하면서 개인의 항변을 봉쇄하고 인간을 대상화할 수 있다. 행정이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이런 문제 때문에 전자정부법 등 전자정부 체계에서 기본 이념과 원칙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우선하는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행정정보를 디지털화하고 통합하는 것을 기본전제로 할 것이 아니라 디지털화할 것인지, 통합할 것인지부터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참여정부가 전자정부 로드맵을 발표했다. 여기서는 행정 민주성의 목표가 별도로 잡혀있다. 5년 후에는 국민의 전자적 참여를 현재 여론조사 수준에서 정책참여 및 협의로 향상시키고 행정정보를 능동적, 개방적으로 공개하는 한편,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정보통제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정부를 구축한다고 이 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전자정부를 구축하는 모든 과정에서 국민의 민주성과 인권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관점의 변화가 절실하다.
2004-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