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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감시하는 정보통신기술 노동운동을 위한 인터넷

By 2003/12/19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정보사회 돌아보기

최세진

정보통신의 발달과 대중적 보급은 노동진영에 있어서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현재 그에 대한 노동진영의 분석과 대응은 아직 미약한 상황이다. 정보통신이 노동(자)에게 주는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노동과정’의 변화와 ‘새로운 도구’로 이야기 할 수 있다.

먼저, 자본 구조의 재편에 따른 노동과정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은 70년대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 신자유주의와 함께 본격적인 산업으로 등장하여, 급격한 자본구조 재편과 노동과정 변화를 이끌어 가는 핵심 기술이 되고 있다. 자본에게 있어서 정보기술과 정보산업은 곧 시장의 확대, 빠른 자본의 흐름, 생산성 향상을 의미하겠지만, 노동자에게는 노동강도 강화, 실질임금 하락, 고용불안, 자본의 노동통제력 강화, 노동자감시, 노동자 집단의 파편화, 노동조직의 무력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지난 90년대 노동과정론에 대한 연구가 중단된 이후, 노동진영은 현재까지 정보화로 인한 노동과정의 변화에 대해 전반적인 정책적 분석과 대응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첨단 기술을 이용한 노동자 감시에 대해서는 민주노총과 진보넷 등 제 사회단체가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을 구성하여 대응을 진행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 정보화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단적인 예로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이하 ERP)’에 대한 대응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스템은 그간 생산현장에서 개별적이고 부분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자동화와 정보화를 하나의 체계로 구현해 낸 시스템이다. 재무관리, 인사관리, 거래처관리, 재고관리, 생산관리 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현하게 됨에 따라, 생산·판매·관리 등 모든 측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생산·운영체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ERP를 전 사업장에 도입하게 하기 위해 ERP에 대한 홍보를 행정지침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를 운영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업고등학교에 ERP라는 과목을 신설하고, 각 대학교의 커리큘럼에도 삽입하게 했다. 그런데, 현재 노동진영에서는 ERP에 대한 대응은 말할 것도 없고, 연구도 되어있지 않아서, 그 개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에서는 지난 7월 처음으로 ‘자본과 국가의 정보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워크샵을 개최하기도 했다. 워크샵을 통해 신자유주의와 정보통신산업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ERP와 노동과정, 정보통신기술과 노동자 감시의 관계 등을 검토했다. 이에 대한 대응은 잠정적인 제안 정도의 수준에서 제출되었는데,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기술의 설계과정부터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참여설계 모델을 제도화해야 한다. 2)노동자 감시와 통제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기술의 경우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도입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3)전체 기술 내용 중 노동자 감시 통제가 포함된 경우에는 별도로 분류하여 대응한다. 이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기술과 그 영향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변화된 상황에 맞는 노동과정론의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로 정보통신은 노동운동진영에게 주어진 새로운 운동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제 와서 정보통신을 두고 ‘새로운’ 도구 운운하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주도해 가고 있는 자본에 비하면, 노동진영은 30년이 지난 이제서야 정보통신으로 인한 사회·경제적인 변화와 그 도구적 효용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선전·조직·교육·정책·연대 등 노동운동의 각 활동 분야에서 정보통신이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것을 위한 분야별 연구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인적·물적 투자도 전무한 상황이다. 전국 규모의 사회단체 중에 정보통신을 담당하는 인력이 1명뿐인 단체는 민주노총 밖에 없다는 사실도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소속 연맹들의 경우에도 정보통신을 담당하는 전임자가 있는 경우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뿐만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들도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는 예전 80년대의 노동운동 방식에 익숙한 세대가 현재 노동운동을 이끌어 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고, 실무적으로 과거경험에 따른 인원과 예산 배치를 해오는 관행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경직성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작년 촛불시위와 대선과정, 올해 노동운동에 대한 악의적인 여론 확산 등에서 나타난 인터넷의 효과에 크게 자극을 받아, 올해 하반기부터는 조직·선전·교육·문화 분야 등의 각 분야에서 정보통신의 활용하는 방안이 진지하기 논의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에서 제출한 촛불시위 등에 대한 분석 자료를 통해 각 부서들이 활발한 토론을 벌였으며, 하반기에는 그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보다는 단기적이고 실무적인 대안 토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이 모여 장기적인 관점을 수립하고, 변화된 상황에 맞는 노동운동의 변화를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되리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의 특성상 이러한 변화가 늦게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이런 과정을 통해 결코 가볍지 않게 한발한발 무겁게 다지며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03-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