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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참여에 기반한 공동체, 위키위키(WikiWiki)

By 2003/10/0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사이버 테마기행

오병일

흔히 인터넷을 분산형 네트워크, 열린 네트워크, 정보의 바다라고 부른다. 하지만, 인터넷의 기술적, 문화적 경향을 본다면 오히려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찾기 위해 이용하는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은 루트 서버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중적 구조로 되어 있다. 인터넷의 상업화가 진전되면서, 이미 가입한 이용자에게만 접근을 허용하는 폐쇄 네트워크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공간을 인정할 수 없는 정부의 의도를 기반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신뢰’가 무너져가고 있음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에 반기를 드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자유와 참여에 기반한 공동체, ‘위키위키’가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웹페이지들이 특정한 관리자에 의해서 운영이 되고, 이용자들은 게시판이나 이메일을 통해 서로 소통하게 된다. 하지만, 위키위키에는 특정한 운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웹페이지를 읽고, 또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이용자이며 운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위키위키의 특성은 어느 누구나(Anybody), 아무때나(Anytime), 어디에서건(Anywhere), 어느 것이든(Anything)지 수정할 수 있는 4A로 설명된다.

공동 창작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A씨가 ‘위키위키는 자유와 참여에 기반한 공동체 시스템이다’라는 웹페이지를 만든다. 며칠 후에 이 웹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A씨는 위키위키는 하와이어로 ‘빨리빨리’라는 뜻이라는 것, 위키위키는 워드 커닝엄(Ward Cunningham)이 94년에 개발했다는 것, 위키위키의 철학, 그리고 위키위키를 사용하는 사이트 등 관련 내용으로 풍부하게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시판이나 메일이 주로 시간순으로 축적되고, 게시물 양이 많아질수록 관련 내용을 찾기 힘든 반면에, 위키위키는 각 주제별로 페이지가 나눠지고, 관련 내용이 한 페이지에 축적되므로, 나중에 방문한 이용자는 그동안 체계적으로 축적된 지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키위키는 ‘진화’하는 시스템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위키위키의 기술적 특성이 아니라,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철학이다. 기존의 게시판은 ‘패스워드’ 시스템을 통해, 관리자나 글 쓴 사람만이 수정, 삭제할 수 있다. 하지만, 위키위키는 오히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글을 수정, 보완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며, 이러한 적극적 ‘참여’가 있을 때에만 위키위키는 생명력을 갖는다. 이런 면에서 위키위키는 그누/리눅스 운동과 비슷한 측면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은 누군가 악의적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삭제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행위가 수천명의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인식과 서로에 대한 ‘신뢰’를 전제한다. 어떤 면에서 이들은 위키위키를 통해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공동체의 운영은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 하에 집합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변화를 모색한다. 또한, 이것은 폐쇄된 공동체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인사이더(insider)나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중심주의(centralism)적 공간 구분에 反하는 탈중심주의(decentralism)적 개념’으로 사이트에 접하는 모든 이들을 ‘OnSider’라 칭한다.
또한, 위키위키는 지식과 지식의 만남을 모색한다. 위키위키 사이트를 방문해보면, 수많은 링크의 미로에서 헤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키위키는 하나의 지식이 다른 지식과 만나고, 하나의 지식에서 다른 지식이 가지를 치는, 지식의 네트워크이다. 이들은 개별적인 전문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잡종적 지식’을 모색한다.
이러한 위키위키의 철학은 노스모크(http://no-smok.net) 선언문에 잘 드러나 있다. 국내 최초의 위키위키 사이트인 노스모크는 현재 약 6000여 페이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위키위키가 어떠한 경우에나 적합하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대립이 심한 사이트에서 위키위키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혹은 특정한 단체나 개인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내용을 홈페이지로 출판하는 것도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이며, 메일링리스트나 게시판도 나름의 장점을 발전시키며 존속할 것이다. 현재까지 위키위키는 기술, 법, 과학 등 객관적 지식의 공유나 토론에 적합한 듯 보인다.

위키위키는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쉽지 않다. 우선 인터페이스부터가 그렇다. 체계적인 메뉴 배치나 화려한 그래픽이 아니라, 텍스트 위주의 페이지에 미로 같은 링크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위키위키의 운영방식이 ‘익숙하지 않음’에서 비롯된 듯 하다. 위키위키를 ‘저자동 고유연성’ 시스템이라 부르는데, 즉 기능은 단순하지만, 이용자의 활용 여하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최근의 기술적 경향-많은 기능을 갖추고, 모든 것들을 자동으로 처리해주지만, 이용자들은 주어진 기능 내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과 반대의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참여가 보장되어 있지만, 이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들은 참여를 주저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위키위키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적 툴(tool)이나, 인터넷 상의 또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200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