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감시월간네트워커

노동 감시는 위헌이다

By 2004/12/0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정책제언

단병호

세계 초일류를 지향한다는 삼성이 사망자를 포함한 전현직 직원들의 핸드폰을 불법 복제해 노동자들을 감시해 온 혐의가 제기되었다. 대구의 모 여객 소속 시내버스의 운전석 부근에서는 몰래카메라가 발견되었다. 국내 최대 통신기업 KT에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미행, 사진/동영상 촬영, 녹음, 위치 파악 등 각종 노동자 감시가 이루어졌으며, 노동자의 85%가 항상 감시의 불안을 느낀다는 증언이 잇달았다. 누가, 왜, 이러한 일들을 자행하는가? 버스 기사가 잠입 중인 산업스파이라도 되는가? 노동자들이 간첩이라도 되는가?

누가 감시를 하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사실인데도 삼성 SDI 경영자들을 증인채택하여 국정감사장에 부르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감시와 통제를 통해서 이득을 보지 않는다면,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그 비용과 열정을 감당하려 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그로부터 직접적인 이득을 보는 이, 바로 자본이다.

대구 시내버스 감시카메라 사건의 배후에는 노사간의 임금체불 분쟁이 있었고, KT 노동감시/탄압의 본질은 구조조정과 명예퇴직 강요였다. 삼성의 위치추적은 이미 숱하게 자행되어 왔던 삼성의 무노조 경영원칙의 2004년 판 연장공연에 다름 아니다. 이 모든 감시 활동의 본질은 노동권에 대해 인정하지 못 하겠다는 자본의 의지가 놓여 있다. 다시 말해,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①항을 인정하지 못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과 KT, 대구 시내버스 회사를 비롯한 대다수 한국의 자본들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는 일을 번듯하게 벌이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감시와 통제 – 노동권 확보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작업장 내외에서 일어나는 노동과 자본의 오래된 투쟁 중 하나는 바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에 대한 통제권의 싸움이었다. 오로지 노동자를 소진시켜 이윤하고 맞바꾸려하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노동시간을 최대한 길게, 노동시간 중에는 작업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는 통제가 필요했고,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노동자는 적당한 휴식과 재생산, 그리고 더 적은 작업 시간이 필요했다. 작업공정을 측정하는 스톱워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투쟁도, 단위 생산 물량을 놓고 벌이는 공식/비공식의 억압과 저항도, 특정한 사이트 차단을 놓고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기 싸움도 모두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 다툼의 연장이다.

작업장 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감시와 통제, 정보수집의 문제는 개인의 정보권을 보호하는 차원과 더불어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노동에 대한 노동자 본인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방향 속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작업장 감시에 대한 법안은 당연히 개인정보보호라는 일반론과 더불어 노동법 내부에서 특수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그것은 또한 헌법 제33조 ①항을 현실에서 실현해 내는 제도적 기초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작업장 통제권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투쟁 양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자본은 보안, 도난방지, 안전사고 예방, 업무 효율성 향상, 정보유출 차단 등의 명목으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행동 감시와 부당한 노동통제로 악용하는 데 사용하곤 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노동자가 자신에 대한 부당한 정보 수집을 거부할 권리에서부터, 노동자의 기본적인 존엄성과 프라이버시 침해에서 자유로울 권리, 나아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노동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지 못 하고 있다.

거의 유일한 노동감시 근절 법조항은 근로기준법 상의 ‘블랙리스트 금지’ 조항(‘취업방해의 금지’ 조항)이나 ‘기숙사 생활 보장’ 조항뿐이다. 반면 프랑스의 경우, 노동법이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명백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프라이버시 감독관제도를 두고 있고, 특히 호주의 경우 CCTV 사용제한에 관한 법률을 작업장 감시에 관한 법률로 확대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단체협약 사항으로 노동자의 개인정보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노동감시 근절을 위한 법제도에는 노동자 정보의 수집에 대한 엄격한 제한과 노동자 개인 정보의 보호에서부터, 수집된 정보를 특정 노동자를 차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엄중한 제한과 처벌, 각종 장비를 통한 작업장 내외에서의 감시 근절 및 그에 대한 엄중한 처벌, 그리고 작업장 감시 근절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 행정기관의 의무를 명시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본 의원은 대한민국 헌법이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행복 추구권, 노동권 등의 헌법 정신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비롯한 다양한 민생 법안과 진정한 노동권 보호를 위한 법안을 통해 현실화되어야 한다. 국제평화 유지와 침략전쟁 방지는 이라크 파병 철회에서부터 현실화되어야 한다. 노동자 감시 근절을 위한 법안 역시 그러한 맥락 위에 있다. 노동자 국회의원으로서,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그리고 노동운동을 시작하던 그 때의 마음을 다잡으면서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200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