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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확인 강박과 직접 서비스의 축소{/}원격민원서비스의 딜레마

By 2004/10/2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기획연재

장여경

동사무소 갈 일이 줄었다. 주민등록등본을 인터넷으로 직접 발급받는 서비스가 도입된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4월 20일부터 주민등록등초본·토지(임야)대장·건축물대장·장애인증명·농지원부등본·모자가정증명·국민기초생활수급자증명 등 주요 증명 서류에 대해 인터넷 발급을 시작하였다. 이용방법은 이렇다. 가까이에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와 프린터가 있는가? 대한민국 전자정부 홈페이지(http://egov.go.kr)에 접속하여 원하는 민원서류를 선택한다. 공인인증서로 본인임을 입증하고 신용카드나 휴대폰, 온라인 입금 등으로 수수료를 결재하면 바로 옆의 프린터에서 해당 서류가 출력되어 나온다. 얼마나 간편한가?

이와 같은 전자 증명의 실시로 최근 전자정부 이용이 크게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간 정보통신부와 금융감독원, 행정자치부 간에 혼선을 빚었던 공인인증서 발급 문제도 8월 23일로 정리되었다고 하니 대국민 원격 서비스의 기반이 갖추어진 것이다.

편리한 만큼 늘어난 신원확인

전자민원서비스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전자정부를 추진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어온 사업이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분야이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올해 말까지 전자 증명 대상을 15종으로 늘리고 2007년까지 이를 계속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민원서비스의 원격화는 편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신원확인 절차는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공공 서비스가 얼굴과 얼굴을 직접 맞댈 수 있는 지리적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을 당시엔 신분을 속이는 것이 힘들었다. 담당자가 얼굴과 상황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 서비스의 지리적 범위가 넓어지고 신원확인도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다른 사람의 신분을 흉내내는 정체성 절도(ID-theft)의 여지 역시 늘어났다. 따라서 민원 서비스의 원격화가 진행되면서 신원확인에 대한 강박이 함께 증가해 왔다. 본인임을 묻고 사진을 대조했던 정도에서 이제는 신체정보를 낱낱이 제공해야 하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인감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지문을 날인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체로 신분을 증명한다는 말은 자신을 입증할 수 있는 신체정보를 국가에 등록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굴욕적이기도 하지만 여러 연구자들이나 과학소설가들이 경고했듯 감시사회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앞으로는 지문 뿐 아니라 홍채, DNA 등 점점 더 다양한 생체정보를 국가에 등록해야 할 것이고 더욱 촘촘한 감시망이 생겨날 것이다.

문제는 보안을 계속 강화한다 하더라도 정체성 절도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격화 자체가 필연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증명만 되면 진짜보다 더 진짜인 행세를 할 수 있다.

편리해지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먼저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우리에게는 동사무소 들를 일이 왜 이다지도 많았던 것인가? 왜 나의 도장을 국가에 맡겨두고 번번이 이를 증명해야 하는가? 왜 나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기 위하여 포털 업체에 주민등록등본을 보내야 하는가? 왜 취업하는 데 주민등록을 증명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신원확인 과잉 국가이다. 과잉 신원확인은 모르는 사람을 의심하고 간첩으로 몰았던 불행한 과거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편리해진 서비스가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기지는 않을까.

작지만 강한 간접 서비스?

또한 대국민 서비스의 원격화는 대국민 직접 서비스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적인 ‘작지만 강한’ 정부들의 이상이다.

최근 논란을 빚은 노숙인정보종합시스템의 사례를 보자. 이 시스템은 아이엠에프 이후 줄어든 사회복지 인력을 대체하고 있다. 사람이 뛰어야 할 일을 컴퓨터로 대체하다 보니 이혼사유며 음주주량이며 병력 등 민감하고 시시콜콜한 개인정보까지 모두 입력했어야 했던 것이다. 직접 복지의 축소는 정보인권 침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거 은행에 현금자동지급기가 확산되면서 은행출납의 시간적, 지리적 편의성이 증가했다. 그러나 은행이 이 기계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현금자동지급기의 도입 이후 출납창구 인력은 많이 축소되었다. 국가의 대국민 공공 서비스가 이러한 원격화를 지향해서야 쓰겠는가.


 

원격 판단의 위험

가상인격과 실존인격의 불일치

중앙대학교 이인호 교수는 정보사회의 위험성은 가상인격이 실존인격을 규정짓는 데 있다고 경고한다. 이 교수는 최근 “개인정보의 이용과 보호의 제도적 균형의 모색”라는 글에서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이 디지털화된 개인정보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위험성은 개인정보의 △정확성 △완전성 △보안성 △목적적합성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개인정보의 정확성 문제란, 데이터베이스상의 개인정보가 실제와 어긋나는데도 이에 기초해 정책결정(정부부문)이나 경영결정(시장부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1996년에 교육부가 각 대학에 잘못된 수험생 정보를 제공한 적이 있었다. 또한 개인정보의 완전성 문제란, 개인 정보가 통합되거나 재분류되는 과정에서 출력된 개인정보가 정보주체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하드웨어의 오작동이나 조작자의 실수로 왜곡된 개인정보로 실존인격이 규정되는 것이다.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는 컴퓨터 결합 과정에서 복지수혜자들이 사기범으로 오인되어 법정에서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개인정보의 보안성 문제는 외부 또는 내부에 의한 불법적인 침입으로 개인정보가 누출되는 경우이다. 의료보험 관련자료를 담당자가 유출해 선거에 이용하는 등 셀 수 없는 사례가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정보의 목적적합성 문제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목적의 정당성이나 이차적 이용의 타당성에 관한 문제이다. 법률적 근거나 정보주체의 명확한 인식 없이 개인정보가 수집되거나 본래 수집목적을 벗어나 사용되는 것이다. 경찰이 주민등록등초본, 인감증명 등 서류발급신청인의 명단을 임의로 입수해 수배자 검거자료로 활용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국민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행정기관에서 수집한 개인정보를 경찰이 수사목적으로 전용하는 것이다.

* 이번 호로 기획연재 <전자정부 뜯어보기>를 마칩니다.

 

200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