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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문학을 넘어 사이버리즘으로{/}사이버문학의 미래?

By 2004/06/0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심층연재

이용욱

목차
-사이버문학이란?
-사이버문학의 과거형과 현재형
-사이버문학의 미래?

정보화사회는 컴퓨터라는 혁명적인 도구를 통해 물질적 기반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의식적 지반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창출되고 지지되며 발전하는 문화의 변화는 결국 상상력을 모태로 삼는 예술 역시 변화시킬 것이며, 특히 일상이라는 물질적 기반과 주체라는 의식적 기반 위에 성립하는 문학은 정보화사회와 컴퓨터혁명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컴퓨터는 인류가 만들어내고 선택한 정보화사회의 글쓰기 저작 도구이며, 가상 공간은 그 자체가 (문학의) 소통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시대와 밀접하지 않고 시대를 사유하지 않는 문학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활자매체로 구현된 텍스트를 매개로 하여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일방향 소통구조를 지녔던 독서패러다임이 가상 공간을 모태로 하여 쌍방향 소통구조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학행위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컴퓨터와 인터넷의 멀티미디어적 기능을 이용한 다양한 형식 실험이 가능해졌다. 문학은 문자의 발명과 인쇄물의 발명 이후 세 번째로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정보화사회라는 변화된 사회 패러다임 안에서 문학이 어떻게 자기 갱신력을 획득하여 시대와 조응할 것인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부족한 상태이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는데, 먼저 평자들이 컴퓨터와 가상 공간이 구체적으로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가시적인 현상과 구체적인 성과물들이 드러나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객관적인 학문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기에 미흡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문학의 몸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변화의 의의와 미학적 가치 판단을 내려줄 수 있는 이론 틀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이론은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법론을 제시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에 선행하여 작가와 독자의 시각을 넓혀주고 새로운 문학 흐름을 제시하는 선도적인 역할도 아울러 수행하여야 한다. 가시적인 현상과 구체적인 성과물이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문학이론의 선도적인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치밀한 문학 이론은 추상적인 문학의 실천적인 맥락을 구체적인 성과물로 발전시키는 연결 고리로 기능 할 수 있다. 정보화사회의 문학을 기존의 문학 패러다임으로 해석해 내느냐, 아니면 새로운 문학패러다임의 정립을 통해 선도해 나가느냐의 선택에 있어, 무정형적이며 진행 중인 현 단계의 수준은 선택의 폭을 좁혀준다. 무정형성에 질서와 규칙을 부여하여 진행형을 완결형으로 선도해나가는 작업이 이루어져야하는 까닭은 문학의 몸을 변화하고 있듯이 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이버리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오해는 통신문학의 또 다른 이름이거나 포괄적인 범주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사이버리즘과 통신문학은 분명한 변별점을 가지고 있다. 통신문학이 가상 공간과 문학적 글쓰기가 만나 만들어내고 있는 성과물을 지시한다면, 사이버리즘은 정보화사회라는 변화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문학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우리의 의식적 실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통신문학이 명사형이라면, 사이버리즘은 동사형인 것이다. 사이버리즘의 미학적 특징으로 작가 독자의 전통적인 역할 분담의 해체, 가상 현실까지도 담아내고자 하는 상상력의 확장과 비물질적 상상력으로의 형질 변화, 인터넷이라는 소통공간과 컴퓨터라는 저작도구가 만나 창출해낸 파격적인 문학 형식(하이퍼텍스트나 인터랙티브 픽션)의 등장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런 특징은 모두 우리의 의식적인 문학 실천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한 현상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정보화사회’라는 시대정신과 ‘가상 공간’이라는 조건이다. 통신문학이 소통 공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공간 지시적인 용어라면, 사이버리즘은 시대와 조응하고자 하는 세계관과 창작 방법론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새로운 문학 패러다임의 이름인 것이다.

두 번째 오해는 사이버리즘의 위치와 전망에 있어 결국 기존 문학 패러다임 안으로 편입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가상 공간 안에서 창작되어지고 있는 문학 텍스트들의 상상력이 본격문학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 오해는 사이버리즘을 명사형으로 바라보는 첫 번째 오해의 연장선상에서 문학 성과물들의 질적인 문제에 주목한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이버리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완성된 텍스트가 아니라 그 텍스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누구든 글을 올릴 수 있는 열린 광장에서 개별 주체들이 어떻게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해 나가며, 텍스트를 사이에 두고 작가와 독자의 긴장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가라는 지점에서부터 사이버리즘의 미적 특수성은 출발한다. 가상 공간 독자들이 원하는 서사 문법이 현실 공간의 문법과 어떻게 다르며, 작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내면화시키는가에 주목해 본다면 사이버리즘과 본격문학은 전혀 상이한 지반 위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이버리즘의 질적인 부분은 사이버리즘이 동사형에서 명사형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그 이후에 논의하여야 할 문제이다.

기술형 문학형식으로 드러나는 사이버리즘

마지막 오해는 사이버리즘이 ‘하이퍼텍스트’나 ‘인터랙티브 픽션’같은 기술형 문학 형식을 통해서만이 가장 확실하게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데, 이런 형식 실험들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사이버리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이다. 물론 기술형 문학 형식은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으며, 아직은 해결해야할 기술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문학을 단순히 평면적인 활자 텍스트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며, 기술형 문학 형식은 형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적 문학 행위의 영역 안에 놓여있는 실천의 문제이다. 기술형(技術型) 문학 형식은 텍스트의 표현 방식이 활자에서 비트로, 평면에서 입체로, 상상력 중심에서 기술력 중심으로 전이된 새로운 형태의 텍스트를 일컫는다.

인간의 상상력과 컴퓨터의 기술력이 결합된 이 파격적인 문학 형식은 기왕의 문학에서 중요시되던 몇몇 질서를 무시하거나 해체시킨다. 그 동안 문학은 작가 개인의 독창적인 작업이었고 또 응당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어왔지만, 기술형 문학 형식은 작가와 기술자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가능해질 수 있으므로 텍스트에 대한 작가의 장악력이 상당부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인터렉티브 픽션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전체 과정을 총괄 지휘하는 디렉터의 역할이다. 디렉터는 텍스트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음악과 동영상, 나아가 다른 텍스트와의 링크화까지를 포괄하는 일련의 과정을 책임지며, 이때 작가는 한 파트를 담당할 뿐이다.

플롯과 스토리의 진행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관념 역시 기술형 문학 형식에서는 전복된다. 전통적인 문학 형식에서 플롯과 스토리는 작가에 의해 일관성과 통일성, 완결성까지 이미 갖춘 채 독자들과 만난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 같은 기술형 문학 형식은 ‘단순형 플롯’의 곳곳에 마디를 만들어 그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또 하나의 플롯을 준비해둘 수 있다. 플롯을 만들어내는 것은 상상력이지만, 준비해두는 것은 기술력이다.

평면적인 활자 텍스트로는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 다양한 마디들을 만들고 각각의 마디마다 또 다른 이야기를 연결하는 ‘미로형 플롯’을 구현할 수 없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겨가며 페이지 번호에 따라 텍스트를 읽어 가는 전통적인 독서 방식으로는 ‘미로형 플롯’의 독특한 미적 체험을 실감할 수 없다. 그러나 WWW(월드 와이드 웹) 방식으로 구현된 인터넷은 그 자체가 수많은 마디로 이루어진 거대한 하이퍼텍스트이며, 우리는 가볍게 마우스 버튼을 클릭함으로써 아주 손쉽게 텍스트에 마련된 마디를 찾아 또 다른 마디로 이동할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기술력이 예술의 상상력을 선도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형 문학 형식은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소수의 전위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인터넷상에서 실험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컴퓨터라는 저작 도구와 인터넷이라는 일상 공간이 만나 이 새로운 문학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사이버리즘은 동사형이며, 기술형 문학 형식은 사이버리즘이 새로운 문학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 실험하고 있는 다양한 시도 중의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하이퍼 픽션’이나 ‘인터랙티브 픽션’과 같이 새로운 문학으로 다가가고자 사이버리즘이 시도하고 있는 실천의 한 과정이 전체로 오인되는 것 역시 사이버리즘을 명사형으로 바라본데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사이버리즘의 리얼리티가 특정 공간에서만 확보되고 이해되어질 수 있다는 편견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져야 하며, 각각의 공간에서 정체성을 획득하고 있는 구성원들 역시 개별적인 존재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가상 공간은 현실공간의 거울이거나 그 뒷면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또 하나의 일상(日常)이지 결코 분리된 세계가 아니다. 또 하나의 일상에서 발현되고 있는 문학에 대해 기존의 문학과 태생이 다르다고 해서 미학적인 가치 판단을 간과하거나, 그 문학성 자체에 대해 회의한다면 그것은 문학이 근본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상상력의 예술이라는 부분을 간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이행되어 가는 과도기에 서 있다. 정보화사회가 진행되어 갈수록 가상 공간과 현실공간의 경계가 희미해져 갈 것임에 분명하다.

사이버리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본격문학이 가졌던 기왕의 규범들과 질서를 해체시키고 정보화시대라는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에 탄력 있게 적응하고자 하는 문학의 자기 갱신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리즘은 일종의 과도기적 용어일 수 있다. 자기 갱신력을 획득하고 동사형에서 명사형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을 때, 사이버리즘은 전혀 다른 용어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고 그 용어는 자본주의 시대의 문학에 비해 형식이나 내용, 상상력, 문학 주체간의 역학 관계가 획득한 전혀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보여줄 것이다.

“문학은 문학일 수 밖에 없다”

문학은 인류의 역사와 그 쾌를 같이 해 왔고, 앞으로도 또한 그럴 것이다. 사이버리즘은 문학의 새로운 시도이며, 도전이며, 가능성이다. ‘시도’, ‘도전’, ‘가능성’이라는 수식어 모두 그 좌표는 완결된 그 무엇이 아니라 완결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위치해 있다. 그 과정에 편견과 오해는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그리고 반드시 극복해야할 장애이다. 필자가 제기한 사이버문학론은, 재현해야할 세계가 변함으로써 당연히 그것을 문학 텍스트 안에 끌어들일 상상력 또한 형질 변화를 수반하여야 한다는 명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텍스트의 형질 변화가 문학의 본령(本領)까지 변화시킬 수는 없다. 종이 책에 담기든, 디스켓에 담기든 시디롬에 담기든 문학은 문학일 수밖에 없다. 이때 “문학은 문학일 수밖에 없다”라는 문장은, 현실을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텍스트의 형질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소를 갖고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전문학의 시대에서 점토판, 양피지, 종이, 비트로 문학을 담아내는 매체는 변해왔지만 궁극적으로 문학이 서사예술로서 담당해야할 역할까지 변화하지는 않았다.

정보화시대 독서 주체들의 감수성에 가장 잘 호소할 수 있는 문학은 혁명적인 글쓰기 저작도구의 발전이 가져다준 텍스트의 형질에 좌우되기 보다는, 오히려 주체들의 감수성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작가의 상상력에 한층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김영하, 송경아, 김설 등 최근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있는 젊은 소설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비록 종이 책에 담겨 출판되었지만, 정보화시대에 변화한 작가의 상상력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시되고 있음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문학하기의 한 방법론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문학 그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문학은 기술(skill)이 아니라 예술(art)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 상에 올려져있는 하이퍼텍스트들을 접해보면, 단순히 형식적인 시도 이상의 문학적 감동을 주는 텍스트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비선형적이며 강한 상호텍스트성, 입체적 이미지와 가변적인 다양한 결말이 가능하다는 특징은 분명 하이퍼텍스트가 문학의 새로운 형식적 가능성을 열어놓은 시도임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지만, 그것만 가지고 문학이라고 명명하기엔 부족하다. 하이퍼텍스트가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의식적 상상력이 개입해야만 하며, 그것이 독자의 감수성과 만나 미학적 가치를 획득해야 한다. 물론 문학적 감동이라는 개념이 정보화시대에 그 형질을 달리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동은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감수성이 서로 교호하면서 만들어내는 것이지 결코 텍스트의 형질 변화로 이끌어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이버리즘은 문학하기의 다양한 즐거움 중 하나

하이퍼 픽션이나 인터랙티브 픽션은 전자매체 시대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문학하기의 다양한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그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즐거움에만 열중한다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가치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현실을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문학이 예술임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할 때, 시공간을 초월해 영원히 작가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리고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작가가 놓쳐서는 안될 테세우스의 실은 현실이라는 미궁을 빠져 나오기 위한 의식적 상상력이지 미궁을 포장하는 형식적 기법은 결코 아닌 것이다.

단순히 새로운 매체와 저작 도구를 통한 새로운 텍스트 짜기에 주목할 때 그것은 파격적인 시도나 형식 실험 정도의 의미밖에는 가질 수 없다. 문제는 “형식의 내용에로의 넘쳐흐름, 내용의 형식에로의 넘쳐흐름”이며, 따라서 정보화시대에도 문학을 움직이는 추진축은 형식과 내용을 탁월하게 연결해줄 수 있는 의식적 상상력이 될 것이다.

문자 매체에 기대고 있던 다양한 시청각 이미지에 기대고 있던 매질의 차이는 문학이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있음으로 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텍스트의 형질 변화가 아니라 – 그 변화는 문학의 고유한 속성임으로 – 그것이 담아내고 있는 상상력이 전 시대와 어떤 변별점을 갖고 있는가를 규명해내는 작업이다. 우리는 로망스(romance)와 소설(novel)의 차이를 각각의 서사 양식이 재현하고 있는 현실과 상상력, 작가의식의 변화로 이야기하지 매질의 차이로 접근하지 않는다.

예술 제장르 중에서 문학만이 문자 매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회화, 조각, 무용, 음악 등 여타 장르들은 이미 장르적 속성상 시각이나 청각적 이미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시청각이미지와 서사가 결합된 독특한 형식이 사이버시대의 텍스트 짜기 방식이라면 그것은 문학에만 국한될 뿐이다. 결국 텍스트의 질료나 형식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문학은 상상력의 범주 안에서만 그 예술적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정보화사회는 서사체의 창작 방법론과 형식, 독서 경험의 메카니즘을 파격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서사 연구 방법론으로는 새로운 서사체에 대한 학적인 접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서사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그것을 아우를 수 있는 총체적인 문학 패러다임의 성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정보화사회의 문학을 맥락화 할 수 있는 문학 패러다임이 아직 정립되지 못한 시점에서 사이버리즘에 대한 학적인 접근은 국문학계의 당면 과제이다. 따라서 사이버리즘을 구체화시키고, 나아가 디지털 내러티브라는 새로운 서사 방식을 문학에 접목시켜 그 이론적 토태를 마련하는 일이 앞으로 사이버문학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정보화사회가 마련해 준 또 하나의 일상인 가상 공간이 주요한 의사소통 공간으로 부상하면서 문학의 전통적 행위 구조와 서사성,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에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다. 사이버리즘은 정보화사회 새로운 문학 패러다임이다. 컴퓨터와 가상 공간이라는 새로운 의미소들이 문학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주체’와 ‘리얼리티’, ‘소통 구조’로 나누어 살펴보고, 그 변별적 자질들을 사이버리즘이라는 문학 패러다임으로 통합시켜야 한다. 사이버리즘에 대한 연구는 궁극적으로는 정보화사회 문학의 미래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문자언어 시대에서 전자언어 시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문학 연구에 새로운 방향 설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사이버리즘의 학문적 실천태로써 정보화사회의 새로운 서사체로 부상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 인터랙티브픽션, 그리고 게임서사물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디지털 내러티브’라는 개념으로 분석해 보는 작업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이런 학적 작업을 통해 사이버리즘은 문학 연구의 다양성과 시대 적응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용욱씨는 <사이버문학의 도전>(토마토, 1996)을 출간한 이후, 여러 지면을 통해 사이버문학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문학 계간지 <버전업>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웹진 <사이버리즘>(http://www.cyberism.co.kr)을 운영하고 있다.

200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