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감청,
서상기 의원이라면 받으시겠어요?

지난 1월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휴대전화 감청하자면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법, 낯설지 않군요. 17대 때도 18대 때도 국정원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었거든요. 2월 국정원 개혁특위에서 통과시키자는 거였는데, '개혁특위'가 국정원 숙원사업 풀어주는 곳이었던가요?

휴대전화 감청은 핑계입니다. 지금 법으로도 휴대전화 감청할 수 있거든요. 법안의 진짜 목적은 국내 모든 통신사 장비에 감청 장비를 붙이는 데 있습니다. 법안은 이동통신사 뿐 아니라 인터넷, 혹은 이름모를 미래의 통신수단까지 감청 장비를 붙이도록 의무화하였습니다. 국정원이 들여다볼 수 없는 통신수단은 앞으로 영업을 못하는 거죠. 서상기 의원님이나 모든 통신수단을 국정원에 헌납하시지요.

쟁점 1. 서상기 법안, 무슨 내용인가?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휴대전화 감청하자면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 법안에 반대하는 세력은 "반국가 세력"이라고 주장하였다죠. 법안의 주요 부분은 17대, 18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무슨 내용인가요?

같은 내용의 법안이 몇년째 계속 올라오는 것은 국정원의 숙원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주요 명분은 휴대전화 감청이지만 사실 이 법안에는 "휴대전화 감청"이라는 조항이 없습니다. 현행 통비법도 휴대전화 감청을 못하게 막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휴대전화 감청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 모든 통신사에 국정원이 감청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데 있습니다. ※ 깨알같지만, 이 법안이 발의된 1월 3일에는 서상기 의원이 국내에 없었다고 합니다. 국내 법안은 대표발의 의원이 없어도 발의가 가능한 모양입니다.

국내 모든 통신사에요? 그럼 인터넷도 해당되나요?

서상기 의원안 제15조의2 제2항

전화서비스를 제공하는 전기통신사업자,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기통신사업자는 이 법에 따른 검사ㆍ사법경찰관 또는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통신제한조치 집행에 필요한 장비ㆍ시설ㆍ기술 및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네, 바로 그 점이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고 국정원이 주장하는 다른 나라와 가장 다른 점입니다. 유무선 전화 뿐 아니라 그밖의 통신사, 즉 인터넷 뿐 아니라 미래에 등장할 통신수단들에도 감청설비를 갖추도록 되어 있어요. 그 범위는 국회가 정하는 법률이 아니라 국정원이 언제든지 손댈 수 있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구요.

헐-_- 그런데 현행 법으로도 휴대전화 감청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면 왜 지금은 못하는 건가요?

출처 - 뉴스타파

국정원의 주장은 장비가 없어서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정원은 그간 휴대전화 감청을 해 왔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1월부터 이탈리아에서 아날로그 이동통신 감청 장비를 수입해서 1999년 12월까지 사용했습니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김대중 정부의 디지털 이동통신 감청이었습니다.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도청이죠. 1998년부터 "CDMA 휴대폰은 기술적으로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정부가 사실은 뒤에서 감청 장비를 직접 개발해서 도청해 왔다는 사실이 발각되었습니다.

그 발각 과정도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중앙일보의 홍석현 회장이 삼성그룹의 이학수 부회장에게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을 보고하는 내용의 도청 테이프가 언론에 폭로되었는데요, 이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과 뇌물 검사 명단을 발표한 노회찬 의원은 처벌받았습니다. 반면 '떡값 검사'는 물론이고 이건희 회장,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홍석현 당시 회장 등 관련자들은 무혐의 처분되었습니다. 이때 폭로된 도청 테이프를 만든 사람들이 바로 김영삼 정부 당시 비밀도청을 전담하는 국정원(전 안기부) 미림팀이었습니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이 이렇게 드러난 것이지요. 미림팀은 대화 도청, 유선전화를 도청했을 뿐 아니라 무선 전화, 즉 이동통신도 오랫동안 감청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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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었습니다

국정원은 1998년부터 예산 14억원(R2)+19억원(CAS)을 들여 이동식(CAS) 감청장비 뿐 아니라 이동통신사 장비에 부착하는 고정식(R2) 장비도 개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국회에서는 휴대전화 감청하고 있지 않다고 대놓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죠.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이날 이후로 휴대전화 감청은 중단되었습니다. 자기들이 한 짓 때문에 국민들 앞에 안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국정원이 정말 휴대전화 감청을 못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런 거짓말의 이력 때문입니다.

쟁점 2. 이통사 장비에 국정원 감청 설비를 붙여도 될까?

납치나 유괴 같은 흉악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건 사실이니까 감청은 필요악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통신제한조치(감청) 통계
연도 검찰 경찰 국정원 군수사기관 합계 국정원비율
2000 386 1320 1575 261 3542 44.5%
2001 362 1289 2412 308 4371 55.2%
2002 208 627 2234 187 3256 68.6%
2003 165 648 5424 203 6440 84.2%
2004 106 554 8201 289 9150 89.6%
2005 100 241 8082 112 8535 94.7%
2006 43 131 8440 51 8665 97.4%
2007 41 95 8628 39 8803 98%
2008 24 94 8867 19 9004 98.5%
2009 9 163 9278 47 9497 97.7%
2010 4 227 8391 48 8670 96.8%
2011 3 263 6840 61 7167 95.4%
2012 0 139 5928 20 6087 97.4%
출처: 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미래창조과학부

범죄수사에 감청이 꼭 필요할 경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감청의 98%를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국정원이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국정원이 일반 범죄수사를 담당하지는 않지요.

이 모든 감청이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요? 국민 입장에서는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더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게시판에 대통령 욕하는 글 하나 올린 정도 갖고도 혹시 감청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국민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죠. 국가가 국민을 겁박하고 국가정보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한다면 민주국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본적 인권을 침해당하는 거죠.

앞서 국정원이 휴대전화 감청을 하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이 통계에 휴대전화 감청은 들어 있지 않은 것가요?

'간접감청' 통계의 한계가 있습니다. 감청은 크게 국정원이 직접 집행하는 '직접감청'과 통신사를 통해 집행하는 '간접감청'으로 나뉩니다. 이 통계는 미래창조과학부가 통신사를 통해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통신사를 통해 이루어진 간접감청만을 나타냅니다. 직접감청 통계는 아무도 본 적이 없죠. 국정원이 정말로 이동통신사 협조가 없어서 감청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미국 NSA처럼 사실은 통신사들을 겁박하거나 해킹해서 몰래 감청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실제로 감청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새로운 감청 권한을 묻지마 허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이동통신사들이 법 없이는 협조를 안 한다면서요?

지금 휴대전화 감청이 그렇다는 것이지 국정원은 감청을 위해 통신사들 협조를 꾸준히 받아 왔습니다.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선전화 감청이 그렇고, 인터넷 메일이나 회선 감청이 그렇습니다.

인터넷 패킷 감청 같은 경우에도 자기들 장비 31대(2009년 당시)를 가지고 인터넷 회선 사업자들 협조 속에서 감청을 실시해 왔어요. 간접감청 한다면서 자기들 장비를 이동통신사 장비에 붙여놓고 국정원이 맘대로 조작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한 거지요. 일단 과거 R2 가 그런 장비였어요.

R2라는 장비는 부착식인데 이동통신사의 핵심 교환기에 붙여 그 구간을 통과하는 통화를 도청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은 R2에 정치ㆍ언론ㆍ경제ㆍ공직ㆍ시민사회단체ㆍ노동조합 간부 등 주요인사 1,800여 명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 놓고 24시간 이들의 통화를 도청했다고 합니다. 교환기가 소재한 전화국의 협조를 위해 국정원은 월 5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하여 광화문 등 6개 주요 전화국 전송실장에게 매월 50만원씩, 담당 실무자에게 매월 30만원씩 지급했다고 해요. 국정원의 권력이 워낙 크다보니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아무튼 국정원은 최근 사용되는 휴대전화의 경우에만 자기들이 장비를 개발할 수도, 수입할 수도, 협조받을 수도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기술력이 과거만큼도 안된다는 말인데, 솔직히 믿을 수 없어요. 다양한 스마트폰 도청 기술이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현황이거든요.

그래도 직접 감청을 하는 것보다는 이통통신사를 통하는 것이 더 투명하지 않을까요?

이동통신사를 통한 간접감청의 외양을 띄더라도 이동통신사와 같은 제3자가 국정원의 감청에 입회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번에 발의된 서상기 법안이 17대, 18대와 가장 다른 점은 간접감청 의무화와 관련한 조항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 발의된 법안들도 간접감청 의무화를 해놓고 국정원과 군을 예외로 삼아 논란이 일긴 했죠. 그래도 아예 없는 것은 간접감청 뿐 아니라 직접감청도 예외 없이 하겠다는 선포나 다름이 없는 것이지요. 간접감청에 필요한 통신사는 통신사대로 통솔하고 필요하면 직접감청도 할 수 있는 겁니다.

통신비밀보호법안들 비교
구분 17대(법사위대안) 18대(이한성안) 19대(서상기안)
간접감청 의무화 체신관서 그 밖의 관련기관 등(이하 “통신기관등”이라 한다)에 통신제한조치의 집행을 위탁하거나 집행에 관한 협조를 요청하여야 한다. 체신관서 그 밖의 관련기관 등(이하 “통신기관등”이라 한다)에 통신제한조치의 집행을 위탁하거나 집행에 관한 협조를 요청하여야 한다. 아예 없음
예외 국정원, 군 예외 국정원, 군 예외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은 이동통신사를 믿지 못합니다. 개인정보가 줄줄 새 왔거든요. 또 이용자들 패킷을 실시간 감청해서 보이스톡을 차단하기도 하고 맞춤광고 영업을 하겠다고 했던 통신사들입니다. 심지어 자기들 장비니까 노동자들 통화내역을 거리낌없이 뒤지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쟁점 3. 휴대전화 감청 필요한 것 아닌가?

그래도 유선전화, 인터넷 전화 다 감청하는데 휴대전화만 안 되나요?

이 기기는 플래쉬 미디어를 지원하지 않네요!

출처: imbc

그런 점은 있습니다. 그런데 왜 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한 게 아닌데 이 땅에서 휴대전화 감청이 중지되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안기부 X파일 사건이 불거지자 국정원은 기존에 개발했던 장비를 경기도 어느 곳에 폐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정보기관에 대한 불신이 또다르게 한창 불거진 때 오히려 감청권한을 확대해 달라니 뻔뻔하단 거죠. 무엇보다 국정원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서상기 법안은 국정원 개혁특위에서 논의하는 거죠?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여야 합의 사항에 처음에 포함되어 있던 내용은 아니구요. 사실 처음 개혁특위가 만들어졌을 때는 반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특검 요구가 높았던 때였죠. 그래도 입법부답게 개혁특위를 만들자는 거였고 2월 28일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하기로 했었습니다. 목표는 선거에 개입하고 국민을 상대로 인터넷 선거 공작을 벌인 국정원을 뜯어 고치는 것이었죠. 그런데 지금 상황이 참 황당한 거죠. 국정원 개혁은 커녕 국정원의 감청 권한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니 말예요. 이런 식이면 국정원 개혁특위가 끝난 후에도 여당인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계속 시도할 것 같습니다.

국정원 개혁의 본격적인 내용이라면 어떤 게 있나요?

세계 여러나라 대부분은 비밀정보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국민들 앞에 비밀정보기관을 가진다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지 않고, 선출된 민주 권력을 정보기관이 압도해 가는 상황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 정보기관이 국민을 감시하고 있으니 우리도 국민을 감시하자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미국 정보기관이 자기나라 국민들 뿐 아니라 전세계 인터넷과 전화를 감시하고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똑같은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일을 중지시키는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 정보기관에는 더 심한 문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 수사권과 비밀정보권한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사도 하고 정보도 수집하면 정보기관의 능력이 많아지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비밀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가지는 것을 우리는 비밀경찰이라고 부릅니다. 나찌나 슈타지 등 오랫동안 비밀경찰에 의한 인권 침해를 목격해온 민주국가들에서는 이런 조직 형태를 되도록 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국민에게 위험하기 때문이죠. 비밀정보기관이 수사권을 행사하게 되면 비밀수사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많은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권이 발달하면서 수사는 공개 수사가 원칙이고 재판도 공개 재판이 원칙이 되었는데 비밀경찰에는 그 예외가 생기는 겁니다. 무엇보다 수사는 정확한 혐의를 토대로 최소한의 인권을 침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면 정보기관의 임무는 광범위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서 수사권까지 가지면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밀로요.

감청 문제도 그럴까요?

당연히 그렇죠. 예를 들어 우리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범죄수사를 위한 감청은 지방법원에서 허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국가안보를 위한 감청은 고등법원에서 허가를 받습니다. 이렇게 구분해 놓고 국가안보를 위한, 즉 정보수집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감청의 요건을 더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후자의 오남용 소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정원은 한 조직입니다. 같은 조직 안에서 이 조항대로 구분이 잘 지켜지고 오남용이 안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요? 실제로 과거 국정원이 기자들 통화내역을 조회하여 물의를 빚었을 때 이를 담당했던 부서가 범죄수사와 무관한 대테러국이라 의혹을 산 적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정보수집을 위한 내국인 감청과 외국인 감청도 같은 방식으로 혼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국인 감청은 그나마 법원 영장을 받지만, 외국인이라고 하면 영장도 없이 대통령 승인만으로 감청이 가능합니다. 영장 없이 이루어지는 외국인 감청의 실태가 국민 앞에 공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전체적인 현황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경우에 외국인을 감청을 했는지, 정말 외국인만 감청했는지, 등등 말이죠.

결론적으로 휴대전화 감청, 어떻게 할까요?

휴대전화 감청, 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안 됩니다. 국정원을 개혁하기 전에는 안 됩니다. 일상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선거에 개입하고 국민을 상대로 공작을 벌이는 국가정보기관을 믿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국정원은 모든 기능을 한데 가진 올인원 국가정보기관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이에 대한 개혁 없이 감청 권한을 확대하는 건 국민들에게 심각한 인권침해를 가져올 겁니다. 아무런 죄없이 우리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이, 문자내용이, 인터넷 이용내용이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 감청되고 빅데이터로 분석되어 프로파일링되고 대대손손 보관된다면 어떠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