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정보사회에서의 정부의 역할


http://FreeOnline.or.kr 시민공청회(2000.9.5) 발제문 / 전체 자료집 내려받기

1. "통신질서확립법"과 사회적 의견수렴

정통부가 입법고시 예정으로 있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은 전혀 개정법률안이 아니다. 원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 관한 법률"은 부칙포함 총 35개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현재 개정법률안으로 제시되어 있는 법안은 총 91개 조항으로서 원래 법안의 세배에 달하는 방대한 법률안이다. 따라서 사실상 원래 법안의 개정안이라고 하기 보다는 정보통신부의 고유업무영역을 새롭게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안으로서 정보통신부법이라고 부를 만한 법이다. 실제로 이 법에는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망 이용활성화, 개인정보보호, 건전한 통신질서확립, 정보통신망의 안전성확보, 이러한 일들을 위한 국제협력에 이르기까지 통신공간에서 생겨나는 일체의 사회정책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정보통신부가 어떠한 정책수단을 갖고 어떻게 관련업무들을 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문제지적을 하기 전에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이렇게 방대한 내용의 법안이, 그리고 수없이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법안이 거의 전혀 관련 이해당사자들이나 관심집단들의 충분한 사전 의견수렴의 절차없이 - 혹은 있었다 하더라도 법안을 만들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비용효율적이며 형식적, 행정편의적인 절차를 거쳐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지난 7월 20일 공청회가 있기 전까지 이 법안에 대해서는 심지어 언론조차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공술인들 조차도 불과 공청회 며칠전에야 법안을 받고 토론준비를 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차제에 이같은 입법절차상의 문제점에 대해서 몇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대개 현재 정부가 법안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정부의 총괄적인 사업방향과 관련하여 부처별 중점추진사업을 먼저 결정하고 이를 부처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 - 정통부의 경우 보통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 이나 산하기구 - 이번의 경우 정보보호센터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 에서, 혹은 몇몇 전문가들에게 프로젝트를 주어 관련 연구와 정책을 수립토록 한뒤 이를 법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몇몇 법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고, 관계부처 의견수렴을 거쳐 입법고시를 하기전에 대단히 형식적이거나 요식적인 공청회를 거치는 과정을 밟는다. 이번 "통신질서확립법"의 경우에도 그러한 과정을 전형적으로 밟았다.

사실 사안이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이미 기존에 있던 제도를 큰 골격의 변화없이 보다 효율성 등을 높이기 위해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경우라면 이같은 입법절차가 그다지 큰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 상당히 많은 이견들이 있을 수 있고, 관련 이해당사자들이나 정부부처간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라면 이러한 절차만으로는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고 하기 어렵다. 이번 "통신질서확립법"의 경우에도 바로 그러한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표출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법안에는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크게 보면 개인정보보호, 인터넷등급제, 인터넷주소자원관리문제 등 세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직 상세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개인정보보호(제23조 - 제32조)의 경우 정보보호센터에서 대부분의 준비작업을 맡았으며 인터넷 등급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준비작업을 각각 맡아서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알기로는 정보보호센터는 정보통신사업자들이나 재경부산하 소비자보호원측의 의견은 청취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민간소비자단체들의 의견은 거의 수렴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현재의 개정법안을 보면 절대적으로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이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인수합병시 종전 법안에서는 개인정보의 이전이 불가능했으나 이번 개정법안에서는 업체가 이용자에게 이전을 공지하면 개인정보를 이전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또한 종전 법안에서는 개인정보의 수집목적이 달성되었으면 "지체없이" 이를 폐기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개정법안에서 "이용자의 동의를 받은 경우"에는 영구히 파기하지 않아도 무방하도록 되어 있어 절대적으로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만약 법이 이런 식으로 개정되면 대개 업체들은 개인정보 수집단계에서 포괄적으로 약관 등에서 이를 규정하여 이용자의 동의를 얻는 방식을 취하게 되므로 사실상 개인정보보호 측면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조항인데도 법안은 이렇게 되어 있다. 또한 청소년보호법에서는 미성년자를 19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에서는 14세 미만의 아동의 경우에 한정하여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세 미만의 청소년까지 사실상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전자상거래 등에서도 청소년들의 거래가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는데도 오직 사업자의 이해관계만 고려하여 법안은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터넷 등급제(제47조 - 제52조)의 경우 아마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통해 여러 민간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왜 그 위원회가 의견수렴을 위해 민간단체들의 참여를 요청할 때에 왜 대부분의 주요한 여성단체들이 참여를 거부하거나 빠질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또 어떤 단체의 경우는 그러한 의견수렴과정에 참여하고는 있었지만 제도에 대해서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은 고사하고 토론도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고 겨우 등급기준을 토론하고 있는 단계에서 이 법안이 공표되었는데 정보통신부가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된 의견수렴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인터넷 주소자원의 관리감독에 관한 내용(제14조 - 제17조)은 원래 공청회때 제시되었던 안에서는 도메인이름분쟁조정기구에 대한 조항만 있었는데 공청회때 왜 이 조항이 들어가는지 전혀 법률적 구성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사실상 삭제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것이 2차 초안에서는 1개 조항에서 4개 조항으로 확대되었다. 이 부분에 해당되는 내용은 현재 민간재단법인이며 도메인등록과 관련정책을 수립, 시행하고 있는 한국인터넷정보센타의 업무영역과 중첩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메인분쟁조정기구 설립안이나 주소자원에 대한 정부의 정책수립 및 관리/감독권한에 관한 내용은 현재 한국인터넷정보센타에서 정관상 인터넷 주소정책을 제시하게 되어있는 주소위원회와 전혀 사전 의견수렴이나 조정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로 법안이 만들어졌다. 주소위원회가 나중에 이를 알고 정통부측에 이러한 조항들이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부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법안 수정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2. 사이버공간의 특성과 법적 규제의 한계

의견수렴문제도 있지만 특별히 정보통신영역에서의 입법은 상당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미 해외의 입법사례들 속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보통신영역 자체의 특성 때문에 이제까지 현실세계에서 통용되던 법논리를 통신공간에도 그대로 연장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론만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미 사이버공간에서의 법적 규율문제는 법학분야에서도 독자적인 학문분야를 이루어가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법적 규제의 이상적인 모델이 분명하게 확립되어 있지 못한 상태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통신네트워크 상에서의 법적 규제문제는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국가의 영토에 따른 사법관할권(Jurisdiction)의 문제 때문에 규제가 다른 나라에까지 미칠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전면적인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각 국가간에 가치나 규범, 문화가 상이하기 때문에 어떤 공통적인 규제의 틀을 세계적으로 구축하기도 어렵고 설령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한다 하더라도 보편적인 규칙을 만들려면 상당한 정도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다. 또한 사이버공간의 초국가적 성격때문에 특정 국가내에서 과도한 규제가 시행될 경우 얼마든지 해당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곳으로 이동하여 해당국가를 상대로 하는 정보서비스를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법적 강제수단에 의한 규제가 오히려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법적 규제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정보통신공간의 쌍방향성으로 인하여 정보의 이용자가 얼마든지 정보공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법적 규제가 도입될 경우 그 규제의 대상과 범위가 비영리 정보서비스나 개인의 정보서비스에까지도 광범위하게 미치게 됨으로써 사실상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통신품위법(Communicatin Decency Act)이 위헌판결을 받은 이유도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하나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과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 네트워크는 정보제공자가 이용자를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송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의 능동적인 요청에 의해서만 수신할 수 있는 까닭에 대중매체에 적용되는 것과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정보통신 네트워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는 이유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현재 외국에서 사이버공간과 관련된 입법사례에서는 사전에 수개월에 걸친 사회 각계와 전문분야 인사들의 의견들을 광범위하게 들은 후 온라인으로도 네티즌들의 충분한 의견개진의 기회를 준 후 그러한 내용까지 충분히 수렴하면서 사이버공간의 특성을 고려한 법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최근의 일반적 추세이다. 그만큼 신중하게 입법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나라마다 상당히 편차는 있으나 법에 의한 규제(legal regulation)보다는 업계의 자율적인 규제(self regulation)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현실세계에서 법적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제들이 양적인 측면에서나 속도면에서 엄청나게 높은 비례로 변화하는 사이버공간의 변화에 대응하는 데에 있어서 실질적인 효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고려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공간의 입법고려사항으로 반드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이버공간에 질서와 문화를 구축해가는 일은 반드시 정부의 여러 부처들간의 상호 협력과 연계속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이번 "통신질서확립법"안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정보통신부 유관법률중 정보통신부의 업무영역과 관련하여 가장 포괄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법률은 "정보화촉진 기본법"이다. 이 법률에 따르면 정보통신부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관계 중앙행정기관별 부문계획을 종합하여 5년의 기간을 단위로 하는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이 수립되면 정보화촉진기본계획에 입각한 사업추진은 정보통신부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화추진위원회가 추진하게 되는데 정보화추진위원회는 위원장은 국무총리, 부위원장은 재경부장관이 되고 입법, 사법부 및 관련행정기관의 장중에서 위원장이 위촉하는 사람으로 구성하게 되어있다. 정보통신부는 정보화추진위원회가 이러한 사업을 추진할 때 중앙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들간에서 사업을 조정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기본골격 위에서 "정보화촉진 기본법"은 정보통신부의 여러가지 업무영역을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세부적인 내용은 모두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통신질서확립법"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이 법이 종전의 "정보화촉진기본법"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던 내용을 대부분 법조항으로 끌어 올렸을 뿐만 아니라 종전에는 주로 권장사항이었던 것을 보칙에 벌칙규정을 두어 상당부분 강제규정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정통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전의 "정보촉진망이용촉진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내용이 중추를 이루고 있었으나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법적 규제는 일반 사법당국이 맡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번 "통신질서확립법"의 중요한 변화는 정보화촉진기본법 시행령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한국정보보호센터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한국정보보호원으로 승격시키고 준사법적 권한을 갖는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의 사무국을 두어 동 위원회의 업무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어 정통부가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한 일정한 권한을 갖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통제권한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부여하고 있으며,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인터넷 주소자원에 대한 정책수립 및 관리기관지정, 도메인분쟁조정정책 및 조정기구의 운영권한을 정통부의 고유업무영역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개인정보보호나 인터넷 내용규제, 인터넷 주소자원관련 정책에 관하여 정보통신부가 이를 고유권한으로 설정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지 또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런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사실은 앞에서 "정보화촉진기본법"에 대한 설명에서도 밝혔듯이 현행 법제도에서는 정보통신부는 이러한 일을 수행해야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개인정보보호에 대해서는 이미 행정자치부와 법무부, 검찰이, 불법정보에 대한 규제에 있어서는 법무부, 검찰이, 청소년유해정보규제에 대해서는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각각 소관 업무영역를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행정조직개편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업무가 왜 정보통신부의 고유업무영역으로 할당되어야 하는지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현정부 초기에 제시되었던 행정조직개편안에서는 산업자원부와 과기부, 정통부가 하나의 부처로 통합하고 정보통신과 관련된 각 분야의 정책은 모두 개별부처에서 직접 다루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선안이 나온 경우도 있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3. 시민사회의 자율성촉진인가 정부의 역할강화인가?

현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일관되게 정부는 작은 정부, 시장과 시민사회의 자율 메카니즘의 강화론을 주장해 오고 있다. 이것은 사회 각 부문의 기능과 역할이 점차로 더 세분화, 전문화되어감에 따라 국가에 의한 지도, 관리, 감독기능이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로 비약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60년대부터 시작된 고도 압축성장을 겪어오면서 구축된 우리의 경제, 사회체제가 시장과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문제해결능력을 크게 발전시키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경우에는 시장과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규제능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당기간동안 국가의 협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 인터넷 주소자원관리와 한국인터넷정보센터

그러나 이미 상당기간동안 시민사회 자율적으로 기능수행을 해 온 영역에 새삼스럽게 정부가 소관업무영역을 자임하고 개입하려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 "통신질서확립법" 제16조에 나와있는 인터넷 주소자원관리에 관한 조항이다. 현재 인터넷 주소자원관리는 크게 두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com, .net, .org와 같은 성격의 국제최상위도메인(generic Top Level Domain)으로서 ICANN이라고 하는 국제기구에 의해서 관련 정책이 수립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규정에 따른 영문알파벳 두자로 표시하는 각국가별 최상위도메인(country code Top Level Domain)으로서 우리나라 .KR에 대해서는 재단법인 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의 주소위원회가 관련정책을 제시하고 최종적으로는 이사회가 결정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법조항에서는 현재 국내 이용자들이 상당수 가입하고 있는 gTLD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으면서 이미 .KR에서 한국인터넷정보센터가 수행하고 있는 일을 새삼스럽게 정통부장관이 정책을 강구해야 하는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ccTLD의 경우도 향후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 사는 교포들을 위해 .us.kr, .jp.kr과 같은 제2계층 도메인을 구성할 수 있으며 이런 경우 해외시민권자들의 이용영역이 되는데 한국정부가 이에 대하여 배타적인 권한행사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정통부 관계자들은 이 부분에 대하여 주소자원은 공적자원(Public Resource)이며 미국의 경우도 상무성이 ICANN과 계약관계에 있고 루트서버에 대한 권한을 상무성이 보유하고 있음을 근거로 하여 이러한 법조항이 나올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사실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KR에 대한 권한부여는 과거 존 포스텔이 IANA를 통하여 할당한 것으로서 한국정부와는 아무런 관련없이 이루어졌다. 또한 미국의 경우 과거 인터넷 초기 국방성에서부터 최근의 상무성에 이르기까지 미국연방정부는 인터넷의 루트서버의 유지와 관리를 막대한 재정지원을 해가면서 민간과의 계약에 의해 운영해 왔다. 이에 반하여 한국인터넷의 경우에는 여러차례 조직상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 상당한 수준까지 민간이 자율적으로 운영해 온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그리고 국내 도메인 이용자수의 증가는 시장의 주도적인 역할에 의해 촉진되었으며 현재 한국인터넷정보센터는 충분히 현재 도메인등록자들이 지불하는 요금에 의해 자립적인 운영이 가능한 상태에 있다.

뿐만 아니라 16조 2항에서 정통부장관에게 인터넷 주소자원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기관을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부분은 전통적으로 ccTLD의 관리자(Manager)가 고유하게 보유하는 권한으로서 현재와 같은 내용의 규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규정이다. 현재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일반적인 정책들을 결정해 가고 있는 ICANN의 ccTLD 그룹에서 현재 논의하고 있는 문서초안("Best Practice & Delegation/Redelagation")에 따르면 ccTLD의 관리자의 권한은 국내인터넷이용자집단(Local Internet Community)과 IANA/ICANN 양자에 의해서 그 권한의 근거가 주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각국 정부는 국내인터넷이용자집단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위상을 부여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각국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뀔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인터넷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측 자문위원회(Government Advisory Group)는 이와는 약간 상이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국내인터넷이용자집단과 IANA/ICANN 양자로부터 ccTLD에 대한 권위가 생성된다고 하는 기본개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KR이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소자원인 것도 결코 아니다. ICANN차원에서 신규로 최상위도메인을 생성할 경우 그 관리 권한은 개별 서비스업체(Registry 운영업체)에게 넘어가며 얼마든지 특정 국가를 겨냥한 도메인생성이 가능하다. (예, .korea, .skorea, .southkorea, .한국, 또한 제 2계층에서도 .korea.com, .kr.com에 대하여 한국정부는 정책적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개별 최상위도메인 데이타베이스나 등록업체에 대한 정책적 지침은 ICANN차원에서 만들어지지 .kr이라고 해서 한국정부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설명을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현재 "통신질서확립법"의 제16조는 대단히 그릇된 사실과 개념이해에 기초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내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도 못한 한국 정통부만의 특유한 법조항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근본적으로 이미 한국인터넷정보센터라는 재단법인을 통해 민간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이러한 주소정책에 대한 기능수행이 오랜기간 이루어져왔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통부가 일방적으로 이를 정통부의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민간의 자율성을 촉진하기 보다는 오히려 저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 대안적 중재기구(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와 정보통신부

"통신질서확립법"에는 대안적 중재기구(ADR)라고 볼 수 있는 기구가 세가지나 새롭게 제시되어 있는데 도메인분쟁조정위원회(제17조),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제36조 - 제42조), 정보통신이용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업무와 역할(제56조, 제57조)에 대한 규정이 그것이다.

사이버공간에서 대안적 중재기구가 요청되는 이유는 기존의 법률로서는 분쟁에 소요되는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해결에 소요되는 기간도 너무 길어서 신속하게 변화하는 네트워크 환경에서는 적절한 분쟁해결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종적인 사법적인 심판과정을 거치기 전에 짧은 기간에 효과적으로 중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같은 중재제도를 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 경우 그러한 중재제도가 반드시 현재 이 법안에서 제시된 형태대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 또한 여러가지로 따져보아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으로 개인정보분쟁조정이나 정보통신이용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중재기능은 꼭 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인 개인정보보호원이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두기 보다는 행정자치부나 법무부/검찰 산하에 두거나 혹은 약식재판과 같은 형태의 제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도메인분쟁조정의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보면 민간영역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도 있는 분야이므로 굳이 법으로 정해서 유일한 중재기구로 만들기 보다는 민간영역에서 이러한 중재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법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오히려 훨씬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이같은 분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사례가 대폭 증가할 가능성이 있고, 이를 정부산하기구의 고유업무로 할당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정부의 경직성 예산을 늘리는 주요변수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4. 결론적 제안들

이상에서 지적한 조항들 외에도 이 법안에는 정보통신 이용자 실명제(제55조 - 인터넷의 익명성은 단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처럼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의견수렴이 필요한 쟁점들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띄지만 이상에서 지적한 내용만으로도 이 법안이 얼마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법안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분석을 토대로 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이 몇가지 사항을 이 법안과 관련하여 제안하고자 한다.

1) 이 법안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 - 개인정보보호, 인터넷 내용규제, 인터넷 주소자원관리 - 에 대해서는 관련 이해당사자들이나 관심집단,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제도도입의 장단점 및 정보통신망에서의 규제의 한계 등을 고려하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일정기간 적극적인 네티즌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의견개진의 기회를 온라인으로 허용하고 이를 수렴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하간에 법개정이 행정편의적인 졸속입법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사이버공간을 법적으로 규제한다 하더라도 이에 관련된 모든 소관업무가 반드시 정보통신부로 제한되어야 할 이유는 없으며 규제와 관련된 내용에 따라서는 오히려 여러 부처들의 협력과 조정이 필요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따라서 이같은 법률을 만들 때에는 소관부처나 추후 부처간 협력, 조정의 방식에 대해서까지도 반드시 함께 검토해야 할 것이다.

3) 이 법안의 특징은 크게 보아 정보통신부의 기능과 역할, 고유업무영역의 확장과 권한강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사이버공간에 대한 규제가 실효성을 거두기가 힘든 법적 규제의 방식보다는 관련업계의 자율규제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 점에서 상당부분의 내용이 현재 "정보화촉진 기본법"의 틀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 현재 제시된 법안은 그 틀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 그것에 추가하여 관련업계의 자율규제를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법안개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4) 시장이나 시민사회내의 자율적인 규제전통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모든 것을 시장과 시민사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금부터라도 그같은 자율적인 규제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미 자율적인 규제가 이루어지는 부분은 그것에 제동을 거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이미 형성된 자율적인 기능수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와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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