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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활동가

By 2015/04/17 4월 27th, 2018 No Comments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더이상 숨을 곳이 없다.”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저자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다. 글렌 그린월드는 NSA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디지털 감시 실태를 영국 언론 가디언지를 통해 세계 최초로 보도했다. 본래부터 가디언의 외부 기고자였던 그는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활동가’로 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변론 활동을 접은지 몇년 되었다고 설명하고 자신을 ‘활동가’로 부르는 언론에는 모종의 저의가 있다고 의심한다. 그는 ‘저널리스트’로 불리길 원한다. 자신의 폭로 보도가 법률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활동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언론의 폭로와 활동가의 폭로는 무엇이 다른가? 가끔 활동가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전업 활동가로서 내 인생을 바치겠다는 거창한 선언을 한 기억이 없다. 그저 무엇에 홀린 듯이 시작했고 일주일씩 한달씩 앞을 보며 달려오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이만큼 흘러 있었다. 활동가가 무엇인지 선험적으로 규정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1998년 단체 상근을 결심하였다. 정치적 격동기의 변혁운동가는 아니었다. 한겨레 신문에 “나? 활동가”라는 제목의 꼭지가 있었던 것으로 봐서 그 무렵 자신의 정체성을 활동가로 부르는 이들이 늘어났던 것 같다.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사회 변화의 꿈을 가진 여러 인권시민단체들이 만들어졌다.

‘활동가’는 사이 간(間)자를 쓰면서 전문가와 대중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암시했던 ‘간사’와 조금 다른 어감을 지니고 있다. 내가 처음 사회운동을 시작했을 때에는 제도에 대한 정보 접근이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법이 만들어지고 그 법은 언제 어떻게 의사결정 과정을 밟는지 매우 불투명했다. 그래서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했다. 행정관료, 입법부, 혹은 변호사 등 전문적 직군만 접근할 수 있는 부류의 정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 등장 이후 이십 년 간,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이제 나같은 사람도 어떤 제도가 있는지, 어떤 절차를 통해 제도 변화에 참여할 수 있는지 손쉽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제도적 영역 외에 인터넷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언로도 저렴하고 다양해졌다. 그래서 자기 의제와 주도성을 가진 활동가들이 늘어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어 왔다.

나는 내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는 정치적 시민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전업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공적인 의제에 전념할 수 있고 노동과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 삶의 질에 깊이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적인 삶에 참여하는 만큼 멀리하라고 말했다는 경제적 삶이 활동가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7년간 그렇게 많은 이들을 떠나 보냈다. 이해하면서도 서운해서 터무니없이 화를 낸 적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은 떠나간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든 활동가로서 나를 생각해 볼 때도 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행정 조직이나 거버넌스 조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활동가들을 보기도 한다. 자신의 역량을 제도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선택한 경우도 있지만 생계가 이유인 경우도 있다. 어디에 속해 있건 의식을 규정하게 될 자신의 존재 조건을 잘 설계하는 것이 활동가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에서 전공은 과학기술사회학이었다. 당시 나는 “평범한 사람의 지식 layman’s knowledge “이라는 말에 꽂혀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지식이 과학기술과 같은 전문지식에 비해 못할 바가 없다. 그 사이의 관계는 위계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신념이나 정책을 ‘강한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외된 이들의 지식은 오히려 기존의 객관성이 빠뜨린 시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강한 객관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모든 지식과 모든 정보의 민주주의. 나에게 이념이 있다면 이것일 것이다.

가끔 변호사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때가 있다. 아마도 좋은 평가를 의도한 것이겠지만, 말 속에 위계가 숨어 있다. 못지 않다는 것은 무엇일까? 활동가는 전문가라는 말도 비슷하다. 특별한 사회적 타이틀이 없는 ‘활동가’들이 그나마 ‘전문가’로 불리는 것은 일종의 인정 투쟁이라고 볼수 있겠지만, 전문가와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위계를 전제한다.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우리는 많은 이들을 만났다. 거리에서 인터넷에서 자신의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생활인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보다 전업 활동가가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 직장인, 주부 등 비전업 활동가들이 늘어날수록 의제는 대중적인 힘을 갖는다. 다만 전업 활동가는 공적인 의제를 다뤄본 경험이 많다 보니 이 분야에서 좀더 많은 정보와 숙련된 업무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연대하는 사이다. 우리는 다 같은 인권옹호자이다.

나는 활동가가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흘러간다. 체제도 흘러간다. 계속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사건을 만드는 것이 활동가이다. 몫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들리도록 문제를 드러내고 사회모순을 부각시킨다. “여기를 봐! 여기 문제가 있다고!” 목청껏 외친다. 어렸을 때, 나는 역사가 인쇄된 활자이고, 법률도 인쇄된 활자라고 생각했다. 역사는 누군가 알아서 잘 기록할 것이고 법률도 기술도 합리적 발전경로를 알아서들 밟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활동가가 되었다.

그래서 처음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언론인과 활동가는, 사건을 ‘기록하는 자’와 사건을 ‘만드는 자’ 사이라고. 그만큼 긴장되어 있기도 하고 협조하기도 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그린월드 ‘기자’는 이번 폭로 사건을 ‘만든’ 사람일수 있지만 그는 그 지위를 내부고발자 스노든에 대한 경의로써 양보했다. 그는 그보다 자신이 사건을 진실하게 보도하였다고 인정받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미디어로서.

내가 활동가로서 제일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미디어가 될 때이다. 내가 의제로 삼는 정보인권은 미디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사실 나는 미디어 노릇을 참 못한다(모든 활동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미디어는 만남을 조직한다. 미디어의 끝에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운동권은 백단어 밖에 못쓴다”고 비웃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아팠던 적이 있다. 의제 홍보가 획일적이고 재미가 없다는 평가도 많이 듣는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미덕인지 늘 고민이다. 사실은 재미있게 만들고 싶어도 그럴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거리에서 표현 방식을 배웠다. 응용범위라봐야 백단어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서툴게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걸 인터넷에서 찾아서 첫 보도자료를 쓰고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렇게 남들 앞에 서고 피해자를 만나고 법전을 뒤지기 시작했다. 만능이 될것을 기디받는데 사실 알고 보면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요즘엔 웹자보도 만들어야 하고 동영상도 올려야 한다. 나는 인터넷에서 재미있게 활동하는 것과 재미있게 글쓰는 게 가장 어렵다. 언제나 활동가로서 큰 능력의 부족을 느끼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활동가들은 바빠진다. 고난을 겪기도 한다. 세상 모든 활동가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인사를 전한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기고한 글입니다(2015년 4월 14일).
원문 보기 http://withgonggam.tistory.com/1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