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인터넷 선거운동,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By 2012/03/2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2월 27일 국회는 인터넷과 SNS의 선거운동을 상시허용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이틀 후 바로 발효하였으니 올해 치뤄질 총선과 대선에서 인터넷 선거운동이 대폭 허용되었다. 지난 해 12월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대해 한정위헌이라고 결정하였던 데서 예고되었던 바이기는 했다. 이 결정은 2007년 UCC와 2010년 트위터를 둘러싸고 이용자와 선거관리위원회 간에 벌어졌던 겨루기에서 이용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인터넷 선거운동의 자유는 완전히 보장되는 것일까? 미국 선거에서 조지 부시 전대통령을 상대로 ‘GWBush.com’을 만들고 그를 조롱하고 비판하였던 예스맨들이 한국에도 나타난다면 그들은 이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글쎄, 선거법이 개정되었지만 올 한해도 두 번의 선거를 치루는 동안 적지 않은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
 
1. 십오 년의 고통
 
헌법재판소는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정당 또는 후보자를 거론하는 것을 금지하는 매체에 인터넷을 포함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마침내 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기타 이와 유사한’ 매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이용자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선관위,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은 PC통신, 인터넷, 패러디 이미지, UCC, 그리고 SNS에 이르기까지 새로이 등장하는 뉴미디어를 속속 규제 대상으로 삼아왔다. 이는 때로 구속에까지 이르는 이용자들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선거법이 정당과 후보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표현 행위까지 폭넓게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이다. 이 무렵은 대표적인 PC통신망 중 하나였던 천리안 이용자가 1백만 명을 돌파하는 등 PC통신 이용자가 급증하였고, 1996년 총선과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표현 욕구가 폭발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994년 공직선거법이 제정되면서 선거운동 기간 전의 정치적 표현 행위를 규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1996년 최초의 구속자가 발생하였다. 검찰은 1996년 4월 15대 총선을 앞두고 컴퓨터통신 게시판에 토론 형식의 글을 올린 이용자 2명을 구속하고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당시 93조 1항 위반으로 20여일 간 구속되었던 김모씨는 재판 중에 이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었고 구속자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또 검찰은 1997년 9월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용자 3명을 긴급체포 및 구속하고 7명을 불구속 입건하였다. 이때 장모씨의 구속 사유는 이회창, 조순, 이인제를 비판한 것이 93조 1항 위반이라는 것이었고 장모씨와 다른 1명의 구속자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구속된 이용자들 대부분이 학교와 직장이 일정하여 도주와 증거 은닉의 우려가 없었다는 사실은, 긴급체포와 구속 등 당시 사정기관의 대응이 참 가혹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이들은 선거시기를 앞두고 각 통신망에 앞다투어 개설되었던 선거 주제 토론방에서 열렬하게 토론했을 뿐이라고 항변하였지만 통하지 않았다. 늦게라도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참 다행이지만, 단지 격렬하게 토론하였다는 이유로 이들이 고통받아온 세월이 십오 년에 이른다. ‘한정위헌’이라는 단서 탓에 법원에서 이들의 재심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고초는 당사자들에게만 그친 것이 아니다. 그들을 지켜보아온 동료 네티즌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할말이 많아지는 선거시기, 오히려 인터넷은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매체가 되어 버렸다. 선관위는 UCC, SNS, 최근의 ‘인증샷’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을 빠짐없이 규제하기 위한 각종 지침을 계속하여 발표했다. 이용자들은 인터넷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때 점점 더 용감해져야 했고, 선거법의 그물을 비켜가기 위한 여러 ‘꼼수’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이러한 시간적·경제적·정신적 비용을 감당하기가 부담스런 이들은 결국 글을 쓰기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위축 효과’ 아니겠는가.
 
2. 위축효과
 
이제는 선거법도 개정되었고 하니 앞으로 글로벌한 인터넷 시대에 걸맞는 정치 토론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갈 길이 멀다. 선거법은 가장 문제가 되었던 조항 하나를 이제 겨우 바꾸었을 뿐이다. 이번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93조 1항의 규제가 사라지는 대신 ‘후보자 비방죄’가 규제의 새로운 ‘핫’ 이슈로 부상하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후보자비방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소위 ‘나경원법’을 발의하였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법 개정을 논의할 때도 선관위는 후보자비방죄의 처벌을 대폭 강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여전히 인터넷을 ‘비방’과 ‘괴담’의 진원지로 보는 발상이 깔려 있고, 현재의 규제가 사라지면 ‘규제의 공백’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섞여 있다. 다행히 입법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발상과 우려가 계속되는 한 규제는 계속도리 것이다.
 
특히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선거법을 해석하고 수사권을 휘두르는 것은 이용자에게 법문보다 더욱 강력한 위축 효과를 발휘한다. 2007년 대통령 선거가 그러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경찰과 검찰은 인터넷 단속을 크게 강화하였다. 2007년 12월 경찰 발표에 따르면 이때 2천466명을 단속하여 16명을 구속하고 641명을 불구속하였는데 그중 사이버 선거사범의 비중이 61퍼센트를 차지하였다. 전국에서 인터넷 선거운동 위반이라는 이유로 경찰서에 불려다닌 사람이 1,500명에 달했다는 말이다. 6개월 후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총 1천432명을 입건하여 995명을 기소(36명 구속기소, 1명 치료감호), 435명을 불기소하였는데 인터넷 등 사이버선거사범은 504명(기소 407명/불기소 97명)이었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결국 최종적으로 기소에 이르지도 않을 사람들이 애꿎게 입건된 경우가 2/3에 달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때 단속의 특징은 신고에 의하기 보다는 검경의 인지수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976명). 대검찰청은 "돈보다 상대적으로 말이 더 문제"라는 기조 하에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단속하여 사이버선거사범의 인지 입건 비율은 무려 93.8%에 달했다. 경찰서간에 실적 경쟁 양상까지 벌어진 당시 추세 속에서 전국의 경찰서로 불려다닌 사람들은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리고 선거시기 내내 그들을 지켜본 다른 사람들은 한국 인터넷에서 정치적 의견을 올리는 행위가 어떤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인지 여실히 체감했을 것이다. 결국 갈수록 인터넷 선거운동의 비중이 커져 가는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한국에서 인터넷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 속에서 2007년 대통령 선거의 막이 내려갔다.
 
3. 올해는 달라야 한다
 
올해 선거도 이런 양상이면 곤란하다. 올 선거에서도 후보자비방죄와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한 단속이 계속하여 이루어질 텐데 실제 단속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수사기관의 무차별적인 입건과 소환은 자제되어야 마땅하다. 선관위의 게시물 삭제 요청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가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는 사실을 인터넷에 대한 발상의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치적 공론의 과정에서 기존 매체를 통한 일방적인 정보 전달을 넘어 인터넷을 통한 정치과정 참여의 기회와 범위가 넓어질수록 보다 충실한 공론의 형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인터넷 상 일반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하여 적극 장려되어야 하는 측면도 있다 … 선거의 공정과 평온이라는 공익과 그로 인한 기본권 제한 간의 법익균형성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선거참여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 및 민주적 정당성의 제고라는 공익 또한 감안하여야 할 것이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도 이러한 관점 속에서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현재 한국 인터넷의 폐해로 지목되는 공적 규제의 과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율규제가 잘 가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자. 그것이 떄로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라 하더라도 마땅히 노력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 공정성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 절차와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KISO저널(2012 봄호 vol6)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