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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토론-전자주민증 반대] 개인정보 유출 · 오남용 활개칠 것

By 2011/10/1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현재 우리는 주변에서 전자신분증을 쉽게 접한다. 사원증이나 학생증도 RF칩이 내장된 스마트카드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무 발급되는 국가신분증을 전자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2003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사건의 교훈은 무엇일까? 오래 전 일이지만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출했던 논쟁이었고 아직 그 불씨가 남았다. 당시 교육부는 문제의 핵심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TV 끝장토론에서 “편리하고 좋은 서비스”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NEIS 입력을 거부한 교사와 학부모들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개인정보를 정부가 중앙 집적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공공복리를 위해 국민의 개인정보를 사용하겠다는데 국민이 이를 거부해도 되는 것일까? NEIS 사건의 쟁점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것이었고, 이 권리는 21세기 정보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다. 사회 곳곳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일반화할수록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개인정보의 결정권을 둘러싼 국가와 시민의 힘겨루기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자주민카드 논쟁이 정권 교체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1997년에 불붙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들은 이 갈등의 성격을 잘 이해했을까? 그랬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자주민증을 다시 추진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반면에 시민들 사이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계속되면서 그간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주민등록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진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대량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사업자의 주민번호 보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주민정보는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것이라는 기대는, 정부가 주민정보를 채권추심업체에 30원씩 받고 판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전자주민증의 주요 도입 명분 중 하나는 ‘개인정보보호’다. 주민번호와 지문을 ‘전자 칩’에 넣어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소 3500만건의 주민번호가 이미 유출된 상황이 아니던가. 이미 유출된 주민번호를 칩에 넣어 보관하면 안전할 것이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외부 유출을 방지하는 전자 칩의 훌륭한 보안 기술이 내부자 유출까지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전자여권 발급업체에서 국무총리, 장관 할 것 없이 92만여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던가. 정책 목표도 허술하고 그 수단도 적정하지 못하다. 그런데 정부는 10년간 예산 5000억원을 들일 것이라 하고, 학계는 1조원 가까이 들 수 있다고 보았다.

왜 이렇게까지 도입해야 할까? 정부는 현행 주민등록증이 위변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식적인 위변조 사건은 1년에 500건이 채 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가 특정 장소에 출입하기 위한 청소년의 변조다. 물론 중대한 경제적 손실을 불러오는 신분증 위변조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는 대개 조직적으로, 때로는 해외에서 이루어진다.

전자신분증이 도입되면 개인정보 유출이 사라지고 신분 절도가 모두 없어질까? 전자 칩보다는 교차 신분 확인이 더 확실한 보안이 아닐까? 가장 큰 문제는 민간, 공공 할 것 없이 이 전자주민증을 긁으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증 진위 확인’을 위해 현재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이뤄지는 식별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네트워크화하면 누가 어디서 긁었는지 다 기록될 것이다. 육안 식별과 전자 기록은 다른 효과를 낳는다. 후자가 개인정보의 오남용과 유출의 리스크를 훨씬 높인다. 생체 인식이 만연하면 생체 정보의 유통도 가속화할 것이다. 본인 인증 방법으로 비밀번호도 사용되지만 주로 지문이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정부도 알고 있다.

주민번호와 지문을 보호하는 데 전자 칩은 필요 없다. 주민증에 주민번호와 지문의 수록을 없애 가면 되기 때문이다. 전자 칩은 확장성이 있다. 여기에 또 무엇인들 더 못 넣고 무엇인들 유통되지 않을까. 이것은 개인정보 보호가 아니라 재앙이다. 정부는 자신을 믿으라고 하지만 그럴 근거는 별로 없어 보인다.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전자신문 2011년 10월 19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