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프라이버시

경찰은 해킹 허가라도 받았단 말인가

By 2010/01/29 No Comments
장여경
 

 

 

 

[논평]

 

 

 

경찰은 해킹 허가라도 받았단 말인가

 

–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여 정보를 빼낸 것은 불법 해킹일 뿐이다

 

 

 

충격적인 소식이다.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전교조 및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의 민주노동당 가입 및 당비납부 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수사기법을 동원하였다. 

 

 

 

언론은 경찰이 노조 간부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당원 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검증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였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는데, 전교조나 민주노동당 모두 경찰로부터 영장의 집행에 대하여 아무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좀더 확인해 봐야 할 점들이 있지만, 지금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다. 우리는 통상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여 신원을 가장한 후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빼내는 것을 해킹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경찰이 이러한 해킹을 수사기법이랍시고 사용했다는 말인가.

 

 

 

먼저, ‘검증’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 법에서 ‘검증’은 법관이나 수사기관이 자기의 감각으로 어떤 대상의 ‘성질’이나 ‘상태’ 따위를 인식하여 증거를 조사하는 일을 말해 왔다. 형사소송법에서 ‘검증’은 사람, 장소, 물건의 성질, 형상을 오감의 작용에 의하여 인식하는 강제처분을 의미해 왔고, 이 때문에 ‘검증’을 집행할 때 오감이 부정확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조항도 두고 있다. 따라서 당원 가입 여부에 대한 확인이 우리 법에서 허용하는 ‘검증’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찰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검증’의 의미를 새로이 제시하였다. 놀라운 창의력이 아니면 불법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경찰이 ‘검증’ 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수많은 절차들을 준수하였는지 의문이다. 검증의 집행을 미리 당사자에게 통지하였는가? 마땅히 참여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하였는가? 검증의 집행 결과에 대하여 참여자들에게 목록을 교부하였는가? 이번 ‘검증’ 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검증 대상인 전교조나 검증 장소라 할 민주노동당은 경찰로부터 통보나 참여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한다. 도둑집행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이 발부받았다는 ‘검증’ 영장의 내용 또한 참으로 궁금하다. 대법원 형사소송규칙에 따르면 검증영장의 청구서에는 피의자의 성명과 죄명은 물론 통상 7일의 유효기간과, 검증 장소, 검증 물건, 검증 사유를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 영장에 기재된 대로 틀림없이 집행되었어야 함은 물론이다. 경찰이 정말 이번 검증 영장의 집행에 대해 당당하다면 당사자에게 그 내용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켕기길래 아무에게도 영장을 보여주지 않는가?

 

 

 

무엇보다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정보를 빼가는 행위가 결코 수사기법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이버 공간에서 주민등록번호는 일종의 열쇠이다. 경찰은 영장이 있으면 남의 집 열쇠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가? 경찰은 영장이 있으면 당사자들 모르는 새 몰래 집안을 뒤져도 되는가? 

 

 

 

이런 방식대로라면 앞으로 압수 영장도 감청 영장도 복잡하게 따로 둘 필요가 없겠다. 그냥 검증 영장 하나로 두루두루 사용하면 될 일이다. 경찰은 전국민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모두 손에 쥐고 있다. 그러니 대상자의 주민등록번호로 그 사람인 척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일쯤 식은죽 먹기다. 그리고 메일을 열어보고, 쪽지도 열어보고, 구매내역도 보고, 신용카드 사용내역도 볼 수 있다. 인터넷 시대에 사이버 공간에서 보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법과 헌법이 경찰의 이런 수사 방식을 정말로 허용한다고 믿을 수 없다. 이것은 신종 수사기법도 무엇도 아니다. 경찰의 불법 해킹이며 정보인권 침해일 뿐이다.

 

 

 

2009년 1월 29일

 

진보네트워크센터

 

 

201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