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임시조치가 정부 비판글 삭제하는데 악용되선 안돼

By 2009/05/1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논평]
 
명예훼손을 이유로 인터넷에서 삭제된 경찰 폭력
— 임시조치가 정부 비판글 삭제하는데 악용되선 안돼
 
 
 
 
그 과정은 이러했다. 지난 1일 노동절 시위 현장에서 지하철 입구를 막고 시민들에게 장봉을 휘두르는 경찰의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었다. 이 사진은 평화적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비판을 받아온 경찰 폭력의 실태를 생생히 보여준 것으로서 우리 사회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지난 4일 당사자인 서울경찰 제4기동대 302중대 조삼환 경감이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각 포털에 신고하였고 그로 인해 해당 사진을 담은 게시물 다수가 임시적 삭제, 이른바 ‘임시조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임시조치 제도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2에 의해 이루어지는 제도로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권리를 침해당한 당사자가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그 정보의 삭제를 요청하면 포털은 30일 이내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임시조치 제도가 도입된 것은 인터넷에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을 받은 당사자들의 권리를 신속하게 구제하면서도, 본질적으로 게시자의 표현의 자유와 조화롭게 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임시조치 제도가 공권력의 치부를 은폐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경찰은 어청수 전 경찰청장 동생 관련 보도 동영상 수백건에 대하여 임시조치를 요구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우리는 당시 임시조치나 이번 임시조치 모두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퍼나르기하거나 이를 토대로 글을 작성한 누리꾼들의 게시물을 삭제하는 데 활용된 점에 우선 주목한다. 명예훼손이 있었다면서 그것을 보도한 언론을 시비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그것을 퍼나른 네티즌의 입막음에만 나서는 것은 언론보다 손쉬운 상대를 골라 국민 여론을 통제하는 것이자 경찰권 남용이다. 무엇보다 공무수행 중인 경찰에 대한 촬영과 보도, 그리고 비판은 사생활 침해를 주장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가장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인 집회시위의 자유가 억압되는 나라에서, 이에 대한 시민들의 고발과 비판마저 경찰의 초상권과 명예훼손을 이유로 억압되는 오늘 우리 현실은 참으로 비극적이다.
 
우리는 또한 이번 사건으로 현행 임시조치 제도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임시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무조건 처벌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악안을 현재 국회에 발의해놓은 상태이다. 30일 임시적인 삭제라 하더라도 표현 당사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일방적으로 제약하는 것임에 분명할진대, 일방의 주장에 따라 무조건 삭제하도록 국가권력이 강제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다. 더구나 국가권력이 임시조치 제도를 자신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데 활용한다면 기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인터넷 악법이자 전세계적인 조롱 대상이 될 것이다.
 
다만 최근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등 사적인 권리 침해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임시조치 제도는 사생활 침해/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권리 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에 의해 어떤 게시물이 임시적으로 차단되더라도 게시자가 이에 대해 항변할 경우 임시차단을 즉시 해제하고, 명예훼손과 같은 사적 분쟁을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구에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 이를 위하여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에서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명예훼손분쟁조정부를 독립시켜 분쟁조정기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경찰과 같은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보도와 비판은 이러한 사적인 분쟁조정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 현재 검토 중인 [정보통신망법] 개정 논의에도 이러한 점이 적극 검토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2009년 5월 11일
 
진보네트워크센터
 

2009-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