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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에게 고함 - 인권경찰의 조건]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 근절해야{/}‘4차 산업혁명’과 경찰 … 국민감시 ‘경찰국가’는 안 된다

By 2017/07/02 No Comments

장여경

성탄절을 앞둔 휴일이었다. 나는 그날 친지들과 TV를 보다가 경찰이 경향신문사 건물을 침탈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 건물 민주노총 사무실에 은신한 철도 노동자를 체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은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났지만, 2013년 12월 경찰에게 철도 파업 노동자들은 중대 범죄자일 뿐이었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파업 노동자를 체포한다는 이유로 언론사 건물에 폭력적으로 진입하는 경찰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철도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작전은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만 시행된 것이 아니었다. 디지털 시대 아니던가. 경찰 공권력의 폭력은 정보인권에 대한 무참한 유린으로 이어졌다.

우선 경찰은 30여 명의 파업 지도부 모두에 대해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경찰이 실시간 위치추적을 요청하면 이동통신사는 10분, 혹은 30분 단위로 경찰에게 대상자의 위치를 쏘아준다. “종로5가”, “종로3가”, “종각” … 시시각각 대상자의 위치가 경찰관의 휴대전화에 문자로 도착한다.

실시간 위치추적은 은밀한 전자미행이고 현재가 아니라 장래의 정보를 장기간 수집한다는 점에서 정보인권 침해가 큰 수사기법이다. 매우 제한적으로 실시되어야 마땅하지만 경찰은 현재 아주 간편하게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수사상 필요”하다고만 하면 법원이 허가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이 제도의 개선을 권고하였지만 박근혜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경찰은 철도 노동자들에 대해 위치를 추적하면서 그 가족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접속에 대해서도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심지어 초등학생 자녀까지 위치추적의 대상이 되었다. 파업 노동자가 가족의 명의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인권침해적 수사가 남발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 충격적인 공권력 사용에 대하여 철도 노동자들과 그 가족은 헌법소원을 제기하였고, 헌법재판소는 오는 7월 13일 이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실시할 예정이다.

철도노조가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이 뿐만이 아니다. 경찰은 파업 노동자를 추적하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교육청 등에서 당사자와 그 가족에 대한 정보를 싹슬이하여 제공받았다. 문제는 경찰이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법원의 영장 등 아무런 통제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경찰은, 공공기관이 보유한 국민의 개인정보를 제 주머니에서처럼 편의적으로 꺼내가고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 16일 이 사건에 대해서도 공개변론을 개최하였다. 재판관들은 특히 민감한 건강정보가 무영장으로 경찰에 제공된 데 대하여 위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또 경찰은 철도노조 조합원을 추적할때 수배차량 검색체계도 사용하였다. 당사자 뿐 아니라 삼촌이나 고모 등 일가친지의 차량까지 지난 석달간 어디서 운행되었는지를 검색하였다. 수배차량 검색체계는 전국 교통 CCTV로 차량번호를 자동으로 인식해서 보관해 두었다가 경찰이 검색하는데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전국민 차량이 대상이다. 문제는 경찰이 모든 국민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고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운행기록까지 광범위하게 보관해 두었다가 이용하고 있는데, 아무런 법률적 통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신기술을 경찰이 자의적으로 도입하고 운영하고 있는데, 국민들은 자신의 정보가 수집되고 이용되는 것조차 잘 모르고 있으며, 법률적 통제가 전무하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경찰 마음대로라는 것. 철도 노동자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2011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 등 활동가들의 위치도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2014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낙서범을 잡겠다고 지방자치단체에 기초수급자 수천명 정보를 요구하기도 했다. 2016년에도 부정수급을 막겠다며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장애인과 활동보조인 수백 명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았고, 이때 먼지털이식으로 수사를 당한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세월호 집회에 참여한 이들에 대해서는 어떠했던가. 경찰은 세월호 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교통 CCTV로 감시하였다. CCTV는 침묵의 목격자이다. 교통사고의 시시비비를 가릴 때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CCTV를 경찰이 제것처럼 사용한다면 이것이 경찰 국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디지털 장비가 경찰의 눈과 귀가 되어 국민을 감시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가 필요하다. 그 기준은 정보인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적제한’이다. CCTV를 제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교통CCTV를 이용해 집회를 감시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CCTV 통합관제센터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이후 쓰레기무단투기, 주차관리, 공원관리 등 다양한 목적으로 설치된 CCTV를 모두 다 경찰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심지어 경찰이 모니터링요원의 복무단속까지 하며 통합관제센터 소장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경찰 마음대로 교통 CCTV를 집회 감시용으로 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어느 법률에서도 이런 경찰 업무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CCTV 영상의 제3자 제공에 대한 통제는 물론, 목적외로 줌하거나 회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도 제대로 준수되고 있지 않다.

경찰은 세월호 집회에 참석한 이들을 연행해서는 마구잡이로 휴대전화를 압수하기도 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묻기 위해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연행자의 문자메시지, 사진에다 페이스북까지 탈탈 털었던 그 많은 경찰은 지금까지 아무런 반성이 없다.

특히 휴대전화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이나 통신자료가 경찰에 무차별적으로 제공된 일은 아직까지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 용혜인씨와 노동당 전 부대표 정진우씨의 경우, 세월호 집회에 참여했다가 카카오톡이 통째로 압수수색되었다. 같은 대화방에 있던 수천명의 정보도 함께 털렸다.

경찰은 무슨 이유인지도 밝히지 않고 수많은 국민들의 통신자료를 가져가기도 했다. 지난해 이맘때 쯤, 최근 경찰 수사를 받은 적이 없는 국회의원, 언론기자, 노동운동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통신자료가 경찰 등에 광범위하게 제공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피해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국가배상소송, 정보공개소송에서 경찰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자료 수집의 사유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는 커녕, 모든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집회 현장 주변을 서성이거나 대학이나 노동조합 주변을 출입하는 사복 경찰을 본 적이 있는가. 이들 경찰 ‘정보과’는 정보수집을 한다는 명목으로 시민사회운동에 대하여 광범위한 사찰을 해 왔다. 이러한 정보부서 사찰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고자 창설했던 일제 고등경찰 제도의 후신이다. 다른 나라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역할임은 물론이다. 경찰은 범죄수사나 기타 긴급한 위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겠지만,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와 사찰은 반헌법적이고 반인권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질수 없을 만큼 경찰의 감시와 사찰은 우리 국민의 불행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집회 현장에서 마구잡이로 남발되는 채증 카메라처럼,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경찰을 바꿔야 한다. 아무런 사회적 통제와 감독 장치 없이 갖은 정보를 수집하는 경찰은 국민에게 위험하다. 게다가 이제 경찰의 손에는 미래 신기술이 쥐어졌다. 앞으로 채증 카메라는 웨어러블 ’바디캠’으로 대체된다. 경찰은 CCTV를 넘어 택배회사 블랙박스도 무제한 제공 받는다. CCTV 통합관리 및 지능화로 전국 모든 국민의 차량운행정보를 추적하겠다고 한다. 페이스북 등 SNS에서 온갖 개인정보를 긁어모아 인공지능적으로 범죄를 예측하겠다고 한다. 집회 현장 상공에서 경찰 드론이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클로즈업할 날도 머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어느 미랜가, 당신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몇 퍼센트인지 인공지능 경찰이 계산해서 소환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미래 신기술과 경찰 감시가 필요한 것인지, 사회적 토론도 없었고 통제 법률도 없었다. 지금 경찰에게 모든 국민은 잠재적 범죄자일 뿐이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수록 미래의 범죄자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경찰에게 국민의 인권이란 무엇인가. 아무런 반성과 생각이 없는 경찰에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마음대로 쓰게 한다면, 경찰은 우리의 끔찍한 미래가 될 것이다. 그러니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 때이다. 경찰에게 적법 절차 준수와 법률에 따른 통제라는 방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