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

미완의 주민번호 변경제도, 문재인정부가 개선해야

By 2017/05/29 6월 23rd, 2017 No Comments

5월 30일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가 시행된다. 주민번호는 1968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간첩이나 불순분자의 색출, 병역기피자의 징병 관리”를 위한 목적으로 12자리 로 도입된 후 근 50년 만에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되었다.

주민번호 변경제도가 시행된 것은 유출 피해자들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2011년 네이트·싸이월드, 2014년 국민·농협·롯데카드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된 피해자들이 주민번호를 변경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냈고,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는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해결책”을 국가가 마련하라는 데 있었다.

이에 19대 국회는 지난해 5월 주민등록법을 개정하여 변경절차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헌재 결정 후 불과 5개월 만에 법 개정을 서두르며 임의번호 제도도입을 거부하였다. 새 주민번호에는 생년월일, 성별 등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번호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임의번호 제도이다. 그러나 정부는 “주민등록번호는 생년월일ㆍ성별ㆍ지역 등을 표시할 수 있는 13자리의 숫자로 부여한다.”(주민등록법 시행규칙 제2조)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며 생년월일과 성별을 제외한 6자리 숫자만 변경해주겠다는 입장이다.

빅데이터 시대 한국인들의 주민번호는 한층 위기에 처해 있다. 2014년 국내 한 연구에서는 인터넷에 공개된 생년월일, 출생지, 사는 곳 정보를 이용해 이용자 45%의 주민번호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2015년 9월에는 하버드대 연구팀이 한국 병원과 약국에서 미국 빅데이터업체 IMS헬스에 팔린 한국인 주민번호에 대한 암호를 해제하면서 “한국 주민번호에 생년월일과 성별 등 개인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더 쉽게 풀수 있었다”고 밝혔다(http://techscience.org/a/2015092901).

반복적인 개인정보 유출로 이미 13자리 전체가 전세계 인터넷에 유출되어 있는 상황이고 생년월일과 성별은 출생당시 정보로 평생 변경키가 어렵다. 7자리 번호를 그대로 놔두면서 과연 “유출된 주민번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19대 국회 당시 정부는 임의번호 제도에 대하여 “계획을 세우겠다”고 하였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2016년5월11일 제342회 임시국회 안전행정소위).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1월 “주민등록번호 변경 등에 관한 규정 제정안”을 발표하면서 주민번호 유출에 대하여 피해자가 엄격하게 입증하도록 하였다. 이는 당초 정부 개정안에서 ‘중대한’을 삭제한 국회의 입법취지를 몰각한 행태일 뿐 아니라 여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또다른 피해가 될 수 있다. 거의 전국민의 주민번호가 유출된 상황임을 엄중 인식하여, 주민번호 변경은 이를 원하는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의 규정안은 주민번호 변경에 대한 심사·의결을 “독립적” 기구에서 맡도록 한 국회의 입법취지도 반영하지 않았으며 관련 회의를 철저하게 비공개하였다. 주민번호 변경제도를 도입하면서 국민의 정보인권이 아니라 주민번호 제도를 운영하는 행정자치부의 편의에 맞춘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한 사람의 생년월일, 성별, 지역 정보가 타인에게 노출되면 정신적·재산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배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수없이 많은 연구들에서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는 임의번호로 주민번호 체계 변경을 권고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19대 국회의 결정 후 위원장 성명을 통해 목적별 번호, 임의번호 체계가 도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깊이 아쉬워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의 단견으로 50년 만의 주민번호 제도 개선이 미완으로 그쳤다. 문재인 정부가 적극 나서 주민번호 유출에 따른 국민들의 피해에 진정으로 대처할 것을 촉구한다. 주민번호 제도개선에 대한 인권위 권고 역시 마땅히 수용되어야 한다.

 

2017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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