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정보소식지

[PD 저널] 사라져가는 익명의 거리

By 2017/03/02 4월 2nd, 2018 No Comments

▲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본 사람이라면,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자신의 안구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갈아낀 특수경찰 존 앤더튼이 거리를 지날 때 근처 가게에서 안구의 원 주인의 이름을 부르며 호객행위를 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틸

얼굴은 사람들이 서로를 식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이름이 같은 사람은 있어도 얼굴이 같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일란성 쌍둥이의 얼굴도 다른 점은 있기 마련이고 자라면서 그 차이는 커질 것이다. 우리의 눈이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얼굴을 본다고 그 사람의 신원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지만, 길거리에서도 어느 정도의 익명성은 보장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익명성은 조만간 종말을 고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본 사람이라면,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자신의 안구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갈아낀 특수경찰 존 앤더튼이 거리를 지날 때 근처 가게에서 안구의 원 주인의 이름을 부르며 호객행위를 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홍채를 통해서 실시간 신원확인을 했지만,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했다면 존 앤더튼은 훨씬 복잡한 수술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여하간 영화의 시대 배경은 2054년 이지만,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신원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수배자를 찾아내는 시대는 그보다 훨씬 빨리 올 지 모른다.

지난 2016년 10월, 범죄수사 목적으로 사용되는 얼굴인식 시스템에 대한 흥미로운 (하지만 소름끼치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영구적인 라인업(The Perpetual Line-Up) – 미국에서의 규제되지 않는 경찰 얼굴인식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 산하 프라이버시기술센터가 1년여에 걸쳐 FBI와 지방, 주 경찰의 얼굴인식 시스템을 조사, 연구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26개주에서 수사기관이 운전면허증 사진 데이터베이스에서 얼굴인식 검색을 실행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시카고, 달라스,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경찰서에서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감시 카메라를 이용해 실시간 스캔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예전부터 수사기관은 용의자의 사진이나 몽타쥬를 수사에 활용해왔다. 그러나 사진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과 얼굴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미치는 영향이 질적으로 다르다.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는 것과 운전면허증 사진 데이터베이스와 같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검색하는 것도 또 다른 함의를 갖는다. 길거리 시민들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스캔해서 수배자와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인권에 전혀 다른 차원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사기법이나 기술이 도입된다면, 수사기관의 인권 남용을 방지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규제 수준도 달라져야 하지만, 얼굴인식을 규제하는 별도의 법률없이 이러한 수사기법이 활용되고 있는 문제점을 이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지난 해에 진선미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범죄예방이나 교통정보수집 등의 목적으로 공공기관이 설치한 CCTV 대수가 해마다 10만대씩 증가하여 2015년에 73만대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2015년 정보화통계집>에 따르면, 민간 및 공공영역에서 설치한 CCTV 대수는 795만 6천여대로 추정이 된다. CCTV도 고화질, 고성능을 갖춘 ‘지능형 CCTV’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이나 CCTV를 통한 얼굴인식 기술이 얼마나 도입되었는지에 대한 현황은 제대로 알려져있지 않다. 다만, 범죄자 얼굴인식 시스템을 한국의 수사기관도 이미 개발,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2014년 4월에 ‘3D 얼굴인식 및 3D 얼굴영상 변환 시스템 개발 사업’을 입찰 공고했는데, “CCTV 및 블랙박스 등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 급증으로 이를 활용한 수사 기법 필요성 증가”가 그 배경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5년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3D 얼굴인식 검색 및 변환 시스템 고도화’ 사업을 발주했고, 2016년에도 2차 고도화 사업을 발주했다.

집회 시위에 나갔다가 경찰서로부터 소환통지를 받아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점은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채증 사진을 찍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참가자의 신원을 파악해서 통지서를 보냈을까 하는 점이다. 집회 장소 근처의 핸드폰 기지국에 기록된 핸드폰 번호를 통해 통신사로부터 내 가입자 정보(이름, 주소 등)를 얻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는 경찰이 어떻게 집회 현장의 채증 사진을 증거로 들이미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채증 사진을 주민등록 데이터베이스의 사진과 매칭시켜보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지만, 지금까지 경찰의 공식 답변은 수작업으로 한다는 것이다.

‘얼굴인식’은 고도화되고 있는 생체인식 기술의 하나일 뿐이다. 출퇴근 확인용 지문인식기도 이미 광범하게 도입되어 있고, 스마트폰 인증이나 핀테크 활성화에 따라 지문, 홍채인식의 활용도 급속하게 확산될 것이다. 이미 전 국민 대상 지문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정부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도 실종아동(과 부모)에서부터, 범죄자, 지적장애인이나 치매노인, 군인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생체인식 기술이 활용되는 이유는 주민등록번호처럼 나를 고유하게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다른 사람과 식별해주고 내가 나라는 것을 인증해주면서도, 비밀번호처럼 잊어버릴 염려도 없고 보안카드처럼 잃어버릴 염려도 없으니 얼마나 편한가. 하지만 다른 개인정보와 달리, 생체정보는 유출되어도 바꿀 수가 없다. 또한, 나도 모르게 CCTV에 찍히는 것과 같이 생체정보의 수집은 나도 모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사람들이 지나간 뒤에는 지문과 DNA가 남아있었겠지만, 지금까지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먼지같은 내 흔적들이 내가 거기 있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생체인식 기술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개념인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중의 하나다. 그러나 내 생체정보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시급하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생체인식 기술은 ‘편리’가 아니라 ‘재앙’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최근 필자가 공동 연구자로 참여한 <바이오 정보 수집, 이용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생체정보 수집, 이용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법제도 개선방안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오병일 진보인권연구소 이사  webmaster@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