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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인터넷실명제 위헌 결정, 그리고 남겨진 과제들…

By 2016/11/30 1월 13th, 2017 No Comments

[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편집자주 : 한때 인터넷에서는 무한하게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저절로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국가, 기업 등 권력자를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할수록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누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인터넷 도입 전후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검열과 감시의 역사, 그리고 시민의 저항 속에 변화해온 제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제보와 잘못된 정보는 이메일 della 골뱅이 jinbo.net 로 알려 주십시오.

인터넷 실명제

2009년 4월 9일, ‘구글’이 한국어판 유투브(kr.youtube.com)의 영상 및 댓글 게시 기능을 정지시켰다. 한국의 인터넷 본인확인제에 반대한다는 이유였다. 이처럼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는 국제적으로 많은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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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슬로우뉴스 http://slownews.kr/5182

정부는 오랫동안 인터넷 실명제를 추진해 왔다. 2003년 정보통신부가 관련 계획을 공식화하였다. 당시 정보통신부는 많은 비판을 받고 계획을 철회하였으나 결국 2004년 공직선거법(구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최초의 의무적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었다. 선거시기에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에는 주민등록번호로 실명을 확인한 자만 글을 쓸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이었다.

2007년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소위 ‘일반게시판 실명제’가 의무적으로 도입되었다. 일일방문자수가 20만 이상(2009년 기준)에 달하는 포털사이트의 경우 모든 게시판에 상시적으로 주민등록번호로 실명이 확인된 자만 글을 쓸 수 있었다.

사이버 세상에서 주민등록번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타인의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절취가 급증하였다. 2008년 옥션 1천8백만 건, 2012년 네이트/싸이월드에서 3천5백만 건, 2014년 국민/롯데/농협카드에서 1억 4백만 건 등 개인정보 유출이 급증하였다. 2011년 국회 입법조사처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의 배경으로 인터넷 본인확인제를 지목하였다.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일반게시판 실명제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익명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취지였다. 개인정보보호법도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의 익명처리가 가능한 경우에는 익명에 의하여 처리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제3조 제7항).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는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발표의 자유)과 그것을 전파할 자유(전달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러한 의사의 ‘자유로운’ 표명과 전파의 자유에는 자신의 신원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아니한 채 익명 또는 가명으로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표명하고 전파할 익명표현의 자유도 포함된다.

이 사건 본인확인제는 게시판 이용자가 게시판에 정보를 게시함에 있어 본인 확인을 위하여 자신의 정보를 게시판 운영자에게 밝히지 않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중 게시판 이용자가 자신의 신원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아니한 채 익명으로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표명하고 전파할 익명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 동시에, 그러한 게시판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말미암아 게시판 이용자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바탕으로 여론을 형성·전파하려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언론의 자유 역시 제한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 헌법재판소 2012. 8. 23. 2010헌마47·252(병합).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 역시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와 본인확인제에 우려를 표하였다(A/HRC/17/27/Add.2).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표현의 자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찌기 2003년 유럽평의회는 <인터넷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를 위한 7원칙>을 발표하면서 제7원칙으로 ‘익명성’을 꼽았다. 온라인감시를 받지 않는다는 보장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정보와 사상의 자유로운 유통을 강화하기 위하여, 유럽 회원국들은 자신들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인터넷 이용자들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86_우리는-인터넷에서-자유를-발견했다_03그러나 본인확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선거시기에는 부정선거운동을 방지한다는 이유로(공직선거법) 본인확인제가 실시되고 있고 인터넷 게임에서는 청소년 연령을 확인한다는 이유로(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본인확인제가 도입되었다. 2009년부터 인터넷 도메인이름을 등록할 때도 본인확인이 되어야만 하며(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 휴대전화의 경우 부정이용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2014년부터 본인확인이 의무화되었다(전기통신사업법). 일부의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때로는 관행적으로 많은 인터넷 서비스가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후 이용을 허락하고 있다. 인터넷 본인확인제 위헌 결정 이후로도 악플이나 게임중독 등 인터넷의 부작용이 사회적 논란이 될 때마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본인확인제가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본인확인제에 대한 위헌결정과 달리,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헌법소원들에 대해서는 합헌으로 결정하고 있다. 실명확인기간을 선거운동기간 중으로 한정했다는 이유 등에서이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인터넷 실명제 폐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였으며 19대 국회 또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인터넷 실명제 폐지에 여야가 합의한 바 있다. 국회의 무관심 속에 2016년 7월 현재, 아직 실제 입법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본인확인제란 결국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실명 확인을 의미한다. 아이핀이나 휴대전화번호 인증도 결국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실명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한 본인확인제는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민간 인터넷 서비스의 주민등록번호 오남용의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