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무너진 키치(Kitch)의 왕국
쿤데라 : ‘Kitsch’라는 말은 19세기 독일에서 생긴 말입니다. 그 의미가 점차로 변해 와서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어떤 유(類)의 미적 스타일, 싸구려 예술을 뜻할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것 훨씬 이상이지요. 그건 어떤 세계관에 뒷받침된 미학, 거의 철학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건 인식이 제외된 아름다움이고 사물을 아름답게 만들고 남에게 환심을 사려는 의지이며 총체적인 순응주의입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망각 : 밀란 쿤데라 & 앙트완 드 고드마르 인터뷰>, 김화영 옮김, 계간 문학동네 12호, 1997
1. 촛불 : 2007 vs 2008
2007년 4월 2일.
인터넷에 대한 수사기관과 정부 부처의 압박
촛불 시위가 확산되자,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광우병 괴담'론을 제기하며,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확산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수사기관은 이에 화답하여 관련 게시물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 2008년 5월, 경찰은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2MB 탄핵 서명 운동이나 광우병 관련 글을 쓴 21명에 대해 신원확인 요청을 했고, 이들에 대해 명예훼손죄 적용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신뢰저해사범 전담팀'을 구성하고, 게시글이 '악의적이고 조직적으로' 유포되었다는 단서가 포착될 경우 사법처리한다고 위협했다. 당시 수사대상으로 거론된 것은 '수돗물이나 공기로도 광우병이 전염된다'거나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포기했다' '5월 17일 중고등학생 동맹휴업하자' '수도 민영화된다'는 등의 주장이었으며, 이는 모두 불법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실제로 이 수사는 거의 기소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사실 수사기관의 의도는 형사처벌의 위협을 통해 이용자의 인터넷 활동을 위축(chilling effect)시키는 데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2008 촛불시위와 인터넷 통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미국과 쇠고기 수입 협상을 타결하였고, 광우병에 대한 우려와 졸속 협상에 대한 비판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2008년 5월 이후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서울 시내는 촛불로 가득찼고, 이 과정에서도 인터넷은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다음(Daum) 아고라로 대표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통해 경찰의 폭력 현장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폭로되는가 하면, 촛불 시위의 전략이 토론되기도 하였으며, 민중언론 참세상, 진보신당의 칼라TV 등 인터넷 언론을 통한 생중계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이 캠코더와 노트북을 들고 무선 인터넷과 아프리카(afreeca) 사이트를 통해 직접 생중계를 하기도 하였다.

MB 공안탄압 현황 보고서 발표회 및 민주수호, 촛불탄압 저지를 위한 비상 국민행동 발족 기자회견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
발표일자:
2008/10/15
<참여연대> 검찰, 표현의 자유에 대해 전면전 선포한 것인가?참여연대 논평 발표일자:
200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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